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 극장

피라미드의 공포 (Young Sherlock Holmes.1985)

슈트름게슈쯔 2011. 1. 28. 14:42

 

Young Sherlock Holmes and the Pyramid of Fear 영 셜록 홈즈: 피라미드의 공포, Steven Spielberg(제작), Barry Levinson(감독), Chris Columbus(각본), Bruce Broughton(음악), Nicholas Rowe(셜록 홈즈), Alan Cox(존 왓슨), Sophie Ward(엘리자베스 하디), Nigel Stock(루퍼트 T. 왁스플래터), USA, 1985, 100mins

 

 

이 작품은 국내에도 DVD가 출시된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땐 이미 품절된 후였다.

품절된 DVD가 재입고되기를 기다리는 것은 절판된 책이 복간되기를 기다리는 것만큼이나 지난한 일이라 근 이 년을 참다가 이번에 영국 아마존에서 2010년판 BBC 셜록 홈즈 드라마 DVD를 선주문하면서 같이 질러버렸다.

 제품 설명에는 자막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영어 자막(외에도 기타 15종의 인도-유럽어와, 히브리어, 헝가리어, 핀란드어, 터키어 등의 자막 포함)을 지원해서 어려움 없이 감상할 수 있었다.

 

영화는 눈발이 흩날리는 겨울날 정체를 감춘  미지의 인물이 거리에서 어느 신사에게 독침을 날리는 것으로 시작한다(<네 사람의 서명>에서 등장하는 통가의 독침에 대한 오마주?). 독침을 맞은 신사는 주위 물건들이 자신을 공격하는 환각에 시달리다 창문에서 뛰어내려 자살하고 만다. 그리고 장면이 전환되면 어른이 된 왓슨의 내레이션과 함께 소년 왓슨이 런던의 기숙학교에 전학을 오는 장면이 펼쳐진다.

 커스터드를 좋아하고 안경을 낀 약간 맹한 소년 왓슨은 자신을 보자마자 이름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척척 알아맞히는 비범한 소년 셜록 홈즈와 친구가 된다.

 그리고 영화는 한동안 왓슨의 눈을 통해 홈즈의 학창 시절을 보여준다. 

성적도 우수하고 펜싱도 잘 하는 이 수재는 과거 이 학교의 교사였지만 이제는 은퇴하고 학교 다락방에 자신만의 실험실을 차려 온갖 기상천외한 기구를 만드는 괴짜 영감님 왁스플래터 교수와 죽이 맞는 친구이고 그의 조카 엘리자베스와는 사랑하는 사이다. 

그렇지만 왁스플래터 교수는 환각을 일으키는 독침의 세 번째 희생자가 되어 자살을 하게 되고 홈즈는 자신을 시기하는 더들리의 모함으로 시험에서 부정행위자로 몰려 퇴학을 당한다.

잇따른 의문의 자살 사건의 배후에 음모가 있다고 믿는 홈즈는 학교를 떠나지 않고 몰래 왁스플래터 교수의 다락방에서 살면서 왓슨과 엘리자베스의 도움을 받아 연쇄 자살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결국 세 친구는 이것이 이집트의 비교(秘敎) 집단 '라마 테'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단서를 추적하던 중 템즈 강 선창가 지하에서 라마 테의 비밀 회합 장소인 거대한 피라미드를 발견하게 된다.  

 

내용이 딱 왕년의 스필버그 취향이다. 특히 라마 테의 희생 의식 장면은 인디아나 존스 2편을 그대로 차용한 티가 팍팍 난다.

홈즈와 비교 집단이라...빅토리아 시대가 제국주의의 전성기였고 메트로폴리스 런던에 온갖 인종과 문화적 배경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는 것은 나도 인정하지만(당시 런던은 요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다문화적 사회였다) 요즘 홈즈 파스티시 영화나 소설들을 보면 비밀결사니 종교집단이니 하는 이국적 요소를 너무 쉽게 써먹는 거 같다. 

그나마도 제대로 된 근거에 기반한 이국 취향이라면 좋으련만. 보존 상태가 좋은 미라를 만들려면 무엇보다 건조가 중요하다는 것은 이집트 미라에 관해 아주 '초보적'인 지식만 있는 사람도 알 텐데 미라를 만들려고 산 사람한테 뜨거운 물을 쏟아붓는 방법은 유사-이집트학(pseudo-egyptology)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하기야 애초에 설정이 판타지 풍인데—홈즈와 왓슨이 자전거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장면은 <ET>나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연상되기도 한다—이 영화에서 역사적 사실성이나 정전적 분위기를 바라선 안 된다. 

『Sherlock Holmes on Screen』 에서 알란 반스는 이 영화의 설정이 홈즈보다는 오히려 홈즈와 대척점에 서 있는 색스 로머의 푸 만추 시리즈에 가깝다고 지적하는데 나도 템즈 강 선창가 아래 피라미드라는 설정에서 푸만 추를 떠올렸으니 수긍이 간다.

하지만 케이 반 애쉬가 홈즈와 푸 만추 시리즈의 크로스오버 파스티시 <Ten Years Beyond Baker Street>에서 정전적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훌륭한 파스티시를 써낸 걸 보면 순전히 설정의 원죄(?) 탓만 할 것도 아닌 것 같다.

설정은 다소 유치하고 플롯은 치밀하지 않고 홈즈의 추리는 비약이 심하지만(거의 초능력에 가까움;;) 이것이 크리스마스 가족 관객을 겨냥한 아동용 영화라는 것을 고려해보면 그렇게 흠잡을 만한 일은 아니다. 

더욱이 아동용이라고 해도 아무련들 <영 셜록 홈즈>의 플롯이 일반 관객용 영화 <셜록 홈즈>보다 더 엉성하지도 않다.

 

이 영화의 진짜 매력 요소는 홈즈의 아기자기한 학교 생활이다. 거의 좀비나 다름없는 늙은 화학 선생님의 지루한 수업 시간이라든가 펜싱 마스터와의 대전 장면은 고전적인 맛이 있다(특히 후자와 관련해서 이 영화는 홈즈의 수준급 펜싱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유일한 영화가 아닌가 함.

홈즈는 이 영화에서 손에 잡히는 아무 무기나 주먹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우아하고 날렵하게 '진짜' 펜싱을 한다!),

그리고 더들리가 감춰둔 펜싱 트로피를 찾는 게임은 이 영화 최고의 명장면이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일제히 "Holmes is going to solve a crime"이라는 대사를 구호처럼 외치며 나선 계단을 내려오자 홈즈가 당당하게 "the game is afoot!"이라고 선언하는 장면은 학원물의 유쾌하고 발랄한 감수성을 완벽하게 포착해냈다.

소년들이 악수를 교환한 후 규칙에 따라 진지하고 점잖게 대결을 벌이는 모습이 은근히 <하늘을 나는 교실>을 연상시킨다.

사실, 나는 이 영화가 후반부에 인디아나 존스풍 모험물로 흐르는 것보다 계속 학원물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미스터리를 강화했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해리포터 시리즈도 학원물의 관습과 미스터리를 적절하게 결합해 대성공을 거두지 않았는가?

 

해리포터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DVD 표지부터 보다시피 이 영화는 해리포터 시리즈와의 기시감이 장난이 아니다.

아닌 게 아니라 해리포터 시리즈 1,2편을 감독한 크리스 콜럼버스가 각본을 썼다.

 (다니엘 래드클리프와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알란 콕스가 해리 포터가 아닌 어벙한 론 역할을 하는 것이 조금 다르지만)

남학생 둘에 여학생 하나라는 삼인조 조합부터 시작해서 고풍스러운 신고딕 양식의 교정을 자랑하는 브롬턴은 호그와트이고 가로줄 무늬 학교 머플러라든가 한밤중에 도서관에 몰래 숨어들어가는 장면이나 전교생과 교사들이 대형 홀에 모여 기다란 식탁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은 반사적으로 해리포터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신포니아 오브 런던이 연주한 클래식한 영화 음악도 영화 끝나고 자막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존 윌리엄스의 솜씨가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작품이 <해리포터>보다 15년을 앞섰으니 벤치마킹을 한쪽은 이쪽이 아니라 <해리포터>라고 봐야겠지. 

 

스필버그 영화답게 눈길을 끄는 특수효과가 여러 차례 등장한다. 

정교한 철제 모자 걸이가 뱀처럼 살아 움직인다든지 예배당의 스테인드 글라스에 묘사된 갑옷 입은 기사가 현실로 뛰쳐나와 검을 휘두르는 장면은 환상을 시각화하는 솜씨가 그만이다. 

특히 이 환각 장면들은 아동용치고는 공포 수위가 상당한 편이다.

독침을 맞고 도망치다 공동 묘지로 숨어들어간 세 친구가 겪는 환각은 애들이 봤다간 꿈에 나올까 두려운 모습이다. 

특히 엘리자베스의 환각 속에서 엘리자베스를 생매장하려는 사람이 다름 아닌 마음씨 좋은 삼촌이라니 요즘 같으면 엘리자베스가 삼촌한테 성적으로 학대당하고 있어서 그게 무의식에서 드러난 것이라 해석할지도 모를 일이다.

흥미롭게도 환각 장면에서 다른 피살자들과 엘리자베스, 왓슨의 환각은 순전히 육체적 고통이나 물리적 위협의 형태를 띠지만 홈즈는 다르다. 홈즈는 환각이 아니라 사실상 과거의 기억과 대면하는데—어두운 방구석에 흐느끼고 있는 어머니와 '내 비밀은 내 문제야. 네가 굳이 들춰낼 필요는 없었잖아!'라고 힐난하는 아버지의 모습 —홈즈가 자신의 추리 때문에 아버지의 감추고 싶은 비밀을 본의 아니게 폭로해 어머니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과거사를 슬쩍 흘리는 것은 꽤 그럴 듯했다.

 

이 영화에서 홈즈는 재기 넘치고 조숙한 천재 소년 캐릭터다.

엘리자베스를 열렬히 좋아하고 질투심도 느끼지만 그걸 인정하기는 싫은 치기 어린 모습도 보인다.

특히 식사 자리에서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라고 묻는 친구의 대답에 몽롱한 눈으로 창밖의 엘리자베스를 내다보면서 잠꼬대를 하듯이 '나는 혼자이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는 장면은 첫사랑에 홀딱 빠진 소년의 모습 그대로다. 

이런 열정적이고 순진한 홈즈는 정전의 묘사와 거리가 있지만 어른이 되고 세상을 알기 이전의 말 그대로  아직 '어린' 셜록 홈즈이니까 역시 수긍이 간다. 게다가 난 홈즈의 이런 몽상가적인 면모가 좋더라.

반면 단것과 안락함을 좋아하는 왓슨 캐릭터는 그라나다 이전의 전형적인 어벙한 왓슨 상에서 나이만 어리게 한 수준이다. 더 모험심 넘치는 활달한 소년으로 그려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귀여우니까 모든 게 용서됨;;

 

기타 등등:

 

1. 니콜라스 로와 알란 콕스의 목소리가 아주 듣기 좋다. 로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 부드럽고 콕스의 목소리는 귀여운 얼굴과 다르게  중년의 아줌마를 연상시키는 묘한 음색인데 퍽 대조적이면서도 멋진 조화를 이룬다.

 

2. 콕스는 영국 영화 배우 브라이언 콕스의 아들이라고 한다. 브라이언 콕스라면 <Strange Case of Sherlock Holmes and Arthur Conan Doyle>에서 조셉 벨 박사 역을 맡으신 그 분! 홈즈 영화와 이래저래 인연이 있는 집안일세.

 

3. 60년대 BBC TV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왓슨 역을 맡았던 나이젤 스톡이 엘리자베스의 삼촌인 왁스플래터 씨로 나온다.

 

4. 이 영화에서 레스트레이드는 내가 지금까지 본 영상물 레스트레이드 가운데서 제일 이색적이다. 'small and rat-faced'라는 정전 묘사가 캐스팅 디렉터의 손을 거치면서 안경 쓴 윈스턴 처칠을 연상시키는 살집이 포동포동한 인물로 탈바꿈했다! (by the way, 셜록키언계에는 이 스코틀랜드 야드 형사 이름의 발음을 두고 레스트레이드 파와 레스트라드 파, 양대 학파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 영화는 후자 쪽이다)

 

5. 끝나고 자막이 올라갈 때 특수효과 담당자들 이름이 길게 나오는데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를 대박낸 후 만든 ILM이야 그때도 존재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스테인드 글라스 기사 장면 특수효과를 담당한 팀 이름에 픽사(Pixar)가 나올 때는 깜짝 놀랐다. 토이 스토리 3편을 만들어낸 픽사의 내공이 하루 아침에 쌓인 게 아니었구나. 확실히 그 장면은 요즘 영화의 기술적 성취와 비교해봐도 손색이 없다.  

 

6. 피라미드 모형에서 희생 의식 치를 때 나오는 음악은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 뺨친다;;

 

7.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나서 속편 떡밥이 나오는데 흥행에 실패해서 속편은 없던 일 되었음. 아쉽다~ 솔직히 내 눈엔 영화 <해리 포터> 1편보다  재미없지 않았는데....

 

 



지난 해 가이 리치가 감독한 셜록 홈즈 영화가 개봉한 후 지난 십수 년간 나온 홈즈 영화들의 DVD 표지가 대대적으로 개편되었다. 

리패키지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모든 표지들이 가이 리치 버전 포스터 색감을 천편일률적으로 본 따서 사후강직이 일어난 시체마냥 푸르딩딩한 색깔로 도배를 했다는 거;; 새 표지가 구 표지보다 뭐가 더 예쁜지 모르겠고 개성도 없어서 구별하기도 힘들다.  아래는 <영 셜록 홈즈> 구판 표지. (그나저나 포스터와 달리 다행스럽게도 홈즈는 영화 내내 저 사슴사냥 모자와 체크무늬 인버네스 케이프를 입고 나오지 않는다)

 

 

 


 


 

 

 

 


 


 


 


 

 

 

 

 



[피라미드의 공포]는 당시 비디오 점 어디에서나 취급하던 B짜 영화로 본 작품이었는데,

 너무나 재미있어서 뒤늦게 극장에서 개봉했을 때도 몇 번이나 다시 봤던 기억이 생생한 영화다.

영화는 스필버그 사단이 무서운 식욕으로 할리우드를 통째로 집어삼키려던 시절에 제작된 작품이다. 

[파리미드의 공포]의 기본 전략은 간단하다.

유명한 프랜차이즈 하나를 선택해서 원작에서는 보여주지 않는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게 선택된 캐릭터가 바로 영화 비즈니스 역사상 가장 많이 영화화된 캐릭터인 명탐정 셜록 홈즈다.

영화는 엔딩에 친절하게 영화는 아서 코난 도일 경의 소설을 각색한 것이 아니며, 소설에서는 셜록 홈즈와 존 왓슨이 성인이 되어서 만났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일종의 가상의 프리퀄인 셈이다.

영화는 프리퀄의 원칙에는 충실한 편이다.

홈즈와 왓슨의 최초의 만남을 보여주고, 캐릭터가 형성되는 계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보너스로 평생의 숙적을 붙여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에 비평이 엇갈린 것은 영화 속에 사악한 이교도집단의 설정 때문이었다.

환각을 이용하고 인간을 재물로 삼는다는 설정은 이미 [인디아나 존스와 죽음의 사원]에서 스필버그가 써먹었던 수법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다.

실제로 코난 도일의 원작 소설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크리스 콜럼버스의 대본은 그렇게까지 치밀한 편은 아니다.

근데 실은 스필버그가 숨겨놓은 한방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것은 바로 컴퓨터 그래픽이다.

[피라미드의 공포]에 등장하는 스테인드글래스 악령은 실제 영화 역사에서 최초로 컴퓨터 그래픽만으로 완성된 캐릭터다.

내 기억에는 이듬해의 오스카에서 이 작품이 시각효과상 후보에 올랐을 때 보여졌던 클립 역시 스테인드글래스 악령이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은 후에 픽사의 수장이 되어 전세계 3D 애니메이션 시장을 주도하는 존 래스터가 조지 루카스의 회사 소속으로 만든 솜씨이다.

이 장면은 신의 경지에 가까운 최근의 컴퓨터 그래픽 기술력과 비교하더라도 절대 세련미를 잃지 않는다.
 
특히 영화에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시발점으로 알려진 [트론]의 그 유치찬란한 그래픽으로부터 고작 3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존 래스터의 솜씨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스테인드글래스 장면을 제외한 나머지 장면들은 대부분 여전히 가내수공업의 방식으로 창조되었는데, 특수효과 팀의 수장으로 영화의 스탑-모션 애니메이션 장면들을 창조해낸 인물이 바로 전에 리뷰했던 [돌스]에서 인형들의 애니메이션을 담당했던 데이브 알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