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독일 공군 도르니에 17 경폭격기 폭탄 수송 말달구지 -German Luftwaffe Dornier Do 17 midium Bomber Bomb Transport Horse carrier

슈트름게슈쯔 2018. 7. 25. 20:30



2차 세계대전 영국 본토 항공전(Battle Of Britain )당시 

영국 런던 상공의 독일 공군 도르니에 17 경폭격기 - 1940년 9월 7일





영국 런던 상공에  50kg 짜리 폭탄을 20개 투하 하는 독일 공군의 

도르니에 17 경폭격기 - 1940년 9월 20일 


독일 공군 도르니에 17 경폭격기의 최대 폭탄 적재량은 고작 1톤이었다.




그리스 아테네 상공의 독일 공군 도르니에 17 폭격기 편대- 1941년 5월 18일 



도르니에 17 은 제 2차 세계대전 발발 5년전 독일 도르니에(Dornier)사가 개발한 경폭격기였다. 

도르니에 17 경폭격기의 별명은 비행하는 연필'(Fliegender Bleistift-flying pencil-)이었다.

그러한 별명은 가느다란 동체라는 형태와 우드득 부러지듯이 연약한 내구성 때문이었다.

 생산자체는 도르니어사 말고도 HFW(헨쉘-Henschel-), 

HFB(블롬 운트 포스-Blohm & Voss-), 지벨(Siebel)사에도 만들어졌다. 

 도르니에 17 은 독일의 유명한 항공기 설계자인 

클라우디우스 도르니에(Claudius Dornier)가 직접 설계한 기체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폭격기로 사용하고자 제작한 항공기는 아니었다.

1932년에 제작의뢰를 받아 루프트한자의 여객수요를 위해 제작 첫 기체가 제작되었으나, 

실제로는 여객수요가 아닌 우편배송용 기체로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나 히틀러 집권 이후 독일이 본격적으로 재군비에 나서면서

 도르니에 17은 독일 공군의 주목을 끌게 된다.

 이후 폭격기로 개조되면서 엔진을 BMW의 BMW VI 수냉식 엔진으로 교체하여

 속도를 향상시켜 고속 경폭격기로 자리잡았다. 

이후 스페인 내전에서 대활약을 하여 독일 공군을 만족시켰다.,

그리고 다시 개량되어 E, F형이 나왔는데 

이것이 도르니에 17 계열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기종이다. 




독일 공군 도르니에 17 F1 KG 77 경폭격기 상부의 기관총좌 



도르니에 17 폭격기는 제 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폴란드와 노르웨이, 프랑스 침공 등지에서 주력으로 사용되었으나

 메서슈미트 Bf-110 전투와 융커스 Ju87 수투카 급강하 폭격기와 

마찬가지로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영국 공군 전투기들의 공격에 참패하고 말았다.

 도르니에 17은 근본적으로 경폭격기이다 보니 폭탄 적재량이 많지 않았다.

 이러한 형태는 도버 해협을 건너가서 폭격을 가하는 영국 본토 폭격에는 

매우 비효율적인 출격이자 독일 공군 승무원들의 목숨을 고스란히 

영국 상공 아래로 버리는 치명적인 형태를 초래했다.

그러한 관계로 독일 공군의 도르니에 17 폭격기 편대는 

영국 본토 폭격에 투입을 시켜도 큰 효과가 없었다. 

도르니에 17의 여러 파생형중 가장 폭탄 적재능력이 큰 것이 1톤이었다.

반면에 독일 공군의 경폭격기 하인켈 He 111 폭격기는 2톤 이상이었다.

도르니에 17은 미국 공군의 P-47 썬더볼트 전폭기의 최대폭탄 적재량보다도 적었다.

게다가 이 기체는 고속으로 제작었다지만 제작된 연도는 시대가 떨어지는 1934년이었다.

그래서 도르니에 17 폭격기는 1940년이 이르러서는 졸지에 저속 폭격기가 되었다.

 도르니에 17의 최고속도는 426km/h이라 영국 공군의 주력전투기 스핏파이어 전투기와 

허리케인 전투기들을 만나면 그대로 손쉬운 사냥감이 될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이 시기 생산모델의 경우 원래 탑재시키기로 했던

 엔진의 우선순위가 메서슈미트 Bf-109 전투기로 돌려지다보니 보다 

저속 엔진을 탑재해서 속도가 저만큼도 안나왔다. 

 그렇다고 폭격기 자체무장이라도 강화하기에는 

기체가 작고 가벼우며 엔진 마력이 약해서 거의 불가능했다. 

결국 도르니에 17 폭격기는  막대한 피해를 입고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패퇴했다. 

이후 도르니에 17 폭격기는  유고슬라비아 침공때와 

그리스 침공, 독소전쟁 초반기에 활약을 했으나 

기체 생산이 중단되고 소모되는 기체를 보충하지 못했기 때문에

융커스 Ju 88폭격기가 계속 생산되면서 일선에서 물러났다.

 다만 핀란드와 루마니아, 헝가리,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독립국 같은 

추축 동맹국들과 스페인, 스위스, 유고슬라비아에서 운용했고, 

독일 공군도 연합군의 공습에 맞서기 위한 야간 전투기로서 사용하기도 했다.




독소전쟁 당시 독일군이 징발해와 모두 얼어죽은 수만마리의 서부 유럽산 말들과는 달리 

러시아의 동절기 영하 30~40도의 혹한 기후에서도 생명력이 매우 강하여 

얼어죽지 않고 잘 견디는 소련군의 비밀병기중 하나였던 

코카서스산 조랑말의 말달구지- 1942년 





동부전선 혹한의 기후에 설원 비행장으로 독일 공군 도르니에 17 폭격기에 적재시킬 

50kg 짜리 폭탄을 실어 나르는 소련 농가에서 징발한 코카서스산 조랑말의 말달구지 - 194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