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싶은 여배우 '정윤희'
올해로 23년째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고 있는 정윤희씨...
1954년생이다.
당시 44Kg 몸무게에 160 Cm의 키, 33-24-34의 몸매 사이즈였다...
그녀는 충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빼어난 용모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어릴적 부산으로 이사와 당감국민학교를 거쳐 혜화여중.고를 졸업하였다.
소녀시절 무용에 관심이 많았고 75년 영화에 대뷔 하였다
기억에 자그마하고 엄청 예쁘고 들어갈데 들어가고 나올데 나온(?) 여배우였다.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에는 세명의 여배우들이 영화계와 드라마를 주름잡는데...
바로 (사진의 왼쪽부터) 장미희, 정윤희, 유지인, 이다.
유지인씨는 지적인 이미지와 철저한 자기관리로 정윤희/ 장미희씨보다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같은 정상급 배우대열에 올랐다.
장미희씨는 최고의 연기력과 청순가련한 이미지로 영화마다 흥행에 성공하였다.
정윤희씨는 미모와 대중적 인기가 셋 중 가장 뛰어났다.
정윤희-장미희-유지인, 이른바 70년대 트로이카는 저마다 다른 장점을 가지고 함께 빛났던 스타이다.
지금 현재 최고의 배우라고 꼽는 이영애씨나 김혜수씨 등등 많은 여배우들의 인기는
이들 세 트로이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최고 인기의 여배우들은 수가 많지만 당시에는 이렇게 셋을 제외하고는 그에 대적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정윤희씨는 영화배우로써 널리 이름을 알렸는데...
많은 영화에 출연하지는 않았으나 찍은 영화마다 흥행에 성공하였다.
영화배우로써 우리나라 최고 권위의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80년, 81년에 연달아 수상했다.
워낙 이미지가 미모로 승부하는 여배우로 굳어졌기 때문에 그녀의 연기력은 잘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여우주연상을 두번이나 타면서 그 연기력도 인정을 받았다.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씨는 90년대의 SES 와 핑클같이 누가 낫다고 할 수 없는 라이벌이었고 뭇 남성들을 저마다 다른 매력으로 사로잡았다.
이들 세 여배우는 한국이 낳은 최고의 스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정윤희씨는 영화활동 뿐 아니라 드라마에도 출연을 많이 했다,
요즘 말로 하면 CF퀸의 자리에 있었다고 할 만큼 많은 CF활동을 했다.
1984년 결혼과 함께 전격 은퇴했다,
지금까지 연예계 행사에는 한번도 그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그녀의 결혼에 대해서 말들이 많은데
1984년 당시 중앙산업 조규영 회장은 전처와의 이혼소송 중이었다.
전처와 조회장 양측이 내세우는 위자료 액수가 너무나도 달라서 소송은 1년이 넘도록 진행되었고
이혼소송과 별거중에 조회장은 정윤희씨를 만났다.
정윤희씨와 조규영회장의 관계를 알아챈 조회장의 전처는 정윤희씨가 유명인임을 이용, 언론화시켰고
간통죄로 고소하게 된다.
몇달 후, 법원은 정윤희씨를 무죄판결하지만 여배우로써 그러한 스캔들은 치명적이었다.
조회장은 결국 이혼소송에서 전처가 요구하는 만큼의 위자료를 배상하고 정윤희와 결혼에 성공하엮다.
1984년 결혼한 정윤희씨는 2007년 현재까지 조규영회장과의 평범한 결혼생활을 지속하고 있으며, 조회장과 전처 사이의 두 자녀, 그리고 본인과 조회장 사이의 자녀, 모두 세 자녀를 키우며 주부로써 살고 있다. 정윤희씨의 이러한 스캔들은 유명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언론폭력의 희생자가 된 좋은 예다.
조규영회장의 전처는 정윤희씨의 영화배우인생을 희생시킴으로써 거액의 위자료를 챙겼고, 본인이 낳은 아이들의 양육권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이혼하였다.
이후로 정윤희씨는 평범하지만 행복한 삶을 계속해 왔고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에서 20년 넘도록 거주하며 아이들 키우는 데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최근 유지인씨가 컴백하고 장미희씨 역시 꾸준히 활동을 하면서 정윤희씨의 컴백여부를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고 있는데...정윤희씨 본인은 컴백할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출처 : 우린친구닷컴 - 정윤희 - )
1975년에 영화에 대뷔하여 욕망,청춘극장. 목마와 숙녀. 1976. 고교 얄개. 핏줄. 고교 우량아.
얄개행진곡. 임진왜란과 계월향. 나는 77번아가씨. 가을비 우산속에. 꽃순이를 아시나요.
도시의 사냥꾼. 사랑이 깊어질때.우요일. 죽음보다 깊은잠. 강변부인. 내가버린여자 2부.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최후의 증인. 사랑하는 사람아. 아가씨 참으세요.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아벤고 공수군단. 여자와 비. 여자의 함정. 정부. 벌레먹은 장미. 춘희.
땜장이 아내. 안개마을. 약속한 여자. 질투. 동반자. 사랑의 찬가. 속.사랑하는 사람아.
제3편 사랑하는 사람아등 수 많은 작품을 남겼다..
당시에는 성형을 하지않은 순수 자연 미인들 중 한 사람이였으며 팬들 또한 성형 미인을
외면 하던 시대였다. (당시는 성형술이 발달 되지 않았음)
영화 수상경력
제18회(1982) 백상예술대상 영화 여자최우수연기상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제20회(1981) 대종상 영화제 여우조연상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제17회(1981) 백상예술대상 영화 여자최우수연기상 - 사랑하는 사람아
제19회(1980) 대종상 영화제 여우주연상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영화작품
사랑의 찬가 (1984)
동반자 (1984)
사랑하는 사람아 3 (1984)
질투 (1983)
안개마을(1982)
죽음보다 깊은 잠(1979)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우진필름,1980)
정부(1982)
목마와 숙녀(1976)
속 사랑하는 사람아(1983) 사랑하는 사람아 3(1981)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1981)
데뮈 당시의 잡지기사...
사진에 보니...1982년 6월이라고 되어 있다.
화장품 CF...
가장 정윤희 다운...표정의 사진이다..
음반도 취입했다...1집
아티스트 : 정윤희
음반 이름 : 왜 내가 슬퍼지나요
음반 구분 : 정규, studio - 1집
발매 일자 : 1977 / 한국 (Rep. of Korea)
Tracks Side A
1. 왜 내가 슬퍼지나요 (작사:최인호 작곡:이정화)
2. 그대는 모르리 (작사:이정화 작곡:이정화)
3. 나의 행복한 이꿈 (작사:윤은철 작곡:윤은철) 정미조
4. 사랑의 편지 (작사:정성희 작곡:오준영) 한영애
5. 꽃내 (작사:홍성수 작곡:홍성수) 김홍경
6. My Way (나의 길을 가련다) (작사:조용호 작곡:외국곡) 정미조
Tracks Side B
1. 목마른 소녀 (작사:최인호 작곡:이정화)
2. 날 불러주세요 (작사:이정화 작곡:이정화) 정미조
3. 하얀꽃 (작사:이수연 작곡:오준영) 오종국
4. 언제쯤일까 (작사:홍성수 작곡:홍성수) 김홍경
5. 오해 (작사:정민섭 작곡:정민섭) 정미조
6. 나의 조국 (군가)
2집 - 가르쳐 주세요 (LP 79)
1. 가르쳐 주세요
2. 목마른 소녀
3. 안녕하긴 싫어요
4. 숙명
5. 정미조.박경애 강가에서
6. 기다려
7. 그대는 모르리
8. 하얀 손수건
9. 그래서 그대 좋아해
당시에 시대가 그랬던것이라 영화가 이렇다. 애마부인 계열의 영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모나미 왕자파스...모나미볼펜 광고 사진...
PS : 보너스
한번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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