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총,라이플,피스톨

일본군 92식 딱따구리 중기관총의 보탄판 - Woodpecker Nickname Japanese Type-92 HMG Bullets of connects Ped Portative strips

슈트름게슈쯔 2019. 8. 21. 23:15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이 딱따구리라고 별명을 붙여 불렀던 일본군의 공랭식 92식 중기관총과 

구리 금속제의 실탄 연결 탄띠였던 보탄판(Portative strips)

 

제 2차 세계대전중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은 일본군의 공랭식 92식 중기관총을 

전선에서 노획하여 전투에 활용하기도 했다.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육군의 호치키스 기관총을 카피하여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사용했던 공랭식 92식 중기관총의 

실탄 연결 접착식 탄창이었던 보탄판의 장점을 꼽자면  

재질이 구리 금속으로 제작되어 그 내구성은 

 캔버스제 탄띠에 대해 월등히 좋았다.

특히 92식 중기관총의 보탄판에 장착될

캔버스제 탄띠는 수분에 의한 팽창 및 수축으로 급탄 불량을 야기했다. 

또한 1차 대전 중 사용한 소사 기관총은 탄창식이었지만, 탄창의 열악한 내구성 때문에 악평에 시달려야했고, 

이 또한 프랑스 군의 평가에 어느정도 영향을 주기도 했다. 

보탄판은 짧게는 5발에서 많아봐야 50발로 제작되었고, 일반적으로 20~30발을 사용했다. 

그래서 탄띠보다 무게면에서 유리했고, 사격 후 이동하더라도 그냥 총 째로 들고 이동하면 되었기에 기동성이 좋았다. 또한 직선형이라 차곡차곡 쌓으면 되기에 탄박스 내에 적재하기도 유리했다. 

하지만 탄띠식은 200~300발, 많게는 500~1000발 들이도 있었기 때문에 매우 무거워 

기동성이 형편없었고, 말아넣어야 하기에 부피도 컸으며, 지나치게 뻣뻣하여 부사수가 잡아줘야 

원활한 급탄이 가능했다. 게다가 맥심식 탄띠는 탄 사이사이에 금속제 가이드가 부착되서 

같은 탄 숫자라도 현대식 탄띠보다 2배는 더 길어 걸리적거림이 상상을 초월했다. 

그래서 기관총 사수들은 걸리적거리는 사용한 탄띠를 칼로 잘라버리곤 했다. 

보탄판의 가장 큰 장점중 하나로, 판 하나만 가공하면 되기에 제작방식이 

매우 간단하여 탄클립 수준으로 저렴했다. 

따라서 전장에 유기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어 그냥 마구마구 찍어내기 편했다. 

앞서 언급한 바와 마찬가지로 당시의 탄띠는 기존 탄피를 배출하고 

탄띠에서 탄을 분리한 후 약실로 밀어올려서 노리쇠로 공급을 해야한다. 

따라서 맥심 기관총과 같이 거대한 노리쇠에 상하 전후로 노리쇠가 왔다갔다 해야 했다.

 이렇게 하면 구조가 매우 복잡해지고, 이에 비례하여 무게도 무거워진다. 

반면 탄창식은 노리쇠가 후퇴 전진만 하면 추출 공급이 한큐에 진행되기 때문에 

매우 간편하여 설계 여유가 컸다.

 Mle 1909가 괜히 가벼운것이 아니다. 

보탄판은 매커니즘 상 탄창식과 유사했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웠고, 

장전속도는 탄창보다 빨랐기 때문에 어차피 부사수가 있다면 추가공급에 의한 지속사격 능력은 거의 유사해진다.

그리고 일본군의  공랭식 92식 중기관총의 실탄 연결 접착식 탄창이었던 보탄판의 단점을 꼽자면  

보탄판은 지속사격능력이 좋아봐야 탄창수준이었다. 부사수가 숙련된 사람일 경우 탄띠에 근접한

사격능력을 낼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거나 혹은 부사수가 없으면 탄창보다 약간 나은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거치식 중기관총을 이런 물건으로 쓰게되면 탄띠식 화기에비해 당연히 화력에서 밀리게된다. 

때문에 여러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캔버스제 탄띠에 비해 대중화되는데 실패하게 된다. 

따라서 무게 문제가 해결되면서 보탄판식은 탄띠식에 비해 나을것이 없었고, 맥심 탄띠에서 개선된

브라우닝식 탄띠가 보급되며 프랑스 또한 보탄판을 버리고 탄띠식으로 간다. 

측면공급식 탄창과 유사한 문제인데 판이 좌우로 움직이기 때문에 총의 좌우 흔들림이 심해진다. 

삼각대나 좌우가 고정된 양각대를 사용하는 기관총이면 큰 문제가 없을 지 모르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명중률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된다. 

그 때문인지 프랑스는 호치키스 M1909기관총을 보병용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탄창의 보급 기술이 발전하면서 탄창이 저렴해지고 많이 보급되어 더 이상 보탄판의 저렴함이

탄창의 장점을 완전히 덮기 힘들어졌다. 환경 내구성은 탄창이 훨씬 월등하고, 설계만 잘 할 경우

급탄불량도 적고, 교환과 보급도 쉽다. 따라서 1925년 프랑스는 BAR 베이스의

탄창식 FM 24/29 경 기관총을 도입하여 소사와 Mle 1909와 같은 보탄판식 경기관총을 모조리 교체하려 한다. 

기관총 탄창 역사에  그보다도 근본적인 문제가 등장했는데 그것은 바로 새로운 금속탄띠가 등장한 것이었다.

금속탄띠는 기존의 캔버스제 탄띠의 단점을 모조리 해결하여 유지관리가 쉬웠다.

부피도 그리 크지않아 탄통안에 쌓아넣기도 편했고, 캔 안에 말아넣기도 편했다.

보탄판은 금속탄띠의 조상격인 물건이었기에 나을것이 전혀 없었고,

곧이어 대부분의 국가가 모조리 금속탄띠를 사용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