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왕조가 금강산에 새긴 글자들의 자연석 훼손 형태
예로부터 한국인의 조상들은 자연석 바위에 글자를 새기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일제강점기였던 1934년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금장리 석장사(石丈寺) 터 부근에서 발견된 돌로
신라의 두 화랑이 학문에 전념할 것과 국가에 충성할 것을 맹세한 내용을 담은 임신서기석 처럼
삼국시대 신라의 화랑들은 한반도의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바위에 그들의 이름을 새기기도 했다.
신라 진흥왕은 영토 확장시 경상도 창녕과 경기도 북한산 비봉및 함경도 황초령과 마운령등에
바위에 글을 새긴 순수비들을 세웠다.
또한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은 만주 집안현 통구에 거대한 비석을 세워 역사를 남겼다.
하지만 그러한 형태와는 달리 세계 최고의 형태로 자연석을 훼손시키며
지저분한 글들을 새겨서 후대에 길이길이 욕을 들어먹는 형태가 있다.
조선시대의 문인 이상수는 “금강산에 갔더니 바위에 이름과 시문들을 하도 많이 새겨놔서
장안사 입구에서부터 명경대를 거쳐 만폭동에 이르기까지 빈틈없이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나에게 허락할 기회를 준다면 쓸 만한 것만 남겨 두고 어지간한 것은 모두 도끼로 찍어 없애고
묵으로 뭉갠 후 찬물로 사흘간 씻어 없애버리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어 속된 선비가 명산대천을 더럽히는데도 법이 이를 금하지 않는다고 한탄했다고 한다.
북한의 발표에 의하면 강원도 금강산에만 80여 곳에 자연석을 파내어
새겨진 글자만해도 무려 4,500자가 넘는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형태로 금강산 외금강 온정리에서 옥류동으로 향하면
커다란 너럭바위에 한 자 크기가 2m가 되는 ‘금강산 김일성’이란 바위글자가 새겨져 있다.
옥류동 계곡 바위에는 글씨 잘 쓰기로 유명했던 조선시대 양사언의 글씨가 많이 보인다.
또한 조선시대 양사언뿐만이 아니고 많은 옛 선비나 고을 수령들은 바위에
자기 이름 석 자를 새기는 일을 좋아했는지 곳곳에 이름들이 눈에 띈다.
그리고 구룡폭포 왼쪽 큰 바위에는 미륵불(彌勒佛’)이란 한문글자가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크기로 새겨져 있다.
예전에 이 글자를 몰랐던 남쪽 관광객 한 사람이 이 글자가 무슨 글자냐고 물었다가
북한 관계자에게 큰 곤욕을 치르게도 된 일도 있었다고 한다.
금강산외 묘향산, 수양산, 삼각산 등 한반도 온 산천에 있는
바위란 바위에는 옛사람들의 새겨진 글자를 보게 된다.
그러나 김일성 왕조에 버금가는 형태로 자연석을 훼손하여 거창하게 글씨를 새긴 자는 없다.
금강산 기암 괴석에 새겨진 글자 한 개의 길이는 6미터에서 어떤 것은 10미터까지 이른다.
그리고 어떤 지방에서는 음각이 아니라 양각도 있다.
음각은 눈이 쌓이면 그게 메워진다.
그래서 양각으로 글자가 도드라지도록 새겼다고 한다.
명령을 하달받은 북한의 석공들은 그것을 새기느라 아슬아슬한 절벽에 밧줄을 타고 내려가서
글자를 새기다가 죽은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이런 것들은 앞으로 통일이 되면 한반도에서 대대손손
이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되느냐 또한 상당히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과거에 황장엽 노동당 비서는 고강도 시멘트로 메워버리는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했다고 한다.
예전에 금강산을 관광했던 대한민국의 어떤 청년은 붉은 글씨로 새겨진 김일성 장군의 노래 바위를 보고
“저 바위를 직접 보았을 때, 난 바위가 피눈물을 흘리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것은 그야말로 글자가 새겨진 곳 주변의 하얀 부분이 눈물 자국으로,
붉은 글씨가 핏방울처럼 보이는 너무나 고약한 낙서이다.
당시 어떤 북한의 주민도 “저렇게 굵고 깊게 바위에다 선명하게,
파 놓았으니 자연유산인데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고
또 다른 주민은 “북한의 산들은 바위 글 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