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考古學]

경기도 시흥군 안양읍 석수동 풍경 1968년 8월

슈트름게슈쯔 2017. 8. 14. 18:02



경기도 시흥군 안양읍 버스 주차장 - 1968년 8월 









경기도 시흥군 안양읍 석수동의 미군부대 클럽 표지판 - 1968년 8월 







경기도 시흥군 안양읍 석수동의 광명당 시계점 -1968년 8월




석수동 수영장 - 1968년 8월 






석수동 수영장 근처의 민속 춤판 - 1968년 8월 




시흥군 제 1 대용 성병진료소와 실비여관과 쌍마 위스키 광고 간판 - 1968년 




경기도 시흥군 안양읍 석수동 동네 주민들의 사설 전화국으로 이용되었던 다용도 상점 대림당  - 1968년 8월 



시흥군(始興郡)은 1895년부터 1988년까지 존재했던 경기도의 행정 구역이다.

시흥군은 1989년 1월 1일 시흥시, 군포시, 의왕시 등

 3개시로 분리·승격되면서 폐지되었다. 

현재의 시흥시 지역은 구한말까지 원래 안산군과 인천부(일제강점기 이후 부천군)에

 속했던 지역으로 결과적으로 시흥이라는 명칭만 이어질 뿐 

대한제국 시기의 시흥군 지역과는 다른 곳이 되었다.

안양 석수동은 관악산과 삼성산에 둘러싸인 안양유원지 일대에 석공(石工)이 많아 

석수동(石手洞)이라 하였으며,

 만안교와 만안교비도 이석공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석수동은 삼성산 서남쪽 사면에 있으며, 수림이 울창하고 

물이 맑아 경관이 아름다운 신흥택지개발지역이다.  

1932년 이곳에 수영장을 건설하면서 관악산과 삼성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맑고 깨끗하여 석수동수영장이라고 하였는데 

시제(市制)가 실시되면서 수영장 이름을 차용하여 동 이름을 지었다.  

조선시대에는 시흥군 군내면 안양리였다. 

1914년 시흥군 동면 안양리로 행정구역이 바뀌었고, 

1963년 안양읍에 편입되면서 신안양리(新安養里)로 바뀌었다. 

1973년 안양시 석수동으로 승격되었고, 

1979년 석수1·2동으로 분동되었다. 

1990년 석수2동이 석수2·3동으로 다시 분동되었고, 

1992년 만안구에 편입되었다.  

법정동인 이 동은 행정동인 석수1~3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삼막골·신촌·벌터·충훈부·꽃챙이 등이 있다.  

 석수1동은 안양지역 불교문화의 발상지이며 문화재의 보고이다. 

석수3동에 있는 충훈부(忠勳府)는 조선 중기 나라에 공을 세운

 신하들이 있던 충훈부라는 관청이 있었던 곳으로 옛 시흥군 유일의 관아였다.   

자연마을인 꽃챙이는 미곡 저장창고와 철쭉밭이 있던 곳으로

 1959년 광명시 가학동 공석골 출신의 성만제가 

이 마을에 정착하면서 벚나무를 비롯하여 

각종 꽃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석수역, 관악역, 석수전화분국, 경기도 석산사업소 등이 있으며,

 안양유원지를 끼고 있어 풀장이 많다. 

경부선 철도와 경수산업도로, 만안로, 중앙로 등이 지난다.

1932년 개설된 수영장을 석수동 수영장(石水洞 水泳場)이라고 하면서 

석수(石手)가 석수(石水)로 바뀌게 되었다. 

석수동은 안양시의 관문으로 서울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경수산업도로, 제 2경인고속도로에 인접해 있다. 

안양예술공원(구 안양유원지), 관악산, 삼성산, 산림욕장, 삼막사 계곡은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삶을 윤택하게 한다. 

그 외에도 삼막사, 안양사, 염불암 등 문화재 다수가 소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