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6.25 전쟁 Korean War

1960년대 한국 인천 부평 미군 기지 애스컴 시티 -1960s U.S Army Ascom City in the Bupyeong Incheon Korea

슈트름게슈쯔 2016. 8. 15. 16:36











해방 3년후 1948년 인천 근교의 가을 풍경 





1948년 11월 인천 부평 미군 부대 애스컴 시티의 모습



1945년 9월 일본군 조병창을 접수한 미군은 부평을 군수기지로 활용했다. 

38도선 이남 지역의 점령 임무를 맡은 미 24군단 중에서

 인천지역을 맡았던 부대가 24군수지원사령부(ASCOM 24)다. 

한국전쟁 중에 잠시 3군수사령부(The 3rd Logistical Command)가 설치되기도 했다.

 곧 기지가 재편되면서 애스컴 시티로 정착해갔다. 

애스컴에는 병력대기소도 설치돼 있었기에 미국에서 건너온 병사들이 여기를 거쳐 전국 각지로 흩어졌다. 

 물자가 넘치는 곳에 사람도 몰리기 마련이다. 

일제강점기 조병창과 마찬가지로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애스컴 시티로 몰려들었다.

 미군을 상대로 몸을 팔아 돈을 벌려는 '기지촌 여성'들도 모였다. 

이 과정에서 많은 혼혈인이 태어났다. 

혈통 중심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대부분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미국 등으로 입양됐다.




애스컴 시티 주변 - 1954년





미군 병사가 회상하는 1962년 한국 인천의 서글픈 풍속도 


Go to this link to see the images originally taken as slides in 1962. DMZ area and Camp Kaiser. 

 This was Unchon-Ni in circa 1962, where all the bars were.  In recent times it was renamed Unchon City. 

 There were 56 bars there and maybe 2000 bar girls, lots of slicky boys too. 

 Girls worked for mama san and slicky boys stole from Camp Kaiser and sold what they got. 

 8th. Army wire dump was the biggest theft items to steal.

 Sometimes they were killed by our armed guards 

who were immediately given a free trip back to the states.  

Prostitutes came thru the wire into the hooches to work at night. 

 $2 short time G.I. ??  Can do!   All night in the vil was $5.


인천에 미군이 주둔한 건 1945년 9월부터 이다. 

대부분의 주한 미군기지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이후 생긴 것에 비하면 6년 정도 빠르다. 

보급창ㆍ의무대ㆍ공병대ㆍ통신대ㆍ항공대 등의 주한 미군부대들이 인천 부평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1970년 초반까지 주한 미군이 대규모로 한반도에서 철수할 때도 

부평의 미군기지는 경기도 북부, 대구, 부산 등의 전략적 기지들과 함께 존재했다.  

인천 부평엔 한때 미군수지원사령부(ASCOM: Army Service Command)도 주둔했다. 

그래서 부평의 미군기지를 애스컴시티라고 명명했다. 

애스컴시티는 1973년 6월 30일자로 공식적 기능을 마치고 해체된다. 

대부분의 부대와 시설은 한국의 다른 기지로 흡수 또는 통합됐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기지가 있는데, 캠프마켓(Camp Market)이라 불린다.

 이 기지는 2017년 하반까지 평택으로 이전할 예정이다.  

기지촌에서 태어난 혼혈아들  주한 미군기지 주변에 한국 사람들이 모여들어 생계를 유지했다.

 이 중엔 미군을 상대로 성(性)을 파는 '기지촌 여성'도 상당히 많았다. 

국가가 개입하기 전까지 기지촌은 번창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혼혈아가 태어났다. 

한국전쟁 후 혼혈인의 수는 급격히 늘어났다. 이들의 대부분은 미국 등으로 입양됐다.

 이들은 미국에서 '아메라시안(Amerasian)'으로 불린다. 

미국인과 아시아인 사이의 혼혈아를 뜻한다. 

 이들은 어머니가 한국인이었음에도 '혈통'에 의해, 국가의 방조 아래 해외로 입양됐다.

 한국은 한국전쟁을 겪고 나서 '반공'과 함께 '혈통'으로 국민을 확정했다. 

부(父)계 혈통 중심이었다.

 자신의 자녀를 직접 키우고 싶었지만, 사회적 낙인과 인종적 편견,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인해 양육을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혼혈아에 대한 혹독한 사회적 환경 탓에 한국 땅에서 혼혈아를 키우기 힘든 상황이었다. 

 인천 부평, 부산, 경기도 파주ㆍ동두천 등, 전후방 기지 지역에 

미군을 상대로 하는 기지촌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특히 애스컴시티는 1970년 초반까지 용산 미군기지보다 그 규모가 컸다.

 애스컴시티가 소재한 부평을 비롯해 미8군이 있는 용산, 동두천, 대구, 군산, 부산 초량 등 

전국 62개 기지촌에서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했던 여성은 대략 2만명으로 추산된다. 

부평에 많을 때는 1000여명의 기지촌 여성이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많은 혼혈아가 태어나서 얼마 안 돼 미군기지 주변에 버려졌다. 

그들의 미래에 도움이 될 거라는 위안 속에 적합한 가정에 입양됐다. 

전후의 참상에서 태어난 이들을 돌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 입양 기관과 원조 기구가 개입하기 시작했다. 

전후 60년에 걸쳐 한국 아동 약 20만명이 해외로 입양됐는데, 

그중 4만명 정도가 혼혈아로 알려져 있다.  

당시 피임방법이 흔하지 않아, 기지촌 여성들이 낳은 아이들 중에 

신촌(현 부평구 부평3동) 인근 논두렁이나 밭두렁에 버려져 죽은 아이도 꽤 있었다고 한다.



인천 - 1962년 9월 20일





부평의 가을 수확철 - 1963년 















1964년 애스컴 시티 모습 





60년대 부평 애스컴 시티 주변 거리




60년대초 인천 부평 애스컴 시티앞의 기지촌 






1960년대 인천 부평 모습




1960년대 부평 삼거리




1960년대 부평 전파사






인천 부평 신촌(현 부평구 부평3동) - 1968년 




1970년대 초반 인천 부평 신촌 입구 





인천 부평 신촌의 유흥업소 드림 보트 - 1970년대 초반


간판에는 칠성 코라의 전신인 스페시 코라의 마크가 그려져 있다.





인천 부평 애스컴시티에 복무하던 주한 미군 병사 Wayne Algood이 촬영한 사진들





인천 부평 애스컴 시티 주변의 주차장 - 1972년 




6.25동란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은 지독한 가난에 허덕였다. 

전쟁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고아들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주한미군과 한국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동들을 돌볼 여력이 없었던 정부는 이들을 대거 입양 보내게 된다. 

전쟁 피해 복구가 끝나고 산업화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1960년대 후반 이후에도 오히려 입양이 늘었다.

 2013년 보건복지부 입양 통계를 보면, 2012년까지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은 집계된 수만 16만5367명이다. 

국내 입양은 7만7082명으로 해외 입양의 절반도 안 된다.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해외 입양된 것을 감안하면, 해외 입양 아동의 수는 더 된다. 

 이로 인해 한국은 '아동 수출국'이란 오명을 안게 됐다.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고 IT 강국임을 자랑하면서도 

여전히 많은 아이를 해외로 보내고 있는 것이다.  

2015년 국내 모언론사의 기자는 한국인과 캠프타운 2015 컨퍼런스라는 

미팅의 취재과정에서 많은 입양 혼혈인들 만났다.

 그들은 자신을 버린 한국에 대한 사랑과 동시에 증오의 감정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에 꼭 가보고 싶다는 의지도 보였다고 한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우리는 모두 인생의 첫 장을 찾으러 한국에 가고 싶다. 

내가 태어난 곳, 엄마의 고향, 내가 뛰어다녔던 골목, 엄마가 생활했던 곳. 

엄마가 걸었던 곳을 나도 걸어보고 싶다. 

나나 엄마가 봤을 산이나 바다, 골목을 보고 싶다..






photo from : nandupressfocus.blogspo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