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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 가곡 - 두 사람의 척탄병 Schumann- Die Beiden Grenadiere

슈트름게슈쯔 2016. 4. 27. 19:52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 ~ 1856) 





Die beiden Grenadiere
(두 사람의 척탄병)

Nach Frankreich zogen zwei Grenadier',
Die waren in die Russland gefangen;
Und als sie kamen ins deutsche Quartier,
Sie liessen die Kopfe hängen.

프랑스로 돌아가고 있었네, 두 사람의 척탄병이
그들은 러시아에서 포로였네.
그리고 그들이 독일 주둔지로 왔을 때
그들은 고개를 떨구었네.

Da hörten sie beide die traurige Mär':
Dass Frankreich veloren gegangen,
Besiegt und geschlagen das tapfere Heer.
Und der Kaiser, der Kaiser gefangen.

왜냐하면 그들 두 사람은 슬픈 소문을 들었기 때문:
프랑스가 망하였고,
강력한 대군(大軍)이 패배하고 깨어졌으며
그리고 황제께서, 황제께서 잡히셨다는 소식을.

Da weinten zusammen die Grenadier'
Wohl ob der kläglichen Kunde.
Der eine sprach: "Wie weh wird mir,
Wie brennt meine alte Wunde!"
Der andere sprach: "Das Lied ist aus,
Auch ich möcht' mit dir sterben;
Doch hab' ich Weib und Kind zu Haus,
Die ohne mich verderben."

그래서 함께 울었네, 척탄병들은,
비참한 소문을 의심하며.
한 척탄병이 말했네: “얼마나 슬픈지,
예전 상처가 얼마나 쑤시는지!”
다른 척탄병이 말했네: “노래는 끝났어,
나 또한 너와 함께 죽고 싶어;
그러나 나는 집에 아내와 자식이 있고,
내 없으면 그들은 몰락해.”

"Was schert mich Weib, was schert mich Kind,
Ich trage weit besser Verlangen;
Lasse sie betteln gehn, wenn sie hungrig sind-
Mein Kaiser, mein Kaiser gefangen!

“내게 아내가, 내게 아이가 무슨 상관인가,
나는 더 큰 임무를 수행해야;
빌어먹게 버려두라, 그들이 굶주릴 때-
우리 황제께서, 우리 황제께서 잡히셨는데!

Gewähr mir, Bruder, eine Bitt':
Wenn ich jetzt sterben werde,
So nimm meine Leiche nach Frankreich mit,
Begrab mich in frankreichs Erde.

형제여, 내 한 가지 부탁을 들어 주오:
내 지금 죽거든
내 시체를 프랑스로 가져가서
프랑스 땅에 묻어주오.

Das Ehrenkreuz am roten Band,
Sollst du aufs Herz mir legen;
Die Flinte gib mir in die Hand,
Und gürt mir um den Degen.

붉은 리본을 맨 십자훈장을,
나의 심장 위에 얹어주오;
총은 내 손에 쥐어주고,
그리고 대검(帶劍)을 허리에 채워주오

So will ich liegen und horchen still,
Wie eine Schildwach', im Grabe,
Bis einst ich höre Kanonengebrüll,
Und wiehernder Rosse Getrabe.

그렇게 나는 누워서 귀 기울이겠소, 잠자코,
보초처럼, 무덤 안에서,
언젠가 내가 불 뿜는 대포의 굉음과,
우렁찬 진군의 말발굽 소리를 들을 때까지.

Dann reitet mein Kaiser wohl über mein Grab,
Viel Schwerter klirren und blitzen;
Dann steig' ich gewaffnet hervor aus dem Grab-
Den Kaiser, den Kaiser zu schützen!"

그 때에 황제께서는 내 무덤 위로 말을 달리시리라,
수 많은 무기를 부딪치고 번득이며;
그러면 나는 무덤에서 무장하고 솟구쳐 뛰어나와서
황제를, 황제를 호위할 것이오.”


두 척탄병(Die Beiden Grenadiere)은 슈만(R. Schumann 1810-1856)의 가곡이다.

이 곡의 가사는 독일의 시인 하이네(H. Heine 1797-1856)의 시 이다.

 이 詩의 배경은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이었다. 

유럽을 휩쓸던 나폴레옹의 대군은 러시아를 몰아붙여 모스크바까지 점령하였으나, 

겨울 동장군을 만나면서 러시아의 반격작전에 말려 정예 병력의 대부분-60만 명이라고도 함-을 상실하고 

나폴레옹은 겨우 5분의 1로 줄어든 패잔병만을 수습하여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이 詩에서는, 이러한 후퇴의 와중에서 두 사람의 척탄병(擲彈兵. 폭탄을 던지는 병사라는 의미.

 당시의 전쟁에서 척탄병은 정예병들로 구성되어 황제를 직접 호위하는 임무를 맡았다고 함)은 

황제 나폴레옹까지 적군에 포로가 되었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자신들도 적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부상당한 몸으로 가까스로 

독일 땅의 기지까지 도착한 상황에 여기서 이들은 황제를 위하여 목숨을 바칠 것을 결심한다. 

지금 패전의 국면이지만 다시 황제께서 군대를 일으켜 진군하는 날, 

무덤에서라도 뛰어나와 황제를 호위하겠다는 충성심을 이 詩는 노래하고 있다.

이와 같이 나폴레옹에 대한 충성심을 이 詩가 노래하고 있는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예비지식이 필요하다. 

나폴레옹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역사적 평가가 있다. 

그의 조국 프랑스에서는 대체로 일세의 영웅으로 평가하겠지만,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승리한 후 그를 붙잡아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보내어

 죽게 만들었던 영국에서는 무모한 모험꾼으로 보았다. 

그의 침략의 대상이었던 러시아에서의 평가도 물론 좋을 리가 없다.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에서는 “보나파르트라는 녀석”으로 묘사되어 있다.

- 오늘날에는 영웅 여부를 떠나서 그를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제위(帝位)에 올라 독재권력을 휘두른 ‘혁명의 이단아’ 정도로 보는 것이 일반적 시각인 것 같다.

 그런데 작시자 하이네가 생존하던 

당시 그의 조국 독일에서 나폴레옹을 바라보던 시각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은 헌법학상 국가 대 개인의 관계를 역전시킨 일대사건으로 평가된다.

 즉 혁명 전에는 개인이 국가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했지만, 

혁명을 통해 거꾸로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고의 역전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을 비롯한 시민혁명을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건으로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프랑스 혁명의 여파는 당연히 이웃인 독일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당시 독일은 통일이 되지 못한 상태로서 자신들이 봉건적 잔재인 

절대군주제의 속박 하에 있다는 자각 아래 프랑스 혁명의 이념(자유ㆍ평등ㆍ박애)을 

지지하는 지식인 계층이 나타나게 되며, 독일에 진입한 나폴레옹의 군대를 

‘혁명의 전파자’로 여기면서 환영하는 지식인 그룹도 생겨나게 된다. 

그들에게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은 독재자가 아니라 

암울한 독일의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혁명의 열쇠를 쥔 ‘총아’로 인식되었을 법한 일이었다.
하이네가 주로 활동했던 시기인 1820년 이후는 나폴레옹이 몰락한 뒤이지만, 

독일의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으므로 여전히 프랑스 혁명을 동경하며 

나폴레옹을 흠모하는 지식인 그룹이 존재하였다. 

하이네도 그런 그룹의 일원으로서 급진적 자유주의자로서의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나폴레옹의 몰락 후 프랑스에서는 반동적인 루이 18세의 절대 왕정이 복귀하였으나 

1830년에 7월 혁명이 발발하여 절대 왕정이 무너지고 새로이 입헌군주제가 성립되었다.

 하이네는 7월 혁명을 열렬히 지지하는 태도를 보이며 

 문필활동을 전개하였던바 필경 당국의 탄압을 초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831년 그는 조국을 영영 떠나 프랑스에 망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이네의 詩 (두 사람의 척탄병)도 이상과 같은 프랑스와 독일의 당시 상황에서 

그리고 하이네의 정치적 입지 등을 알아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황제가 잡히셨는데 내게 아내와 자식이 대체 뭐란 말인가?

 내 죽은 뒤 빌어먹도록 내버려 둬”하는 부분과 “

다시 황제가 전장에서 진격하는 날 무덤에서라도 떨쳐 일어나 황제를 호위하겠다.”는 부분이 될 것이다. 

하이네의 급진적 자유주의자로서의 성향과 아울러

 그의 낭만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엿보게 한다.
하이네 같은 자유주의자를 용납할 수 없었던 독일은, 

그 후 1871년 마침내 통일국가를 이룩하지만 

그것은 자유민주적 시민의 역량을 결집하여 이룬 것이 아니라 

수구적인 토지귀족과 군국주의적 세력의 무력에 기초한 것이었다. 

자유민주적 시민이 주도권을 상실한 통일 독일은 20세기에 

들어와 국가적으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일으켜 

인류에게 대량 살상과 대량 파괴를 자행하며 
끔찍한 인종 학살과 전쟁 범죄를 저지른 민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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