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단치히 베스테르플라테 항구를 포격하는 독일 해군 전함 슐레스비히-홀슈타인 - German Kriegsmarine battle ship Schleswig-Holstein bombardment to the Harbor Westerplatte,Danzig

슈트름게슈쯔 2020. 12. 9. 01:13

단치히 베스테르플라테 항구를 포격하는 독일 해군 전함 슐레스비히-홀슈타인 - 1939년 9월 1일 

 

 

제 2차 세계대전 발발 1년전 1938년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를 강제 합병한 나치 독일이

다음으로 노린 먹잇감은 폴란드였다. 그러나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그 전에 폴란드를 침공할 구실울 만들기 위한 

계략으로 독일 해군이 먼저 침략해 들어간 지역은 독일과 폴란드 사이에 있었던 지역 단치히였다.

단치히(현: 폴란드 그단스크)는 1920년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설립된 도시 국가였다.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를 강제 합병시키고 국제 사회와의 약속을 무시한 나치 독일의 수상

아돌프 히틀러는 단치히 반환을 구실로 폴란드 침공을 감행하였다.

나치 독일의 단치히 침공은 제 2차 세계 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1939년 9월 1일 폴란드 침공이 일어나자마자 단치히 의회는 나치 독일에 합병을 선언하였다.

단치히 자유시에 있던 폴란드 민간인들은 우체국 등지에서 항전을 끝까지 벌이다가 결국 총살당했다.

폴란드 침공 이후 단치히는 나치 독일이 점령하였고 자유시는 소멸되었다.  

그러나 제 2차세계대전 말기 소련군과의 뒤이은 전투 끝에 1945년에 들어 시가지와 항만시설이 모두 파괴되었다.

소련군은 단치히를 모두 점령하였고, 종전 후 단치히는 폴란드령으로 귀속되어

종래의 독일인 주민은 모두 추방되어 현재에 이른다.

1939년 8월 말 제 3제국 독일의 구형 드레트노트급 전함 SMS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이 친선 방문을 이유로

단치히에 도착하여 베스테르플라테에서 150m 정도 떨어진 해협에 정박했다.

선박 갑판에는 8월 26일에 베스테르플라테 공격을 시작하기 위한 충격군(Stoßtruppen) 중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선 직전에 공격이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것은 8월 25일 영국-폴란드 군사 동맹이 맺어지고

이탈리아가 강철 조약의 준수를 미루겠다고 말하자 아돌프 히틀러가 폴란드 침공 시작을 연기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독일군은 프리드리히게오르그 에버하르트 장군이 이끄는 1,500명의 SS 향토방위군(SS-Heimwehr)과

빌헬름 헤닝센 중위가 지휘하는 해병대 225명이 폴란드군 보급품 창고를 공격했다.

폴란드군 보급품 창고 습격 작전의 총지휘관은 SMS 슐레스비히-홀슈타인에 승선해 있던

독일 해군 구스타프 클라이캄프 제독이었다. 그는 8월 26일 정박 지역에서 전함을 멀리 이동시켰다.

적의 움직임을 간파한 폴란드 육군 장성 헨리크 수하르스키는 주둔군에게 경보를 발령했다.

1939년 9월 1일 현지 시간 4시 48분, 독알 해군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전함은 폴란드 주둔군 182명과

예비군 27명이 머무르는 병영을 향해 일제포격을 가하기 시작하면서 그것은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자

제 2차 세계 대전의 시작이 되었다.

폴란드 육군 장성 수하르스키는 급하게 베스테르플라테 반도로 "SOS. 지금 포격을 받고 있다"라는 전신을 보냈다.

독일 전함의 폭격에 의해 경계벽에 포탄이 맞아 구멍이 생기고 남동부 지역의 유류 저장고에는 화재가 나 폭발했다.

8분 후, 독일 해군 슐례스비히-홀슈타인 전함에서 빌헬름 헤닝센 중위가 지휘하는 해병대가 급습을 하고

독일 국방군의 공병 3개 소대가 공세를 펼치면서 폴란드 본토와 이어진 철교를 폭파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군은 기습을 받아 놀란 폴란드군을 쉽게 이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투시 폴란드군 보이시에흐 나이사레크 하사가 기관총탄에 맞아 사망하면서 그는 제 2차 세계 대전과

베스테르플라테 전투의 최초 사망자가 되었다. 그러나 독일군은 포격으로 파괴된 벽돌 더미를 넘은 후에는

갑작스런 폴란드군의 매복 공격을 받았다. 독일군은 얽히고 설킨 철조망 지대로 인해 재빠른 기동을 하지 못하면서

은폐한 폴란드군의 일제사격 살상 지대에 걸려들게 되었다.

폴란드군은 보안경찰의 기관총좌를 제압했고, 폴란드군 레온 파예크 중위가 전진하는 독일군에게 강력한

곡사포 포격을 하면서 독일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항구 건너편 창고 위에 있던 7.62mm 기관총 1정이 배치된

기관총좌도 제압했으나, 독일군 전함이 28번의 포격을 가하면서 완전히 파괴되었다.

베스테르플라테 전투는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 당시에 발생한 전투로 제 2차 세계 대전 최초의 전투였다.

이 전투는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 해군과 육군 병사가 단치히 자유시 부두인 베스테르플라테 항구의

폴란드군 보급품 창고를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창고는 약 200명 미만의 군인들만 경계하고 있었지만

7일 동안 독일 공군의 Ju-87 수투카 급강하폭격기의 폭격과 같은 대포격을 방어해냈다. 

 이 전투에서 폴란드군의 압도적인 열세 속에서도 폴란드군은 15명~20명 가량이 사망한 데 비해

독일군은 200명이 사망하는 등 높은 교전비를 이루었다. 여기에 베스테르플라테에서 독일군을 7일동안 방어했으며

그 이후에도 지옥같은 전투가 끝난 10월 2일까지 폴란드 회랑 지역의 저항이 이어졌다.

베스테르플라테 방어전은 성공적으로 독일군의 공세가 진행된 지역의 폴란드 육군에게 독일 침략군대에 대한

항독 의식을 고취시켜 주었고, 오늘날까지 독일의 폴란드 침공 당시 저항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이 지구는 폴란드의 역사기념물 중 하나로 2003년 9월 1일 폴란드 국립문화유산위원회가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