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6.25 전쟁 Korean War

6.25 전쟁시 낙동강 전선의 미 해병대 M26 퍼싱 전차 - M26 Pershing tank in the Naktong River Battle front during Korean War

슈트름게슈쯔 2016. 12. 6. 20:47



미 해군 군용 화물 수송선 LST에 실려 태평양을 건너와 부산항 부두에 하역된 미 제 73 중전차 대대의 M26 퍼싱 전차들 - 1950년 8월 





6.25 전쟁 당시 부산 방어선에 투입된 미군의 M26 퍼싱 전차 - 1950년 8월 




6.25 전쟁 당시 산속에 숨은 북한 인민군 패잔병들을 추적하며 M26 퍼싱전차의 

12.7mm 50구경 M2HB 중기관총을 겨낭하는 미 해병 순찰대  - 1951년 1월 17일




6.25 전쟁 당시 낙동강을 따라 물러서는 해병대를 지원하기 위해 언덕을 올라가는 미 해병대의 M26 퍼싱 전차 - 1950년 9월 3일 




 중국 공산군 포로들의 폭동이 지나간 후 포로수용소 감시에 투입된 미군의 M26 퍼싱전차 - 1952년 6월 부산    


1952년 6월 7∼10일에 부산 포로수용소에서는 공산 포로들이  

경비병에 반항하다가 1명이 피살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빌미로 북한 인민군과 중국 공산군은 폭동을 일으켰다. 

북한 공산군 포로들과 중국 공산군 포로들은 국군이 자기들에 대한  

처우를 혹독하고 잔인하다고 받아들여 못 마땅하게 생각했다.

 미국의 프로페셔널 프로파일러 다이앤 뱃져씨의 견해에 의하면 

그것은 유엔 인권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침략전쟁을 일으킨 북한군 전쟁 포로들과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 한반도에 투입되었던  

중국 공산군 전쟁포로 수감자들에 대한 남한과 타이완 민족주의자 요원들의  

전쟁 포로들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의 발로에 의한 처우 방법 때문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