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의 2인치 참호 박격포
영국군의 2인치 참호 박격포의 포탄은 역사상 1592년 조선 중기 임진왜란 당시 이장손이 제작했던
왜구 격퇴용 대완포구(大碗砲口) 발사 시한폭탄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와 비슷한 둥근 구형(球形) 포탄이다.
영국군은 제 1차 세계 대전 초기 대대급 부대에도 배치된 박격포대의 숫자가 매우 적거나 전무했다.
전선은 교착된 상태로 참호전의 양상을 띄면서 독일군 박격포의 효과가 명확 해짐에 따라 영국군 수뇌부에서는
다양한 크기의 참호 박격포가 보병 부대에 필요하다고 결정했다.
발사체가 둥근 구형의 특징적 모양을 가진 2인치 참호 박격포는 영국군 최초의 경 박격포중 한종류였다.
이 박격포의 별명은 자두 푸딩(plum pudding) 또는 사과 캔디( toffee apple)였다.
영국군의 2인치 참호 박격포는 최전선에서 배치된 영국군의 최전방 포병대였다.
이 폭발성 발사체 무기는 반대편의 적의 참호에 무인 지대를 가로 질러 단거리에서 발사 시킬수 있었다.
2인치 참호 박격포의 최대 사거리는 600 야드 미만이었으며 정확한 유효 사거리는 350 야드까지로 간주되었다.
1915년에 영국 육군에 도입된 2 인치 박격포는 원래 영국 왕립 포병 대대에서 파견된 사람들로서
왕립 포병의 일부 전문가들이 포병 대원들이었다.
그러나 영국 최초의 현대식 보병용 경 박격포인 스톡스 박격포 보병 대대가 운용하는 3인치 박격포가 도입되면서
2 인치 박격포대의 운용은 유일하게 영국 야전 포병대가 맡았다.
영국군 2 인치 박격포대 박격포 위치는 종종 최전선 바로 뒤의 2차 보병 참호에 구축되어 있었다.
이것은 잠재적으로 참호 박격포 포대의 폭발로부터 보병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영국군의 2인치 참호 박격포는 종종 독일군의 단거리 박격포였던 마인베르퍼에 대항하여 불쾌감을 유발시키는
국지적 도발 행동으로 여러 전지에서 발사시키기 위해 여러 구역에 배치되었다.
1917년 2월에 작성된 영국군의 포병 운용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군 2인치 참호 박격포대는 독일군의 포격에
의해 파괴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손실을 막기 위해 포격의 마지막 날까지 이 박격포의 발사를 연기하는 일이
종종 발생할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영국군의 2인치 참호 박격포는 전선의 틈새를 깨끗하게 유지하고 포격의 격차가 큰 포격을 겪는 동안
보병이 전개하는 모든 기습 공격을 지원하는 임무를 맡았다.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구축한 영국군 참호속의 2인치 참호 박격포 - 1917년
2인치 참호 박격포의 포탄은 2분 마다 1발씩 발사할 수 있었다.
제 1차 세계대전중 서부전선 프랑스 솜 전투 당시 2인치 참호 박격포 포탄 더미위에서
카드 놀이를 하는 영국군 탄약고 담당 장교들 - 1916년
영국 대영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이 사용했던 2인치 참호 박격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