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독일군 스나이퍼 마테우스 헤체나우어 - WW2 German Army Sniper Matthäus Hetzenauer

슈트름게슈쯔 2015. 10. 28. 14:15





 마테우스 헤체나우어(Matthäus Hetzenauer : 1924~2004)



2차 세계대전 당시 이름을 떨친 유명 스나이퍼중에서 핀란드군에는 시모 하이하가 있었고 

 소련군에는 바실리 자이체프가 있었다면 독일군에는 헤체나우어가 있었다.

 마테우스 헤체나우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최고의 저격수로서  

 오스트리아 티롤 출신으로 독일군 육군 제3산악사단으로 참전하여 

동부전선에서 활약하면서 소련군 총 345명을 사살시켰다. 

그의 최종 계급은 육군 산악부대 상병(Gefreiter)이었다.

마테우스 헤체나우어는 핀란드의 시모 하이하나 

소련의 바실리 자이체프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지만

저격 최고기록으로 1,100미터의 거리에서 적을 사살한 적이 있으며

 그외 다수의 적을 사살시킨 여러가자 일화가 있다.  

1943년 그는 산악병으로 기본교육을 받다가 사격에서 특출나게 두각이 나타내자 

슈타이어마르크에서 저격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1944년 3월 27일에서 7월 16일까지 저격수 교육을 받은 후 

제3산악사단에 배속되어 Kar98k (+6배율 스코프)과 Gewehr43 (+4배율 스코프)를 사용하였다. 

그 후에 카르파티아산맥, 헝가리, 슬로바키아지역에서 소련군를 상대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다.  

마테우스 헤체나우어는 특별한 지원없이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도 

최전선의 은폐된 진지에서 소련군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퍼부었다고 증언했다.

“아군 부대가 공격을 개시하기 전날 밤, 포병이 공격준비사격을 했지만 

우리는 수적으로 열세했고 탄약도 부족해 오히려 적의 대 포병 사격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단독으로 적 지휘관과 포병만을 골라 장거리 저격을 가했다. 

결국 적은 잠잠해졌고 아군의 공격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1944년 11월 6일에 그는 적의 포병 사격에서 두부 외상을 입고 

극심한 고통을 겪다가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은 후 

3일뒤에 전상장(Wound Badge)을 받기도 하였다.  

대전 말기에 당시 사단장이었던 Paul Klatt 장군은 포병의 지원을 받는 

소련군의 2개 중대의 공격을 헤체나우어가 저격을 통해 물리쳤다는 보고를 하여

 그의 뛰어난 저격술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이후 해체나우어는 1945년 4월 17일 히틀러로부터 기사 철십자 훈장을 수여 받았다.

종전당시 1945년 5월에는 소련군의 포로로 잡혔다가 5년간 포로 수용소에서 억류당한 후 풀려나왔다.

  해체나우어가 주로 사용한 소총은 7.92mm 카라비너(Kar98k) 와

 Gewehr43 인데 Kar-98k는 특유의 정확도와 유효사거리로 스코프를 장착해

 저격용으로 많이 사용하였으며, "한발로 반드시 한명씩 죽인다"라는 그 만의 스나이퍼 법칙을 고수했다. 

한편으로는 진정한 저격수라면 켤코 반자동식 무기가 필요치 않다고 강조하기도 해

 Gewehr 43 스코프를 달아 사용했다고 한다. 

마테우스 헤체나우어의  전투방식은 어떤 면에선 시모 하이하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전투에서는 더욱 꼼꼼하고 생각하고 깊으며, 

두뇌가 우수한 사람이 적과 대결해 승리할 수 있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동료 저격수로서 Josef Allerberger는 같은 사단 소속이기도 했다.  

마테우스 헤체나우어는 다른 저격수들과 달리 은거하면서 조용하고 평범하게 살다가 갔다.







photo from : worldwarmemorries.blogspo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