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 전선에서 파괴된 영국 제 7 기갑사단의 유니버셜 캐리어 장갑차와 셔먼 파이어 플라이 전차와
미군 M10 구축전차에 76.2mm 17 파운드포를 장착시킨 아킬레스 구축전차 - 1944년 6월
제 2차 세계대전 말기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개시 일주일 후
6월 13일 프랑스 캉 시의 측면으로 우회돌파를 기도하던
영국 7 기갑사단(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독일 에르빈 롬멜 원수의 주요 적이었던 영국군 부대로
(일명 : 데저트 랱 /사막의 쥐)의 선봉 전차부대가 빌레르-보카쥬에서 도착하여 휴식을 위해 정지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독일 기갑부대의 지휘관 미하일 비트만은 즉시 단독으로 영국군 전차부대를 공격할 것을
결정하고 자신의 타이거-1 205호차가 차량 불량이었기에 타이거-1 222호 전차(212호나 231호차란 이야기도 있다)에 올라타 볼을 포수로 불렀다.(비트만이 타이거-1 212호차에 탑승하였다면 전차장인 볼이 포수로 그대로
이동했을 것이다) 미하일 비트만의 단독 출전에 의한 빌레르-보카츠 전투는 개시되었다.
그는 프랑스 이 마을의 남쪽부터 기습을 가해 공격개시와 동시에 영국군 전차 3대를 격파시켰다.
그 후 동쪽의 213고지에서 도로에 전개한 차량 행렬을 공격해 6대의 전차, 10대의
장갑병력수송차(유니버셜 캐리어장갑차), 4대의 장갑차, 2문의 대전차포를 격파시켰다.
그는 213고지에 제 2중대의 전차와 합류하고 다시 빌레르-보카쥬로 향했다.
빌레르 보카쥬 마을에 들어설때쯤 3대의 영국군 전차와 지휘전차를 격파시켰다.
여기서 영국군의 대전차포의 공격을 받고,자기가 탑승했던 타이거-1 전차가 행동불능에 빠졌기 때문에
미하일 비트만은 밖으로 나와 탈출했다.얼마 후에 뒤따라온 1중대가 프랑스 빌레르-보카쥬 마을에 돌입하고,
독일 프리츠 바예를라인의 교도기갑사단으로부터 증원도 도착했다.
전투는 저녁때까지 계속되어 영국 7기갑사단은 많은 피해를 입고 후퇴했다.
독일 SS 101 중전차대대는 우회 돌파를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미하일 비트만 자신은 이 전투에서 27대의 영국군 기갑 차량을 격파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