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 극장

새벽의 7 인과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Operation Daybreak 1975 & Reinhard Heydrich]

슈트름게슈쯔 2009. 8. 8. 12:08



새벽의 7 인 한국 포스터


 


 

                                                                        새벽의 7인 (日本)판 포스터

 

 

 

하이드리히역의 안톤 디프링

 

 

 

 

하이드리히의 전용 자가용이었던 1937년산 메르세데스 벤츠(Mercedes-Benz) 320 카브리올레

 

 

 

 

송탄 불능으로 발사가 되지 않는 요세프의 스탠 기관총

 

 

 

 

 

 

 

성당 지하실에서 갇힌채 권총 자살로 최후를 맞는 영국 특공대 얀과 요세프

 

 

 

 

영화 새벽의 7인(Operation Daybreak 1975)속에 등장하는 타이거-1 전차

 

이 전차는 소련제 T-34/85 전차를 개조한 영화 소품이다.

 

 

 

 

                                   2차대전 당시 영국 병기창에서 갓 조립하여 완성된 Sten 기관단총을 치켜든 여성 근로자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특공대의 전용무기였던 Sten 기관단총

 

 

 

                                               영국 특공대에게 암살되기 얼마전의  체코와 모라비아 총독 라인할트 하이드리히

 

 

 

                                                                  라인할트 하이드리히  (1904 ~1942 )

 

 

 

                                                영국 특공대가 하이드리히 암살 장소로 삼았던 프라하의 교차로

 

 

                                          영국 특공대의 수류탄 공격을 받았던 당시 하이드리히의 전용 벤츠

 

 

                                                     현재 체코 프라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하이드리히의 전용 벤츠

 

 

 

                                                           하이드리히 사후 제작된 독일 제3 제국의 스탬프

 

 

 

 

 

 

하이드리히 암살 이전 독일의 포격으로 파괴되기 전의 평온했던 체코슬로바키아의 리디체 마을  

 

 

 

하이드리히를 암살한 영국 특공대를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독일군에 의해 학살당한 체코슬로바키아 리디체 마을의 주민들

 

 

 

 

나치 독일의 체코슬로바키아 합병은 즈데텐란트(수데텐) 침공 이후 즉각 이루어졌다.

게르만족의 독일계 주민이 많이 거주하여 체코로 부터 독일인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히틀러는 언어와 인종이 다른 슬라브족의 나라 체코슬로바키아를 침략하여 무력으로 강제 합병 시킨 것이었다.

히틀러는 평소 그가 아끼는 독일 정보부 출신의 국방장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를

 1941년 보헤미아(체코)와 모라비아의 총독으로 임명하여 파견시킨다.

하이드리히는 부임하자 마자 잔인한 본보기 정책으로 1개월 내에 300명의 체코인을 사형시킨다.

제3제국이 자랑하는 명석한 두뇌와 훤칠한 마스크의 큰키에다 금발의 머리칼은

전형적인 게르만족의 대표적인 모습을 띄는지라 히틀러는 항상 충성스러운 하이드리히를

자기 다음대를 이어 독일을 이끌어갈 후계자로 꼽고 있었다.

또한 유태인들을 격리시키고 재산몰수와 청산가스를 이용한 가스실 대량살상도 그의 사악한 두뇌에서 나온 계획이었다.

하이드리히는 아이히만을 시켜 독일및 유럽각지에 퍼져있던 유태인들을 강제로 잡아다가

 대단위 살륙을 자행한 인종범죄의 주범 이었던 것이다.

영국은 일찌감치 명민하고 위험한 하이드리히의 존재를 알아보았고

영국으로서는 제거대상의 1,2호격 요주의 위험인물이었다.

이에 따라 영국 정보부는 체코출신의 영국특공대를 그들의 고국에 침투시켜 하이드리히 암살을 도모한다.

그 침투요원의 대상은 체코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출신의 영국군 자원 체코 입대병이었는데

영국정보부는 이들 3명을 차출한뒤 훈련기간을 거쳐 항공기를 동원하여 캄캄한 새벽 시간에 체코슬로바키아로 침투시킨다.

얀과 요셉,체다 3사람의 영국 특공대원은 체코 레지스탕스의 도움으로 임살 장소를 물색하여

하이드리히가 있는 프라하로 히틀러가 방문시 베를린발 프라하의 기차역교차로에서 약간 떨어진 한적한 감시초소를 선정한다.

기회는 왔으나 얀대원의 암살용 라이플 조준시 반대편 열차로에서 돌발적으로 나타난 화물차가

겨누던 하이드리히의 열차를 막아버리고 지나가버려 하이드리히 저격을 실패하고 만다.

그로써 애써 준비하였던 1차계획은 실패하여 버렸던 것이다.

이후 영국에서 이 소식을 듣고 하이드리히 암살계획을 다시 도모한다.

그리하여 하이드리히가 기거하는 집에서 근무하는 프라하의 성으로 출근하는 시간대와

그에 따라 지나치며 암살하기 좋은 장소를 알수있게끔 각 장소를 분석하던중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프라하성으로 향하는 도로의 입구와 

전철도로의 꺽어지는 교차로 건너편을 잡아 기회를 노리기로 하였다.

즉 하이드리히의 전용 벤츠가 길 모퉁이를 꺽을때 한 대원이 취객처럼 차를 세우듯이

 접근하여 속도를 떨어뜨렸을때 다른대원이 차에 탄 하이드리히를 기관단총으로 사격을 가하는 작전을 세운것이다.

이윽고 그 거사를 실행으로 옮기는날 마침 하이드리히의 승용차는 항상 앞에서

호위하는 속도가 느린 독일군 무장 장륜 장갑차를 따돌리고 일찍 출근을 하기 위해

호위를 받지않고 장갑차를 추월하여 단독적으로 운행하였다.

무장장갑차는 승용차보다 속력이 느려 하이드리히의 벤츠를 정상적으로 호위할수 없게 되버린 것이었다.

이에따라 거사를 취할려는 지점의 모퉁이 건너편 벤치에서 앉아 기다리던 한 대원은

 일어서서 담뱃불을 던지는  신호로 30분 일찍 하이드리히가 등장했음을 알렸다.

모퉁이의 건물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요세프 대원은

하이드리히의 전용 벤츠가 모퉁이를 지나가기 위해 속력을 떨어뜨린 순간

중절모를 눌러쓴채 고개를 숙이고 하이드리히의 전용 벤츠 앞으로 다가 간다.

 그 순간 갑자기 사람이 나타나자 하이드리히의 부관은 급히 차량을 멈추고 소리치며 비키라고 지시한다.

 그러자 요세프는  스탠 기관단총을 가리고 있던 레인 코트를 던져 버리며

하이드리히를 향해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그 스탠 기관단총은 송탄 불능을 일으켰는지 아예 발사가 되지 않았다.

서너번 철컥거리며 방아쇠를 당기는 찰라에 놀란 하이드리히와 부관은 팔로 얼굴을 가렸지만

 기관총이 발사되지 않는다는 낌새를 알아챘다.

이를 반대편에서 보고있던 또 다른 얀대원은 거사가 실패했음을 깨닫고

급박하게 안전핀을 뽑아 수류탄을 하이드리히 차로 향해 던졌다.

수류탄은 폭발하고 권총으로 응사하던 하이드리히는 중상을 입고 쓰러졌다.

수류탄이 차량 뒷부분에서 폭발하여 하이드리히는 즉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수류탄의 파편에 의해 벤츠 승용차 가죽시트 내부의 말총성분에 있던

세균이 파편과 함께 하이드리히의 신장과 비장에 퍼져 며칠내에 사망하고 말았다.

이후 히틀러는 친위대의 히믈러를 프라하로 보내어 국장으로 하이드리히의 장례를 치르고

암살의 배후를 캐기위해 대대적으로 범인을 물색한다.

그리고 1주일 기한내에 스파이등에게 도움을 준 비호세력의 자수를 종용케했고

 나타나지 않을 경우에는 대량의 체코인 보복 살해를 감행할것을 선포한다.

영국에서 낙하작전으로 처음 체코로 잠입했던 3명의 특공대원중 체다는

어리석게도 자기 가족에 대한 체포의 두려움으로 게쉬타포가 있는

점령지 독일 경찰서로 찾아가서 동료를 배신하고 자수를 하게된다.

영국 특공대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동료들을 배반해 버린것이었다.

독일의 체코 침공때 영국으로 망명하기전 관계를 가졌던 자기 애인이 임신후 딸을 낳아 살고 있는 장면을 보고

 마음이 약해져서 그만 크나큰 실수를 저지르고 만것이었다.

이로써 하이드리히 암살 배후가 속속 드러나버려 관계된 민간인 레지스탕스는

 거의 다 체포되었고 다음날로 귀환을 하려고 체코의 성당으로 피신해있던

영국군 7인의 특공대는 탱크와 장갑차로 무장한 독일군 병력에 은신처가 포위되어 버렸다.

이에 따라 독일군은 1개중대를 성당으로 투입하여 수류탄과 스탠 기관단총으로

응수하는 영국 특공대를 상대로 처절한 격전을 벌인다.

영국 특공대 대원들은 성당 안 으로 계속 증원되어 들어오는 독일군들을

상대로 필사적인 분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독일군 1개 중대 병력을 격멸시키다가

 독일군의 M 24 수류탄 세례에 결국 모두 전사하고 만다.

한편 나머지 얀대원과 요세프 두 대원은 성당 지하실에 숨어서 항전하다가

성당 바깥쪽 지하실 통풍구로 독일군의 투입한 청산가스 호스의 공격도 막아낸다.

그리고 독일군의 갈쿠리에 지하실의 사다리가 뺏기고 2차적으로 소방호스를 통한

지하실내의 물을 채우는 독일군의 공격이 진행되자 두명의 대원은 탈출의 희망이 전혀없어짐을 느낀다.

독일군은 나머지 2명의 대원을 생포하려고 했으나 그들은 결코 항복을 택하지 않는다.

지하실 내부로 물은 금방 차서 그들이 서있던 목부분 까지 수위가 오라갔다.

물에 떠다니는 나무궤짝 위에서 촛불이 꺼질듯 말듯한 순간 그들은 지하실에 갇힌채

 차가운 물에 몸을 떨며 서로의 머리에 권총을 갖다대며 자살을 택한다.

이 이야기는 연합군의 유명한 전쟁 이야기로 전해져 내려 오다가 

1975년 루이스 길버트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었다.

원제는 [Operation daybreak]이었다.

한국에서는 1976년 개봉되었는데 개봉당시 영화 제목은 [새벽의 7인]이었다.

그 당시 얼마전 이스라엘의 특공대가 우간다의 엔테베 아민의 게릴라 기지를 급습하여

 단시간에 제압했던 특공대의 유명한 작전을 비추어 이 영화를 선전할 때에

각 신문의 영화 광고란 마다 영국 특공대를 부각시켜 선전한바있다.

이 영화에는 [블러드선데이][콰이강의 다리 2]에 출연한 티모시 바텀즈가

 얀역으로 출연했고 앤서니 앤드루스(Anthony Andrews)가 요세프역으로 출연했으며

2차대전 배경 영화의 독일군 장교 단골역으로 자주 출연했던 안톤 디프링이 하이드리히 역을 맡았다.

이 영화를 보면 전반부터 후반까지 영화음악이 영화를 보는이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하여 영화에 몰입하는 흥분을 배가 시키는데 독일의 전자 기타리스트이자

 신디사이저 연주자인 데이비드 헨첼의 연주가 영화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낸다고 볼수있다.

위의 사진들속에 나오는 기관단총은 영국에서 1940년까지 4만정이 생산되었던 스탠 기관단총이다.

2차대전 동안 영국군과 영연방군에 의해 널리 사용되어 졌으며

노르웨이 파견 컴만도우 특공대,프랑스 레지스탕스,노르웨이,유고슬라비아 유격대등

유럽 각국의 파르티잔들에 의해 대대적으로 사용된바 있다.

이후 6.25 사변 때와 이스라엘이 벌인 중동전에 까지 사용된바 있다.

단순한 구조에 취급이 간단했고 생산비가 적게들어 대량생산에 불편함이 없었던 것이다.

스탠이란 이 기관총의 이름은 이총을 제작하였던 수석 설계자겸 총기 제작자였던

레지날드 셰퍼드와 하롤드 터핀의 성 첫 알파벳과 당시 영국의 대표적 소총인 엔필드소총의 EN을 붙인 것 이었다. 

이 총이 주는 뉘앙스는 가히 영국군을 대표하는 심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널리 알려진 기관단총이라 할수있다.

이 총 또한 9mm의 비교적 탄두가 큰 파라블럼탄을 쓰는 이유는

근접사격시 파괴력을 극대화 시킬수 있는 점에 있으며 하이드리히 암살사건때에도

보여주었듯이 제일 큰 단점은 간혹 실탄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송탄불량이 발생했던 점이라 할수있다. 

 

 

    

 

 

새벽의 7인 1976년 5월 마산 중앙극장 개봉

photo from : stagev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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