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게슈타포 동조 체코슬로바키아 여성 헤르타 카스파로바의 교수형 Czechoslovakian female Gestapo collaborator Herta Kašparová execution

슈트름게슈쯔 2019. 2. 20. 23:47









제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자기 동족을 배신하고 나치 독일 게슈타포에 동조했던  23세의 여성 

헤르타 카스파로바에 대한 전후 체코슬로바키아인들의 인민 재판에 의한 교수형 -1946년 9월 13일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체코의 여성 헤르타 카스파로바 (Herta Kasparova)는 

체코어와 독일어를 모두 구사하는 체코인이었다.

그녀는 출생시 부분적으로 장애가 있었다.

오른쪽 다리가 허약했던 관계로 인해 그녀는 장애를 지닌 불완전한 다리를 가지게 되었다. 

몇 가지 기록에서 그녀는 그 핸디캡으로 인해 어린시절 친구들로 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조롱을 당했다고 한다.

전쟁중 그녀의 이중 언어 기술은 그녀를 체코 트르제슈티에 있던 

독일 게슈타포의 번역자로 활동할 훌륭한 후보자로 만들었다.

 보고서는 그녀가 독일인에게 동조한 지원적 수준이 정확히 높았던 수준으로 보았다. 

그것은 그녀가 체코어로 된 문서를 독일어로 번역했기 때문에 독일인들은 체코인들과 대화가 가능할 수 있었다. 

그녀는 또한 그녀의 마을에서 가능한 반체제 인사들의 움직임을 보고하는

 '수사관'으로서 그들을 위해 일했다고 주장되었다.


그러나 전쟁의 종말이 가까워 질수록 그녀는 같이 고향에서 자라왔던 

네 명의 체코 청년들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초래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들의 행동을 게슈타포에 보고했으며  이후 4명 모두가 같은 날에

독일군  총살대에 의해 간접적으로 처형 당했다. 

그녀에 의해 처형된 청년들 중 적어도 두 명은 어린시절

그녀가 절뚝거리는 장애에 대해  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를 가지게 

만든 사람들 중 한 명 이상일 것이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시점에서도 확인이 되지 않았으며, 목격자에서 부터 사망자까지 그러한 소문이 파다했다. 

그녀가 그 사건에 대해 다른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명확하게 공개되지 않았다. 

그녀는 '복수에서 벗어났다'고 말했지만 그러한 주장에 관해서는 구체적이지 않았다.


전쟁은 독일인들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젊은 헤르타 (Herta)에게 불운으로 작용했다.

 전쟁이 끝나자 그녀는 1945년에 인도된 4명의 젊은 반체제 인사들의 죽음으로 인하여 

'인류에 반하는 범죄'로 체포되었다. 

그녀는 1946년 23세의 나이에 자신이 저지른 범죄로 인해 사형을 선고 받았다.


집행 문서에 따르면 그녀는 교수형을 당했다.

그녀는 납작한 로프의 일종에 의해 

주 기둥에 부착되어 길이 3m, 너비 60cm, 두께 5cm의 임시로 거치된  판자에 기대어 서 있었다. 

올가미는 후크를 통해 기둥에 부착되어 있었으며 그녀의 뒤에 서있는 사형 집행관에게 구멍을 통해 공급되었다. 

판자가 제거되었을 때 사형 집행자와 그의 조수는 손으로 올가미를 뽑아 효과적으로 그녀를 기둥과 밀착시켰다.

 이러한 형태는 일반적인 형태의 교수대는 아니었다.


사진들은 그녀가 체포되기 전과 재판 중 그리고 사형 직전 성직자 신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가 스카프를 들고 우는 이미지는 그녀에게 사형 선고가 선언된 직후에 찍혔다. 

보고서에서 그녀는 처형이 될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대신에 투옥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언급했다.


목격자 중 한 사람의 사망 발표문에 따르면 처형장은 울타리안에 설치 되었으며 

교수형울 허용한 사람들은 그녀의 조국 배신 행동으로 인해 나치 독일의 게슈타포에게 

사형을 당했던 4명의 체코슬로바키아 청년들 가족이었다. 

증인은 또한 헤르타가 기둥을 처음으로 보았을 때, 그녀는 무릎을 꿇고 쓰러지는 것을 매우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녀는 경비원들에 의해 들려져야 했다. 

그녀는 로프에 묶일때도 죽음에 대한 당혹감으로 매우 두려워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