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sian Tank

탱크 포탑 꽃꽂이-Sticked stand to Battle Tank turret barrel in the land

슈트름게슈쯔 2016. 4. 28. 16:00



슬로베니아 전쟁(열흘 전쟁) 당시 파괴된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의 M84 전차 -1991년 




슬로베니아 민병대가 의도적으로 불을 질러 자폭시켜 버린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의 M84 전차 - 1991년 



유고슬라비아 전쟁의 첫 시작인 슬로베니아 전쟁(십일 전쟁)이 

1991년 6월 25일 슬로베니아 국경지대에서 시작되었다. 

유고슬라비아 정부는 독립을 선언한 슬로베니아 지역의 진압을 목적으로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을 슬로베니아 국경에 투입하였다. 

이에 슬로베니아는 국경수비대와 슬로베니아 지역방위군으로 대항하였다. 

이들은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을 저지하기 위해 도로를 차단하고 진지를 구축하였다. 

수 차례의 소규모 전투가 있었으며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1991년 7월 9일 브리유니 섬에서 정전 협상이 시작되자 양측은 교전을 중단하였고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는 3개월 간의 휴전을 선언하였다.

 협상 결과 인민군은 10월 26일까지 슬로베니아 지역에서 완전히 철수하였다.





파괴된 크로아티아군 M84D 전차의 포탑 꽃꽂이 



슬로베니아 전쟁에 이어 연달아 일어난 크로아티아 전쟁은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인들이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반대하면서 발생하였다. 

크로아티아 지역에서는 슬로베니아 전쟁 이전부터 

세르비아인계의 독립 반대 운동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는 새롭게 제정된 크로아티아 헌법 때문이었다. 

크로아티아 헌법은 세르비아계를 다른 국가 출신들과 동일하게 "자국민"으로 명시하였고 

이는 세르비아계가 크로아티아 내에서 "소수민족"의 위치에 놓이게 된 것을 의미했다. 

유고슬라비아 왕국 성립 이전의 상황으로 회귀하여 소수민족이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세르비아계는 크로아티아 정부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 

한편 유고슬라비아 연방 전체에서 세르비아계는 다수민족이었고 

연방정부 역시 세르비아계가 장악하고 있었다. 

또한 연방정부의 통제하에 있던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은

 개별 공화국의 분리 독립 움직임을 저지하고자 하였다.

 연방정부는 유엔의 묵인 아래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지역 방위군을 무장해제 시켰으며 

크로아티아 내의 세르비아계 반군을 지원하였다.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를 주축으로 한 군대가 크로아티아를 침공하여 

북부의 부코바르와 유네스코의 세계 유산인 남부의 두브로브니크를 파괴하였다. 

크로아티아 전쟁 초기 세르비아계의 이러한 공격에 대해 

서유럽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방관하였는데, 

영국의 언론인 존 V A 파인이 쓴 다음의 글은 당시 서유럽인들이 

이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무책임하고도 불필요한 분리 독립은 

장엄한 국가 유고슬라비아를 무너뜨렸다. 

슬로베니아가 자초한 이 전쟁은 자칫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우스타샤의 망령을 재현할 수도 있다. — 존 V A 파인 

서유럽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방관아래 벌어진 크로아티아 전쟁은 

세르비아계와 크로아티아계 양측 모두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양측의 전쟁은 1995년 크로아티아군이 세르비아계에게 승리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전차전 100년의 역사속에서 한번 볼까 말까한 희귀한 파괴 역학의 형태로 

마치 꽂꽂이를 연상케하는 파괴된 세르비아군 M84AS 전차의 포탑 - 1991년  





러시아군 대전차포의 공격을 받아 포탑 내부에서 발생된 급속한 대폭발의 충격에 의해 

125mm 활강포의 포신이 마치 장난감 처럼 땅에 꽂혀버린 조지아(그루지야)군의 T-72 전차 -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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