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스흐탄 스텝 지역의 풍경
스텝은 러시아와 아시아의 중위도 부근에 위치한 초원지대를 말한다.
사막지역과 습윤지역의 점이지대에 위치하므로 단초와 장초가 나타난다.
대개 10~15cm의 짧은 풀을 가르키지만, 반건조 기후에서도 기온이 낮고 비가 좀 적은 지역의 초원인데,
비가 많이 오는 해에는 풀의 키가 좀더 자란다.
이러한 이유로 스텝기후는 초지기후라고도 한다.
보통 스텝은 풀을 깍은 목초지와 흡사하여 지평선의 저쪽까지 넓고 단조로운 경관이 계속된다.
풀은 일반적으로 내건생식물로서의 특성을 갖고 있어
비가 온 후 급속히 성장하고 짧은 시간 내에 생활 과정을 끝낸다.
1년생 초목 중에는 가을에 발아하여 잎이 나고 겨울을 보낸 후
봄에 개화하여 건조한 여름 전에 생활과정을 마치는 것도 있다.
스텝의 분포를 살펴보면,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흑해 부근에서 키르기즈 초원에 이르고
바르하시호수 부근을 걸쳐 중국 북부 내륙의 고원에 이르는 것과
북아프리카에서 동쪽으로 연속되어 이란, 이라크의 사막 지대를 둘러싸는 지역이다.
그리고 북미의 대평원, 시베리아 남부, 우크라이나의 흑토대, 건조 팜파스,
오스트레일리아의 스텝 등지에서는 목양이나 밀을 생산한다.
스텝 기후(Steppe Climate/Semi-arid climate)는 쾨펜의 기후 구분에서 건조 기후에 속하며,
초원 기후라고도 한다.
사막기후 다음으로 건조하다.
카자흐스탄 원주민은 13세기에 이 지역으로 이주해 온 투르크와 몽골의 유목민족의 혼합이며,
단일 국가로서 통일이 잘 되지 않았다.
18세기에 그 지역은 러시아가 정복하여, 1936년에 카자흐스탄은 소비에트 공화국의 하나가 된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농업적으로 "불모지(Virgin Lands)" 프로그램 동안에
소비에트 시민들이 카자흐스탄의 북부 목초지를 경작하는 것을 장려하였다.
이를 위해 이주해 오는 살람들(주로 러시아인이지만 다른 나라에서 추방되어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이
민족구성을 왜곡하고 비-카자흐스탄인이 원주민보다 많아지게 되었다.
1991년의 독립으로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주해 나가게 되었다.
카자흐스탄의 경제는 이 나라의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최근의 정치적 안정에 크게 힘입어
기타 중앙 아시아 국가를 모두 합한 것보다 크다.
카자흐스탄은 유라시아의 중심부에 그리고 많은 국가,인종 그리고 문명들 사이의
사회적인 고대인, 경제 그리고 문화적인 도로들의 교차점에 위치한다.
역사의 다른 기간들 동안에 많은 나라들이 그들만의 문화를 가지고 현재의 카자흐스탄 영토에 설립되었고 발전하였었다.
스키타이 사람 유목민 문명은 이 문명의 몇 개의 가공품들이 여전히 발견될 수 있는
1번째 밀레니엄 B.C의 1 세기 동안에 중앙 아시아의 스텝지대 지방에 존재하였다.
이 시대부터 가장 인상적인 가공품들은 이른바 가구 그리고 청동과 금으로 만들어진 "동물 스타일"이다.
"황금 전사 왕자" 무덤은 그것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에 대한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은 알마티 도시와 매우 가까이 위치한 이식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발견되었다.
다음 세기 동안에는 훈족이라는 강력한 부족이 현재 카자흐스탄이 있는 스텝지역에 건국하였다.
그것은 그 시대에 이 지역의 정치적인 개발에 큰 영향력을 주었다.
그들의 훌륭한 장군 Attila이 이끈 훈족의 군대는 로마제국을 내쫓았다.
튀르크어군에 나중에 종족들은 훈족의 상속자들이 되었다.
그들은 제국을 의미하는 "Kaganats"라는 국가를 만들었다.
이 제국들은 동쪽에 황해로부터 서쪽에 흑해까지 영토를 덮었다.
이 유목 계급들은 그 시대 동안 문화들을 잘 발전시켰다.
높은 수준의 상업과 무역기술을 가진 몇몇 도시들이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도시들 그리고 caravan-sarais는 중앙 아시아의 오아시스들을 설립되었다.
그것이 역사적인 통로 즉 비잔티움과 중국을 연결시켜준 "실크로드"이다.
다른 대상 길 또한 중요하였다.
그것들 사이에 Syr-Dariya강을 따라 아랄 해와 Ural에 이르렀던 길을 "sable road"라고 불렀으며
이것은 중앙 카자흐스탄과 Altai에서 시작하여 남서쪽 시베리아로 뻗어있었다.
유럽과 중동은 이 도로에 의해 매우 귀중한 모피들이 공급되었다.
큰 도시들과 상업준심부들은 이 통상항로들을 따라 만들어졌다.
그들 사이에 대부분 유명한 곳은 Farab, Taraz, Kulan, Yassy(Turkestan), Sauran 그리고 Balasagun이다.
실크로드라는 무역통로는 상업관계를 발전시키고 무역
그리고 혁신적인 과학적 고안과 문화적 고안을 교환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위대한 동양철학자인 AI-Farabi는 현재 카자흐스탄의 영토에서 870년부터 959년까지 살았으며
그는 철학, 천문학, 수학, 그리고 음악이론에서 아리스토텔레스 다음 가는 학자로 알려져 있다.
Hodja Ahmed Yassawi는 12세기의 무슬림의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는 지식의 책이라는 유명한 시를 적었다.
이때 발전된 새로운 방식의 도시 건축물들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성취이다.
이 새로운 스타일은 고풍스러운 조화로 유명하다.
동시에 독특한 형식의 이동식 거처는 yurta라고 부르며 이것은 유목민들에 의해 발명되었다.
Yurta는 그 사람들이 살아온 생활 방식을 위해 완벽하게 설계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1221년 칭기스칸이 중앙 아시아를 점령하면서 유목민들은 지배를 받았다.
이것은 카자흐 민족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카자흐족들은 그때쯤 별개의 종족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왕들이 통치하던 Elder, Middle 그리고 Lesser Zhuzes들로 구성된 3개의 부족이 결합하여
Kazakh Khanate라는 부족연합을 만들었다.
다른 방랑한 종족들의 합병은 15 세기의 후반기에서 시작하였다.
이 종족들은 다른 문화들과 전통들을 가지고 있었으나 유사한 생활 양식을 가지고 있었다.
단어 "Kazakh"는 튀르크어군 언어로부터 "자유롭게, 독자적"을 해석되고
모든 시간에 자유를 위해 그것의 욕망과 대체로 완전하게 국가의 인물을 반사한다.
카자흐족 칸의 지위는 낙하와 큰 방랑한 제국의 붕괴에 의하여
영향을 받은 정치적인 위기가 있었던 시간에 나타났다.
그것은 그들간의 영토 다툼과 실크로드의 부분들을 통제하기 위한
다툼들로 인해 많은 작은 나라들이 새겨났다.
징기스칸과 경쟁자들 또한 지방의 정치적인 불안정에 큰 역할을 하였다.
16 세기 말 이후 카자흐족 칸의 영토의 주목적은 성실과 그것의 영토의 불가침을 진전시키는 것이었다.
18세기 초에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은 카자흐 독립의 국방과 개발 자원이 부족하였음을 보여준다.
쭝가 한국(汗國)이라 불리우던 매우 강력하고 도전적인 이웃이 카자흐 한국(汗國) 국경선에 있었다.
이 사실은 카자흐 칸으로 하여금 그들과 러시아와의 외교적 관계를 재고토록 하여
우호적인 교역관계뿐 아니라 쭝가 침략에 대항한 카자흐 한국과 러시아와의 군사동맹을 위한 변화를 일으켰다.
18세기 초 카자흐 국경선 주변과 카자흐 한국 자체의 정치상황은 매우 불안정하였다.
칸의 영토에 분열의 조짐이 있었다.
이로 인해 군소 주 아불카이와 사메케는 러시아의 보호국 조치를 수락하기로 결정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는 러시아가 군사적 방어와 보호를 승인하는데 동의할 유일한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호국 조치는 곧 러시아 군사력에 의한 식민지화로 변질되었다.
아빌라이 칸은 이러한 식민지화의 과정에 저항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는 매우 불리한 대내외적인 환경하에서 카자흐 한국의 독립을 성취함으로써 불가능한 일을 어렵사리 이루었다.
그는 중국과 러시아가 그 당시(18세기) 상당한 불화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이용했다.
불행히도 카자흐 한국의 독립은 그의 죽음 이후 지속되지 못했다.
1917년에서 1918년 일부 카자흐의 지식인들이 국가적인 독립운동을 창시하였다.
이 당시 카자흐스탄의 독립을 지키고자 "알라시"당과 "알라시 오르다" 정부가 설립되었다.
이 국가적 독립운동에 참여한 이들은 매우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많은 반란에도 불구하고 제정 러시아는 볼셰비키 혁명때까지 카자흐 족들을 장악하게 된다.
떠오르는 소비에트 주에 편입되어 카자흐스탄은 자치공화국이 되었으며
1936년에는 완전한 소비에트 공화국의 지위로 격상된다.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로 카자흐스탄은 1991년 12월 16일 독립을 선언하였다.
카자흐스탄의 신생독립국으로서의 최근 역사는 지배경제에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로 빠르게 발전하는 과도기로 가장 잘 묘사된다.
photo from : Atyrau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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