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동부전선 소련군의 배급 보드카 - Eastern Front Soviet Red Army soldiers suppiled Vodka

슈트름게슈쯔 2016. 12. 22. 14:55



영하 40도의 혹한의 추위를 견디며 독일군과 전투를 벌이기 위해 배급된 보드카를 마시는 스탈린그라드의 소련군 병사 - 1942월 




하루에 배급되는 보드카를 마시는 소련군 상사  - 1942년


 겨울전쟁및 독소전쟁 당시 소련군은 전투시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하루에 100g의 보드카를 배급했다.






독소전쟁 당시 보드카를 마시는 소련군




1970년대말기 대한민국에서는 기타재제주로서 

1978년 8월 (주)백화에서 알렉산더가 보드카로서는 처음 출시가 되었다.

그리고 10월에는 롯데칠성음료(주)에서 보드카 하야비치가 출시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1979년에는 (주)진로에서 보드카 로진스키가 출시되었다.

 당시 한국에는 연 200억원 규모의 보드카 시장 삼파전이라는 

신문기사가 날 정도의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이 싸움에선 1년 만에 1000만 병 판매를 돌파한  하야비치가 승리했다. 

그러나 이후 1980년대 초부터 고급 위스키들이 출시되고 

먹고 살 만해지면서 기타재제주 보드카의 인기도 시들해졌다. 

그러다가 1990년 기타재제주는 주세법에서 삭제됐다.

 싸구려 취급을 받은 한국 보드카 술들은 모두 단종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국산 보드카들이 사라져버린 대한민국에서 

현재 수입산 보드카의 시장 점유율은 큰 변동 없이

스웨덴산 앱솔루트가 1위, 영국산 스미노프가 2위를 기록 중이다.

1941년 8 월 22일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나꼬무브스끼(Narkomovskie 100 grams)백 그램이 시작된 날이다.

그 날 소련의 국방위원회 (SDC) 위원장인 이오시프 스탈린은 소련군에게 

매일 발급되는 반컵의 보드카에 대한 군인의 법령 №562에 서명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41년 9 월 1일부터 최전선에 파견된 소련 군인들은 하루에 보드카(40도) 100그램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후 소련 군대에는 CPSU의 정치국 위원장의 직접 지시하에 군대에 보드카가 공급되었다.

 소련 인민위원회 아나스타스 미코얀의 식품 산업은 소련군에게 앞으로 많은 요소의 물품들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보드카를 분배하기 위해 전선 지휘관을 개인적으로 관리해야 했다.  

이어서 (1942년 5월부터 1943년 11월까지) 붉은 군대에 보드카를 공급하는 절차가 여러번 변경되었다. 

보드카 수당을 받을 수 있는 서클의 전투원은 다른 부대와 다양한 전투지에서 복무를 할 수가 있었다. 

소련군에게 먹고 마시는 식량과 보급품의 증가는 전투에 대단한 영향을 끼쳤다.

1942년 11월 25일부터 12월 31일까지는 제 2차 세계대전중 가장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은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련군이 독일군을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모든 전선의 소련군에게 120 만 리터의 보드카를 공급되었다.

동부전선(소련군에게는 서부 전선)에 1 백만리터 그리고 카렐리야 전선에 364,000리터와 

스탈린그라드 전선에 407,000 리터가 공급되었다.

  1943년 11 월 23 일 쿠르스크 전투 3 개월 후 

드네프르강을 건널수 있게된 스탈린은 

나꼬무브스끼(Narkomovskie 100 grams)백 그램의 규칙을 승인했다.

그것은 최전선에 있는 군인들은 100g을 공급하고

 그외 다른 군인들은 50g을 공급한다 였다.

독소전쟁 당시 독일은 자국 군대 병사들을 용맹한 전사로 

 만들어내기 위해 메타 암페타민 마약을 공급하여 전쟁터에 투입시켰다.

그리고 소련은 자국 군대 병사들에게 혹한을 견디고 용감하게 적과 맞서기 위해 

40도의 보드카를 공급하며 전투에 투입시켰던 것이다.

그야말로 독소전쟁의 이면은 메타암페타민과 보드카의 전쟁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