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 극장

추억의 배우 - 임성민

슈트름게슈쯔 2012. 5. 6. 13:23

 

 

 

임성민

 

본명 : 임관배

 

(
1956년 2월 25일 - 1995년 8월 20일)

180cm/77kg의 신체조건이면 요즘에도 아주 훤칠한 키에 잘 빠진 몸매를 가진 남자로 인정받는다.

 

더욱이 임성민은 고교시절(숭실고) 육상선수였기 때문에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로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매력적인 배우였고, 

 

게다가 임성민은 얼굴도 조각같은 미남이어서 80년대 최고 섹시한 남자배우 1순위로 꼽히던 배우였다.

그래서 고 임성민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임성민을 얼굴만 잘 생긴 미남배우 정도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 임성민이 살아생전 약 19년 동안 배우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연기에 눈을 뜬 시기는

 

'사의 찬미(1991년)' 이후부터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물론 <사의 찬미>를 통해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니까

 

그렇게 인식할 수 있겠지만, 임성민은 85년 작품 <장사의 꿈>으로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신인연기상을 수상했던 경력도 있다. 

 

"Filmography"

 


 

마지막밤의 탱고(1976년)

임성민은 건국대 재학시절 이성구 감독의 영화 <마지막밤의 탱고>에

 

캐스팅 되면서 연기인생을 시작하였다.

 

빼어난 신체조건에 얼굴까지 잘 생긴 임성민은 일찌감치 배우에 뜻을 두고 77년 TBC 공채 탤런트 시험에도 합격했다.

당시 <김두한>시리즈로 액션배우로 인기절정에 있던

 

이대근이 보기 드물게 멜로연기에 도전했던 이 영화는 불행하게도 개봉관에서 개봉하지는 못했다.

 

 



 

마지막 잎새(1977년)

첫 출연 영화가 흥행에서 실패를 한 후 임성민은 1977년 또 다시 이성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옴니버스영화

 

<마지막 잎새> '크리스마스 선물'편에서 김보미와 함께 크리스마스날 서로 선물을 주고 받는 부부역으로 출연했다.

이때까지 임성민은 본명인 '임관배'로 출연하였는데,

 

그래서 포털 등의 임성민 필모그래피에 <마지막밤의 탱고>와 <마지막 잎새>가 빠져있다.

아무튼 대학 재학시절 연기에 뜻을 두고 출연했던 두 영화가 모두 개봉관에서

 

개봉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은 임성민은 이후 건국대학교 체육학과를 중퇴하고 군 복무를 하는 등 공백기를 가졌다.

임성민이 본격적으로 연기생활을 시작한 것은 1983년.

 

그는 TBC를 합병한 KBS의 드라마 <금남의 집>에 출연하면서 단박에 기대주로 떠올랐다. 

본명을 버리고 임성민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연기생활을 시작한

 

임성민은 탄탄한 하드웨어로 남자배우 기근에 시달리던 영화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고

 

제작자들은 앞다투어 그를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바람난 도시(1984년)

 



 

달빛 멜로디(1984년)

 



 

탄드라의 불(1984년)

1984년 임성민은 이미숙과 <바람난 도시>에서, <애마부인>으로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안소영과는 <달빛 멜로디>에서,

 

80년대 섹시한 여배우 중 한 명이었던 신예 오혜림과

 

<탄드라의 불>에서 연기 호흡을 맞추며 세편 모두 주연으로 출연하는 기염을 토했다.

 

 



 

무릎과 무릎사이(1984년)

그리고 이장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안성기, 이보희가 주연을 맡은

 

<무릎과 무릎사이>에서 조연으로 출연하여

 

이 영화가 흥행에 크게 성공하면서 임성민은 섹시스타로 자리메김하게 된다.

 

 



 

색깔있는 남자(1985년)

 


 

장사의 꿈(1985년)

드라마까지 겹치기 출연하며 84년 한해를 바쁘게 보낸 임성민은

 1985년 <색깔있는 남자>에서 당시 오트리오로 불리운 여배우 오수미, 오혜림, 오경아의 상대역으로 출연하였고,

  신승수 감독의 데뷔작 <장사의 꿈>에서 금보라와 호흡을 맞추며

 열연을 펼쳐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신인연기상을 수상했다.


80년대 한국영화계가 정부의 3S 정책으로 SEX 영화가 붐을 일으킨 시기임을 감안하면

 남자배우로써 임성민은 독보적인 존재나 다름없었다.

 <변강쇠>와 같은 토속 에로영화에서의 이대근과는 다른

 현대적인 섹시미를 발산했던 임성민이었던 것이다. 

 
또한 임성민은 1985년 옷 잘 입는 배우로도 꼽히기도 했다.

 

 그해 베스트드레서로 꼽힌 연예인은 가왕 조용필, 나미, 유지인 그리고 임성민이었다.

 



 

몸 전체로 사랑을2(1986년)

섹시스타로 각광받던 임성민은 그 자체로 한계에 부닥치게 된다.

 

1986년 오수미, 김청과 함께 출연한 <몸 전체로 사랑을2>는

 

에로티시즘과 포르노그라피 사이에서 논란을 불러온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홍파 감독이 1973년 하명중(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과

 

우연정, 전계현 등을 기용하여 만든 동명의 영화 속편이었다.

1987년 임성민은 강수연, 이대근, 방희 등이 출연한 <됴화>와 드라마

 

<푸른 해바라기>에 출연했고, 1988년에는 이혜영과 호흡을 맞춘 영화

 

<제2의 성>과 드라마 <황금의 탑>에 연속해서 출연했다.

 



 

애란(1989년)

1989년 임성민은 이황림 감독의 <애란>에서 재일교포출신 연극배우

 

김구미자와 주연으로 출연하며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김구미자는 이후 <미친 사랑의 노래’(1991)> 등 한국영화에 꾸준히 출연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2004년 10월 1일

 

일본 도쿄의 한 병원에서 향년 45세의 일기로 위암으로 사망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사의 찬미(1991년)

 


80년대 이영하, 마흥식 등 남자배우들과 함께 3S 정책에 의한 에로영화에 주로 출연했던

 

임성민은 1991년 에로배우라는 이미지를 벗어던질 수 있는 영화에 출연할 기회를 잡게 된다. 

바로 <겨울여자>의 흥행감독 김호선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장미희를 기용하여 만든 윤심덕 이야기를 다룬

 

<사의 찬미>에 출연했던 것이다. 

 

김우진역을 맡은 임성민은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비로소 연기력도 인정받게 되었다.


 

땅끝에 선 연인(1992년)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4년)

 



 

애니깽(1995년)

 

1992년 최수지와 주연을 맡은 <땅끝에 선 연인>에 출연한 임성민은 1993년엔 드라마 <폭풍의 계절>,

 

<사랑의 조건> 등에 출연한 후 1994년 고 최진실, 유오성과 호흡을 맞춘 문제작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서 고 최진실에게 납치되는 남자배우 역을 훌륭히 소화했다.

1995년 임성민은 김호선 감독의 대작 <애니깽>에 캐스팅되어 열연을 펼쳤고,

 

드라마 <사랑과 결혼>과 <고백>에 겹치기 출연하던 도중 갑자기 쓰러져 간 이식을 해야할 만큼 악화되어

 

입원한지 3개월만에 향년 40세의 일기로 세상과 등지고 말았다. 

한창 연기에 눈을 뜨고 진정한 전성기를 누릴 즈음,

 

그렇게 배우 임성민은 슬하에 딸 한 명을 남겨두고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임성민과 함께 스크린에서 호흡을 맞추었던 여배우 오수미, 김구미자,

 

그리고 최진실은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난 비운의 배우들이었다.

 

 

 

에놈쌍쉬엘(색깔 있는 남자 ) 1985년  마산 태양극장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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