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 극장

영자의 전성시대 [1975]

슈트름게슈쯔 2011. 2. 12. 17:46

 

감독 : 김호선

출연 : 염복순, 송재호, 도금봉, 최불암

제작 : 1975년 

 

 


 

 

창녀인 영자는 목욕탕 때밀이 창수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래서 버스 안내양으로 직업을 바꾸지만 사고로 한쪽 팔을 잃는다.

외팔이로 자학 속에 사는 영자의 등을 때밀이 창수가 눈물을 흘리면서 밀어주는 장면은

에로티시즘 영화에서 보기 드문 가슴 뭉클한 장면이다 

 

 


 

영화명 : 영자의 전성시대 (1975)
제작사 : 태창흥업
원작 : 소설 '영자의 전성시대 (조선작 著), 각본 : 김승옥
감독 : 김호선
상영시간 : 110분

아주 오래된 영화이긴 하지만 이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제목을 들어 아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워낙 시대상을 잘 표현했고 흥행에서도 성공했으며 이후 개그우먼 이영자씨가 똑같은 제목으로 개그 코너까지 만들어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어느 경찰서 유치장 앞에서 시작된다.  남자 주인공 창수는 어느날 술집에서 부랑자들과 시비가 붙게 되고, 경찰은 창수가 월남 참전용사임을 고려 선처를 베푼다. 일을 해결하고 나가는 창수에 눈에 띈 한 여자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여자 주인공 영자다. 창녀가 되어버린 영자와 군대에 다녀온 후 목욕탕 때밀이 신세이던 창수! 둘은 3년여만에 그렇게 조우하게 된다. 여기서 영화는 과거 시점으로 돌아가 창수와 영자의 만남을 이야기 한다.


철공소에서 견습공으로 일하던 스무살의 창수. 종종 사장님 집에 심부름을 가던 창수는 문을 열어주는 식모 영자를 만난다. 한눈에 영자에게 반한 창수. 어떻게든 영자를 차지해 보려는 창수는 그야말로 요즘 같으면 쇠고랑 차기 딱 좋은 방법... 주인 식구가 없을때 영자를 올라타 임신을 시키겠다는;; 여튼 남자답다면 남자답고 무모하다면 무모하단 방법으로 영자에게 대쉬한다. 그러나 연애에 관심이 없던 영자는 창수의 손길을 거절하고...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이 흐르는 속에 창수는 입대 영장을 받는다. 그것도 월남행;; 떠나는 창수는 영자에게 기다려줄 것을 청하지만 확답은 받지 못하고, 그렇게 둘은 애틋하게 이별한다.


예쁘고 해맑던 영자가 왜 창녀 신세가 됐는지 이야기가 펼쳐진다. 월남으로 떠난 창수와 식모 살이를 계속하던 영자는 서로 편지를 주고 받으며 관계를 유지해 간다. 그러던 어느날 망나니 주인집 아들에게 영자는 겁탈을 당하고... 이것도 그 당시의 사고방식에서나 가능한 일이겠지만 영자는 망나니 주인집 아들을 사랑하게 된다 -_- 하지만 둘의 관계가 들통나며 영자는 식모살이를 그만두게 되고, 돈벌이를 찾아 봉제 공장에 취직하게 되지만 너무도 적은 월급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돈을 벌어 기술을 배우고 싶던 영자는 돈벌이가 좋은 술집 호스티스 일에 도전해 보지만 도저히 해낼 수 없어 하루만에 일을 그만두고 만다. 운전을 좋아하던 영자가 다음에 택한 일은 버스 안내양. 만원버스에서 무지하게 시달리던 영자는 급정거한 버스에서 굴러 떨어지고 그로 인해 왼팔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한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왼쪽 아래에 있는 장면이 바로 잘린 팔이 하늘 위로 솟구치는 장면... 어설프기 짝이 없는 연출이지만 스토리상 정말 ㅎㄷㄷ한 장면 중 하나)

팔이 잘려버린 영자에게 나온 보상금은 그 당시 돈으로 30만원. 당시 영화 1편 보는데 기금 빼고 380원이니 한 500원쯤 한다 치면 지금의 16배 수준이니 한 500만원 정도일 듯. 여튼 쥐꼬리만한 보상금을 영자는 시골집에 보낸다. 그녀에게 남은 전재산. 정상적인 일을 할 수도 없고 집에 돌아가기도 힘든 영자는 절망에 빠진다.


삶의 의욕을 잃은 영자는 자살을 몇번씩 시도해 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돈도 없고 마음도 텅 비어버리고 몸도 추운 그녀는 자주 가던 여인숙에서 남자에게 몸을 팔게 되고... 그렇게 유곽으로 들어가 외팔이 창녀 행세를 시작한다. 팔이 하나 없는 탓에 손님들의 구박을 받기도 했지만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그녀는 악착같이 그 바닥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영자의 유곽에 드나들며 관계를 갖던 창수. 그는 어느날 자신이 성병에 걸린 사실을 알아낸다. 이 원인이 영자에게 있다고 생각한 창수는 영자를 병원에 데려가 성병을 치료하게 한다. 비록 외팔이 창녀지만 스무살 그때의 애틋함을 잊지 못한 창수는 계속 영자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 2주간의 성병 치료 기간동안 손님도 받지 못하게 매일 번 돈을 긁어모아 영자를 찾아가는 창수. 비싼 의수를 살 수 없어 나무로 가짜 팔을 만들어 주는 창수. 영자는 그런 창수의 마음 씀씀이에 조금씩 닫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로맨틱한 장면. 팔이 불편해 목욕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영자를 위해 창수가 영업이 끝난 목욕탕에서 영자의 때를 밀어주는 장면이다. 둘의 사랑의 절정이 이 장면에서 표현됐다.


이제 둘은 때밀이와 창녀라는 암흑의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유곽에서 손님과 시비가 붙은 영자를 도와주려다 감방까지 가게 된 창수. 그렇게 창수가 몇달동안 감방에 있는 동안 영자는 힘을 내서 돈을 모으기 시작한다. 그러나 몸을 팔아 돈을 마련하는 일이 창수를 위한 길인지에 대한 고민이 겹치며 영자는 날마다 술로 고민하고 신세한탄을 거듭한다.


그러던 영자에게 위기가 닥쳐온다. 때마침 일어난 대대적인 사창가 단속. 경찰에 잡혀가지는 않지만 영자는 그녀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그녀는 어디론가 떠난다. 얼마 후 출소한 창수가 영자가 머물던 곳으로 가지만 아무말 없이 사라진 영자를 찾을 길이 없다. 그렇게 둘은 또 이별을 한다.


세월이 지나 목욕탕 신세를 벗어나 어엿한 세탁소 주인이 된 창수. 영자도 잊은채 열심히 일하던 그는 어느날 가게에 찾아온 친구를 통해 영자의 소식을 듣는다. 어느 판자촌에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홀로 영자를 찾아간 창수. 거기서 그는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 남편을 만나 아이까지 낳고 나름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비록 둘의 사랑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더 이상 나락으로 떨어질 일 없이 일단 어느정도 삶의 안정을 찾은 영자를 보며 창수는 쓸쓸히 뒤돌아선다. 앞으로 영자가 계속 행복하게 살길 기원하며 말이다.


이 영화는 조선작의 소설 '영자의 전성시대' 를 원작으로 제작됐다. 극단적인 이야기를 영화로 표현하기 어렵고 검열제도가 존재했던 당시의 상황에 맞게 내용은 다소 유순하게 각색되어 관객들을 찾았다. 원작에서는 영자가 불에 타 죽지만  영화에서는 결혼해서 잘 산다던지, 창수가 세탁소 주인이 된다던지 하는 것들 말이다.

좀더 꼬리에 꼬리를 물어 올라가 원작소설 이야기를 해보자. '영자의 전성시대' 에는 전편(前篇)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 있다. 바로 1971년에 발표된 '지사총' 이라는 작품이다. '지사총' 의 남자 주인공이 바로 '영자의 전성시대' 의 남자 주인공(소설에서는 창수가 아닌 영식이란 이름을 쓴다)과 동일 인물.

'지사총' 에서 영식은 창숙이라는 창녀와 욕정을 해결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철공소 사장집 식모인 영자를 흠모한다. 그러나 영자는 영식을 거들떠도 안보고...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고아인 자신과 창녀인 창숙이 모두 6.25때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잃은 이들의 자손임을 알게 된다.  거기서 마음이 동한 둘은 살림 차릴 생각을 한다는게 이 소설의 내용이었다. 이후 영식이 군대를 가며 둘의 연락은 끊기고... 그렇게 군대를 갔다와 새롭게 이 소설을 통해 영식과 영자가 만나는 것.

조선작의 소설 자체가 현실을 직접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그냥 하층민의 살아가는 얘기를 덤덤하게 풀어가며 읽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스타일이다. 영화도 그런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좀더 팔려야 하는 영화,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 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했기에 사랑 얘기(창수의 순애보 같은)에 집중된 면은 있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가 아닌 멜로(에로) 영화였기 때문에 그 부분을 비판적으로 보고 싶지는 않다.

영화를 보러간 30여만명의 관객 중에는 창수 같은 사람도 영자 같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치열하게 아프게 살아가다가 결국은 번듯한 가게의 주인이 되고,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고 사는 것은 그들의 희망사항이었을 것이다. 만일 원작처럼 그렇게 좌절해 버린다면 오히려 영화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과거와 현실을 보여주고, 하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기에 그래도 소박하게나마 생각해 볼 수  있는 미래를 영화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서슬퍼런 검열의 순간도 벗어날 수 있었을 테고 인기 영화로 자리매김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유치하고 촌스러운 화면과 분위기지만 마음속에는 짠하게 큰 획을 그어준 영화다. 역사에 관심이 많거나 우리의 과거는 어떠했는지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보셔야 할 영화로 추천하고 싶다.

그당시 배우들의 인기구도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젊은 시절의 송재호, 최불암, 이순재, 박주아 같은 원로 탤런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나름 행운이었다. 여주인공 역을 맡은 염복순은 지금 시대에 등장해도 꿀릴게 없는 미녀 여배우 같다. 세상을 떠난 이은주의 모습이 많이 오버랩된다. 발랄한 모습은 지금 한창 활동중인 이윤지를 생각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