알랭 드롱과 로미 슈나이더
세기의 미남 알랭 드롱(Alain Delon)은 여러 여배우들과 '만남과 헤어짐 &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여성은 그가 청년기 때 5년 사귀다 헤어진
오스트리아의 여배우 로미 슈나이더(Romy Schneide)였다.
오스트리아 빈의 한 '배우 집안'에서 출생한 로미 슈나이더(Romy Schneide :1938~1982 )는
16세 되던 해에 '이미 유명한 여배우로 활약하고 있던 어머니'와
같은 영화에 출연하게 되면서 영화 배우가 되었다.
(당시엔 히틀러가 두 국가를 합병하여 '오스트리아'와 '독일'이 하나가 된 상태였기에,
로미 슈나이더는 '오스트리아인'도 되고 '독일인'도 되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독일에서도 무척 아끼는 배우라 하니...)
데뷔한 지 몇 년 안되어 그녀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황가의 황후였던
엘리자베트(애칭 씨씨)'의 삶을 소재로 한 영화 <시씨(Sissi)>의 여주인공 역을 맡게 되었으며,
무려 3부작 영화였던 <시씨> 시리즈는 당시(1955~1957년) 10대 후반의 나이였던
로미 슈나이더(Romy Schneide)를 유럽의 스타로 만들어 주었다.
당시 이 영화가 관심을 받게 된 곳은 모두 '합스부르크 황가'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나라들이었기에, 자연스레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이다.
로미 슈나이더(Romy Schneider)가 연기한 '엘리자베트' / 영화 <Sissi(시씨)>
1958년 21세 때 프랑스의 미남 배우 알랭 드롱(Alain Delon)과
같은 영화 <크리스티네(Christine)>에 출연하게 된 것을 계기로
로미 슈나이더(Romy Schneider)와 그는 곧 '연인' 사이가 되었고(프랑스계와 독일계의 결합),
오스트리아 빈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게 된다.
파리에서 연극, 영화 등에 출연하며 다양한 활동을 펼쳤던 로미 슈나이더는
1963년 무렵에 결국 알랭 드롱과 헤어지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그 둘은 결별 이후에도 평생 동안 '좋은 친구' 사이로 지내며,
가끔은 같은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었다.
두 사람은 애정이 식어서 헤어진 게 아니라, 너무나 사랑했지만
서로의 성공을 위해 헤어진 커플에 속한다.
(한국에서도 예전에 어떤 배우가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는데, '알랭 드롱-로미 슈나이더'가 딱 이 케이스인 듯..)
결혼을 한 건 아니었지만 5년 동안 동거했으니 '사실혼' 관계라 보았을 때
알랭 드롱은 로미의 첫 번째 남편이라 할 수 있다.
1966년 로미 슈나이더는 독일의 한 감독과 두 번째 결혼을 했고,
그 사이에 아들도 두었으나 몇 년 후 이혼했다.
이 두 번째 남편은 훗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로미의 아들은 청소년기에 불의의 사고로 죽게 되었다.
로미는 1975년 또 다른 남자와 세 번째 결혼을 했으나,
1981년(두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난 아들이 사고로 죽은 해에) 세 번째 남편과도 이혼해 버렸다.
그 다음 해인 1982년 로미 슈나이더(Romy Schneider)는 4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는데,
죽을 당시 그녀의 아파트에서 '수면제'와 독한 '술'이 발견되어
자살 의혹도 있었지만 부검 결과 '심장 마비사'로 밝혀졌다고 한다.
두 번째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과 아들의 사고 이후
큰 충격을 받은 로미가 오랫동안 술과 수면제에 의존한 날들을 보냈기에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인한 죽음이란 설도 제기된 바 있다.
외국인 배우 중에서 유일하게 프랑스에서도 크게 인정 받았고
헐리우드 진출까지 했던 로미 슈나이더가 직업적으론 굉장히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개인사에 있어선 여러 면에서 굴곡이 많았다.
사망하기 얼마 전 한 잡지사와 인터뷰를 하게 된 로미 슈나이더(Romy Schneider)는
'한 때 많이 사랑했던 알랭 드롱(Alain Delon)'을 잊지 못해
자기 삶이 추락했다는 뉘앙스의 말을 남겼다고 한다.
photo from : allpicspeople.skyroc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