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쿠릴열도 슘슈섬의 일본군 97식 치하 전차 - Kuril Islands Shumshu Imperial Japanese Army Type 97 Chi Ha Tank

슈트름게슈쯔 2016. 2. 2. 17:47













러시아 쿠릴 열도 슘슈섬에 버려져 있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97식 치하 전차 




제 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군 85식 하고 경전차의 슘슈섬 수송 작업 - 1945년 8월 




쿠릴 열도 슘슈섬의 일본군 85식 하고 경전차





2차 세계대전 말기 쿠릴 열도 슘슈섬 전투 당시 일본 제 11 전차연대의 97식 치하 전차 - 1944년 


1945년 8월까지 슘슈섬 전투에 일본군 85식 하고 경전차 25대와 18대의 97식 치하전차와

성능을 개량시킨 20대의 97식 치하 신호토 전차를 포함하여 모두 64대가 투입되었다.





슘슈 전투 당시 마츠오 이케다 대좌가 이끄는 일본 제 11 전차연대의  97식 치하 전차에 

대전차 수류탄을 던지며 맞서 싸우는 소련군 - 1945년 8월 


슘슈 전투 당시 투입된 마츠오 이케다 대좌 부대의 

27대의 전차들중 11대를 전투중에  잃었고 소련군은 110명이 전사했다.





슘슈섬 전투 당시 섬 동쪽 지대의 경사지 구덩이에 쳐박힌 일본 제 11 전차연대 1중의 97식 치하 전차 - 1944년





슘슈섬 전투 당시 섬 동쪽 지대의 경사지 구덩이에 쳐박힌 일본 제 11 전차연대 1중의 97식 치하 전차




슘슈섬에서 파괴된 일본군 85식 하고 경전차 앞의 소련군 - 1945년 8월 20일





슘슈섬에 투입되었던 일본군의 2식 수륙양용 전차 카미 - 1944년 




슘슈섬에 버려져 있는 일본군의 2식 수륙양용 전차 카미





쿠릴열도 슘슈섬의 위치 



슘슈섬(Shumshu)은 러시아 사할린주(州) 쿠릴열도에 

위치해 있는 면적 388km² 크기의 작은 섬이다.

슘슈섬은 캄차카 반도의 로팟카곶(Cape Lopatka)에서

 남쪽으로 겨우 11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쿠릴열도에서 최북단에 위치한 섬이다. 

 쿠릴열도 전체에서 가장 낮으며 높이가 고작 189m이며 

지대가 낮고 수많은 호수와 습지대로 뒤덮여 있다.  

 슘슈섬은 캄차카 반도에서 가깝기 때문에 18세기 초기에 

카자크(Kazak)인들이 쿠릴열도에 최초로 당도한 섬이었다.

 바로 이 섬을 거점으로 해서 러시아 모피 수렵꾼과 교역자들은 

다른 섬들과 사할린섬으로 점차 영역을 넓혀갔다.

슘슈섬은 1945년에 구소련군과 일본군이 

제 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전투를 벌인 전장이었다.





슘슈섬에서 발굴된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의 RGD-33  그물 무늬 방망이 수류탄과 F1 세열 수류탄 - 2015년 9월 18일 





슘슈섬의 유골 발굴 - 2015년 10월 



일본에서는 이 쿠릴 열도를 지시마 열도 ( 일본어: 千島列島 )라고 부른다.

쿠릴열도의 북동단 슘슈섬(占守島)은 제 2차 세계대전 말기 

1945년 8월 18~23일 일본군과 소련군 양측이 각각 적어도 수백 명의 사망자를 낸 격전지였다. 

그로부터 세월은 지나 70년후인 2015년 여름에 슘슈섬에서 유골 1구가 발굴되어 수습되었다.

일본 후생노동성 관계자와 그의 유족은 발굴된 유골의 몸에 소지했던 

유품을 통해 그는 홋카이도 오타루시(北海道小樽市) 출신인 

이도이 시게이치( 井戸井重市) 씨(당시 23세)일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슘슈섬의 일본군 유골은 43구가 1990년 이후 수습돼 귀국했지만, 신원이 특정된 사례는 1건도 없다. 

후생성은 슘슈섬 지역의 유골로는 첫 DNA감정을 해당 유골에 대해서 실시한다고 유족에게 연락했다. 

확인되면 포츠담 선언 수락 후 당시의 예기치 못했던 전쟁을 강요당했던 

전몰자들의 유골이 전후 7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유족 품으로 돌아간다. 

 이도이 씨는 조치(上智)대학 재학 중에 군 입대 통지서를 받았다. 

여동생인 미나토 유리코(湊百合子) 씨(80, 오타루시)는 

“유골이 되돌아오지 않으면 우리들의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고 말해, 

모친이 잠들어 있는 묘지에 오빠의 유골을 납골하는 날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이 유골은 러시아 조사단이 발견하여 2016년 11월에 

사할린에서 일본 측에 인도된 27구에 포함돼 있었다. 

 러시아 측 보고에 따르면, 유골은 병사들의 신원을 나타내는 금속 ‘인식표’와 

‘이도이’ 이름의 인감과 함께 참호 속에서 발견됐다. 

 일본군 인식표는 번호와 기호만으로 표시되며 일반적으로 성명은 기입하지 않아 

‘부재 명부’으로 불리는 군 리스트와의 조회가 필요하다. 

명부의 대부분은 전후 폐기돼 남아 있어도 불완전한 것이 

눈에 띄지만, 이번에는 조회를 할 수 있었다.  

신원을 나타내는 복수의 유품들이 남아 있어서 

후생성 관계자는 전몰자 유골의 DNA감정이 없었던 

1990년대 이전이라면 “유족에게 인도되는 사례”라고 밝혔다. 

 임감 등은 러시아 측이 관리하고 있어 일본 정부는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슘슈섬에서의 일본군 전사체 유골 회수작업은 남방과 비교해 상당히 지연됐다. 

그러한 이유는 슘슈섬에는 일반 주민들이 살지 않아 일본군 유골 정보는 턱없이 부족한 데다, 

상륙이 제한되어 숙박시설도 없는 등 수습 활동이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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