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2년후 콜라를 마시는 서울의 갓 쓴 선비 - 1947년
6.25 전쟁 당시 부산 보수동 시장의 콜라 판매 가판대와 미군 병사 - 1952년
당시 콜라는 구하기가 힘들어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콜라에 물을 섞어 팔았다.
6.25 전쟁 당시 주전자로 콜라병에 우유를 부어 파는 부산의 가판 우유상 -1952년
칠성 스페시코라 신문광고 - 1964년
1964년 겨울. 연말연시 선물용품 광고들 속에 뜻밖의 물건 하나가 끼여 있다.
'동방청량음료'가 제조한 국산 콜라다.
'즐겁고 행복한 맛을 선물하세요'라며 24병들이 박스를
고마운 분들께 선사하라고 권유했다(조선일보 1964년 12월 22일자).
엄동설한의 콜라 광고부터가 생뚱맞은데, 한술 더 떠 연말연시 선물용이라니….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들지만, 53년 전 콜라는 그럴 수도 있는 상품이었다.
당시 광고에 비친 '콜라'라는 상품은 더위 쫓으려고 부담 없이 들이켜는
청량음료라기보다는, 낯설고 달콤하고 자극적인 '서양의 맛'이었다.
사이다는 구한말부터 수입됐지만, 콜라는 1950년 6·25 때 미군과 함께 이 땅에 들어왔다.
1960년대가 되자 몇몇 국내 업체들이 콜라를 만들어 내놓았다.
추위가 채 가시지 않았던 1962년 2월 14일 조선일보에 국산 콜라 광고가 첫선 보였다.
동양맥주주식회사가 만든'OB콜라'다.
'바다를 건너온 味覺(미각)!'을 광고 제목으로 붙였다.
석 달 뒤 동방청량음료의 '스페시코라'도 콜라 시장에 뛰어들었다(1962년 5월 5일자).
‘콜라를 연말연시 선물로 주고받자’는 국산 콜라회사의 광고(조선일보 1964년 12월 22일자).
그러나 국산 콜라 시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1968년 5월 24일 '세계에 뻗치는 미국 자본의 상징'인 코카콜라가 마침내 국내 생산을 시작했다.
타격을 입은 국산 콜라 회사들은 '한미음료'라는 회사를 함께 세워
미국과 손잡고 1969년 2월 8일부터 펩시콜라를 국내 생산하며 코카콜라에 맞섰다.
세계 2대 콜라의 혈전이 시작됐다(1968년 5월 23일자, 1969년 2월 27일자).
이 당시 콜라 값은 190mL 한 병에 30원.
같은 양의 휘발유 값보다 8배나 되었다.
오늘날 콜라 가격이 휘발유의 약 70% 선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콜라가 무척 비싼 음료였음을 알 수 있다.
오늘의 콜라는 대부분 옥수수에서 뽑아낸 액상과당으로 단맛을 내지만
53년 전 콜라는 '순설탕'을 넣었음을 강조했다.
1960년대엔 설탕을 '다이어트의 적'으로 기피하는 대신,
부족한 칼로리를 채워 주는 중요한 열량 공급원처럼 여겼다.
칠성코라 1968년 광고
칠성코라 1969년 광고
70년대 칠성코라
1970년대 동두천 유흥업소의 미군 램버트 병장과 한국 칠성 코라 여성
코카 콜라병 - 1970년 춘천
탤런트 사미자씨의 1리터 유리병 코카 콜라 신문 광고
1970년대 말기에 출시되었던 대형 1리터 유리병 코카 콜라
1986년 해태에서 미국 콜라 원액을 수입하여 판매했던 콤비콜라
IMF 외환위기 다음해 1998년 범양식품에서 출시하여 절찬리에 판매되었다가
사라진 한국의 콜라였던 815 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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