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쟁 범죄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의 얼룩무늬 가와사키 Ki-61 히엔 전투기와 나카지마 Ki-43 하야부사 전투기 - Later years of Pacific War Japanese Pied Kawasaki Ki-61 Hien & Nakajima Ki-43 Hayabusa Fighter

슈트름게슈쯔 2021. 3. 20. 18:47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의 얼룩무늬 가와사키 Ki-61 히엔(飛燕) 수냉식 엔진 전투기와 

나카지마 Ki-43  하야부사 전투기 -1945

 

 

태평양전쟁 당시 가와사키 Ki-61 히엔 전투기는  제 2차 세계 대전 중 일본 육군 항공대가 가와사키 사에 

의뢰하여 개발한 일본 최초이자 유일한 수냉식 프로펠러 전투기다. 다른 일본 전투기들과 달리

 히엔 전투기는 독일 다임러-벤츠의 DB601A 엔진을 면허 생산한 Ha-40을 사용하여 

기체 형태가 이탈리아의 Mc.202나 독알 공군의 메서슈미트 Bf 109와 유사한 형태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Ha-40 엔진의 문제점과 일본이 처음 장비한 수냉식 엔진에 대한 이해 부족 등으로 

문제점을 드러냈고, 마지막까지 일본 본토 방공용으로 사용되었으나, 미국 보잉 B-29 슈퍼포트리스와 

P-51 머스탱 전투기의 조합에 고전을 면치못했다. 생산형으로는 히엔 1과 히엔 2가 있으며, 

두 기종을 합해 총 3,159대(히엔1이 2,734대, 히엔2가 374대)가 생산되었다. 

그러나 히엔 2로 생산된 374대는  Ha-140 엔진의 부족으로 99대만 완성되었고, 나머지 275대 분의 기체는 

5식 전투기용으로 돌려졌다. 카와사키 Ki-61 히엔 전투기는 1943년 봄, 파푸아뉴기니에서 첫 실전 경험을 겪었다. 

이 무렵에는 가볍고 민첩한 일본군기를 상대로 한 전법을 나름대로 체득한 연합군 조종사들도 

일본군 히엔 전투기의 등장에 당혹감을 느꼈다. 그것은 이전까지 사용되었던 급강하하여 일본 전투기를 

따돌리는 전술이 히엔에게는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첫 실전 투입 이후 일본군은 예상은 했지만, 

역시 화력 부족 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어 주로 무기 체계를 바꾼 개량형을 만들게 되었다.

 히엔 전투기는 파푸아 뉴기니를 시작으로 중국, 필리핀, 오키나와, 동남아시아와 남서태평양 등 

태평양 전쟁 전선 전체에서 사용되었다.  연합군의 코드 네임인 "Tony"는 히엔이 개발되고 있을 당시,

 통상적인 일본군 항공기들과 다른 특이한 기체가 개발 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연합군이 냉전 시절 

나토 코드네임처럼 임시로 붙인 이름이다.  1943년 연합군은 파푸아 뉴기니에서 처음 히엔과 공중에서 

격돌한 이후 한동안 히엔 전투기에 시달렸으나, 1943년 가을부터 연합군이 노스 아메리칸사의 

 P-51/F-51 머스탱 전투기나 P-47, 그러먼 F6F 헬캣같은 신예기들을 투입하면서 히엔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전쟁 말기에 일본군의 히엔 전투기는 더 이상 고고도 성능이 떨어져 미 육군 항공대의 주력 기종이던 

P-51 머스탱을 상대하지 못했고, 일부는 카미카제 자살 특공대용으로 사용되었다.

나카지마 Ki-43  하야부사 전투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운용했던 전투기로 공식 명칭은 

육군 1식 전투기였으며 연합국 코드명은 오스카(Oscar)이다. 

A6M 제로센이 당대 일본군 해군 전투기의 상징이었다면 하야부사는 육군이 제로센에 맞서 

내세울 수 있는 전투기였다. 육군에서 부여한 애칭인 하야부사는 매의 일본어 발음이다.

일본군 Ki-43  하야부사 전투기의는 태평양 전쟁 초기 동남아 전선에서 당시 영국군의 주력전투기였던 

 기체가 뚱뚱하게 보이는 미국제 F2A 버팔로 전투기들을 손쉽게 격추시켰다. 

당시 연합군은 본토가 독일 공군에게 침공을 당하고 있던 영국의 사정과 전쟁 준비가 미처 되지 않은 

미국의 사정이 겹친 문제와 일본의 항공 기술력을 얕잡아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합군 공군은 일본군의 저 정도 기체라면 뚱뚱한 기체의 F2A 버팔로 전투기로도 

쉽게 격추시킬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