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쟁 범죄

일본 전쟁범죄자 도조 히데키의 처형[Japanese Class A War Crimes Tojo Hideki execution]

슈트름게슈쯔 2015. 7. 29. 14:51



미군 중위 존 윌프스(John Wilpers) -  1945년 9월 


그는 일본의 전쟁범죄자들의 수괴 도조 히데키 수상의 자살을 막는데 기여했다.







집에서 권총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한  도조 히데키 - 1945년 9월















일본 전쟁범죄자들의 수괴 도조 히데키의 교수형 - 1948년 11월 12일 스가모 형무소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 전쟁범죄자들의 수괴 도조 히데키는 

1945년 8월 일본의 패전 후 권총 자살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병원에 잠시 입원하였다가 A급 전범으로 체포되었다. 

그는 1948년 11월 12일 극동 국제 군사 재판에서 도이하라 겐지(土肥原賢二), 

이타가키 세이시로, 무토 아키라(武藤章), 기무라 헤이타로(木村兵太郎),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 히로타 고키(広田弘毅) 등과 함께 A급 전범으로 사형을 선고받아 

그 해 12월 23일 0시 1분에 스가모 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도조는 처형되기 전까지도 전혀 참회하지 않으면서 불교에 귀의해 "

욕망의 이승을 오늘 하직하고, 미타(彌咤)의 곁으로 가는 기쁨이여..." 라는 유언시를 남기기도 했다. 

교수형 후, 도조 히데키 등 전범들의 사체는 유족에게 반환되는 일 없이, 

요코하마 시의 한 화장터로 이송되어 화장되었고, 유골은 분쇄되어 

유회와 함께 항공기에 의해 태평양에 투기되었다. 

그러나, 고이소 구니아키의 변호사와 그 화장터 근처에 있는 한 절의 주지가 

화장터 직원의 안내로 잠입해, 잔회두는 곳에 버려진 7명의 유회와 유골의 작은 조각을 회수하였고, 

회수된 유골은 아타미의 고아 관음(興亜観音)에 옮겨져 숨겨졌다.  

 1958년 무덤을 새로 만들자는 계획이 부상해 1960년 아이치 현의 

산가네 산(三ヶ根山) 꼭대기에 이장되었으며, 현재 그곳에는 

순국 칠사묘가 축조되어 유골이 안치되어 있다.  

극동 국제 군사 재판의 A급 전범 14명의 합사는, 

1966년 구 후생성(지금의 후생노동성)이 제신명표(祭神名票)를 

야스쿠니 신사 측에 보내 1970년 야스쿠니 신사 

숭경자 대표회(靖国神社崇敬者総代会)에서 결정되었고 1978년 합사되었다.  

우지 도시히코는 자신의 책에서 도조는 어려서부터 권위주의자였으며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후에는 군수대신과 참모총장을 겸임해 

정치와 전략의 일원화를 추구한 독재자이자 철저한 전쟁 수행자라는 입장을 보였다.

 또한 일본의 침략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중국, 한국 등 주변 국가의 입장에서 

도조 히데키는 영원히 [전쟁 범죄자]로 기억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photo from : www.glogs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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