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드 배로우의 포드 V8 자동차와 샷건과 피스톨 - 1932년
클라이드 배로우(Clyde Barrow)의 브라우닝 자동소총
보니 파커(Bonnie parker)의 샷건과 피스톨
희대의 미국 강도 살인범 커플 보니와 클라이드
보니와 클라이드는 1930년대 전반에 미국 중서부에서 은행 강도와 살인을 반복한
보니 파커(Bonnie Parker)와 클라이드 배로우(Clyde Barrow,)로 이루어진 살인범죄자 커플이었다.
그들은 루이지애나 주에서 경찰에 의해 사살될 때까지 많은 살인에 관여하고 무수한 강도 행각을 저질렀다.
숲속에 잠복해 있던 경찰들에게 난사당한 포드 V8 자동차속 보니와 클라이드의 최후 - 1934년 5월 23일
보니와 클라이드 포드 V8 자동차에 난 톰슨 기관단총과 B.A.R 자동소총과 샷건의 탄흔 - 1934년 5월 23일
1934년 5월 23일 보니와 클라이드는 루이지애나주 비엔빌 군 패리시에 있는 시골 도로에서
1934년식 포드 V8를 타고 주행 중 잠복해 있던 경찰관들에게 걸려 사살당하게 된다.
연쇄 살인 강도 행각의 강력범 부부가 대낮에 자동차를 몰고 나타나자
4명의 경찰추적대(프랭크 해머, 매니 골트, 밥 앨콘, 테드 힌튼)와
2명의 루이지애나 경찰(헨더슨 조던, 프렌티스 모렐 오클리)에 의해 150발 이상의 기관총 세례를 받았다.
이 추적대는 1934년 2월 12일부터 추적을 시작한 해머가 이끌고 있었다.
그는 갱들의 이동에 대해 연구를 하였고 5개의 중서부 주의
가장자리를 지나며 둥글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도망자가 특정 주로 도망치면 그 주의 사법 경찰이 다른 주로
추적할 수 없다는 규정의 헛점을 악용한 것이다.
배로우는 그가 활동하던 시기 중서부에서 활약했던 존 딜린저와 비교해서
FBI 규정을 더 잘 알고 있었지만, 클라이드는 이동에 일관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해머와 같은 노련한 추적자들은 경로를 그려서 언제 가게 될 지를 예측할 수 있었다.
이들의 여정은 가족 방문에 중점을 두고 있었고,
그들은 루이지애나에 있는 헨리 메스빈의 가족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그의 가족은 추적 중인 해머와의 만남에서 그것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해머는 콜트사에서 모니터라는 모델로 제작된 민간용 20발 탄창을 가진
브라우닝 자동소총을 많이 확보하고 있었다.
1934년 5월 21일, 텍사스에서 온 4명의 추적자는 배로우와 파커가 메스빈과 함께
그날 저녁 비엔빌 패리시를 갈 예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슈레브포트에 있었다.
배로우는 그들이 이후 갈라지게 되면, 메스빈의 부모가 살고 있는 곳을 랑데뷰하는 곳으로 정했다.
실제로 메스빈은 슈레브포트에서 그들과 갈가지게 된다.
해머 대장, 댈러스군 보안관보 밥 앨콘 그리고 테드 힌턴(둘 다 배로와 파커를 알고 있었다),
전 텍사스 레인저 B.M. 매니 골트, 비엔빌 패리시 보안관 헨더슨 조던
그리고 그의 보안관보와 후임인 프렌티스 오클리로 구성된 추적대 전원이
깁스랜드 남쪽에서 세일리스 쪽으로 뻗어있는 루이지애나 주 154번 고속도로를 따라 매복을 했다.
힌턴은 21일 밤 9시에 그룹이 제 위치를 잡고서 다음 날 5월 22일까지 종일 기다렸지만
그들이 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있었으며
다른 이들은 22일 저녁까지 매복을 하고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5월 23일 오전 9시경, 실패했다고 생각하던 잠복한 추적대는
배로우가 훔친 포드 V8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다.
추적대의 공식 보고서에서 배로가 헨리 메스빈의 아버지와 말을 나누기 위해 멈췄으며,
그는 그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트럭을 세워두고,
그들 추적대가 있는 오솔길로 유인하게 했다고 한다.
경찰들은 일제 사격을 퍼부었으며, 배로우와 파커는 약 130발 이상을 맞고 사살당했다.
자신을 포함하여 잠복한 모든 이들이 오클리가 먼저 사격을 했다고 진술하고 있으며,
아마도 사전에 그렇게 하도록 순서를 정한 것 같았다.
배로우는 오클리의 초탄 헤드샷으로 즉사했지만, 파커는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 사망을 했다.
힌턴은 그녀에게 총격을 가하기 전에 배로우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비명을 질렀다고 보고를 했다.
경찰들은 특별 주문한 자동 소총, 샷건, 권총을 차를 향해 탄창의 총알이 다 소진될 때까지 난사했다.
테드 힌턴과 밥 앨콘은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우리들 6명 경찰 각각이 샷건 1정과 자동 소총 1정, 여러 정의 권총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자동 소총으로 사격을 시작했다.
우리가 차에 다가갈 때 자동소총은 소진되었고, 그후 샷건을 사용했다.
차에서는 연기가 흘러나왔고, 마치 차에 화재가 난 것처럼 보였다.
샷건을 다 소진한 후에 그들은 권총으로 차를 향해 쏘았으며,
자동차는 우리를 지나쳐서, 50야드 도로 아래 고랑에 쳐박혔다.
거의 뒤집힌 상태였으며, 우리는 차가 멈춰 선 이후에도 계속 난사를 했다.
우리는 여지를 남겨놓지 않았다.]
오늘 날 어떤 이들은 보니와 클라이드가 50차례 이상의 관통을 당했다고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시체마다 25개 이상의 상처가 있거나,
전체 50발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다.
검시관이었던 J. L. 웨이드 박사에 의한 1934년 공식적인 기록은
배로우의 시체에는 17발, 파커는 여러 개의 헤드샷을 포함하여 26발을 맞았으며,
한 발은 배로우의 척추뼈를 뚫고 나온 것이라고 발표했다.
총탄 구멍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시체를 담당했던 장의사 C.F. 부츠 베일리는
방부처리액으로 감당을 하기 어려워 시체를 염하는데 곤란을 겪었다.
두 사람의 시신은 댈러스에 각각 따로 묻혔다.
총격으로 벌집이 된 포드 V8와 클라이드가 마지막으로 입었던 셔츠는
네바다 주 프림에있는 관광 시설 프림 밸리 리조트에서 2009년에 공개되어 전시되고 있다.
1930년대 미국의 강도 살인범 커플 보니와 클라이드가 사용했던 1934년식 포드 V8 자동차
photo from : coleymonkey.deviantart.com
texashideout.tripo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