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나치 공군 루프트바페의 주력이었던 하인켈 111 중형폭격기[WW2- Nazi Germany Air Force Luftwaffe Main Bomber HE-111]

슈트름게슈쯔 2012. 5. 21. 17:59

 

 

2차 세계대전당시 독일 공군의 하인켈 He-111 폭격기와 승무원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대표적인 폭격기였던 He111 중형 폭격기는

독일 항공사인 하인켈 항공사에 의해서 제작되었으며 전체 생산량은 6508대였다.

 1930년대 하인켈 항공사의 기술자인 에른스트 하인켈은

 독일 항공기 제조업체와 정치인들의 회의에따라 여객기를 개발하는 명목에서 개발에 착수하였다.

 하지만 이는 당시 독일이  베르사유 조약으로부터 피하기위한 수단에 불과하였으며

기술자인 발터 귄터와 지크프리트와 하인켈 항공사측과 함깨 개발에 착수하였으며

1933년 6월 육군원수 알베르트 케셀링이 하인켈 항공사를 방문하여

공군내에 새로운 비행군단과 독일 국방군에 짜맞추어 생산할것을 촉구하였다.

 그리하여 확신을가진 하인켈 항공사는 3000여명의 직원들과 함께

로스토크의 공장에서 He111폭격기를 새로이 설계한후 1번째 시제기 생산에 돌입하였다.

 그리하여 1935년 2월 24일 첫번째 시제기가 시험비행을 하였으며

시험비행은 성공적으로 비행을 하였으며 1935년이 끝나가던 무렵에는

2번째 시제기와 4번째 시제기가 완성되었으며 민간기로 등록되기도 하였으며

1936년 1월 10일 1번째 시제기는 He111A형으로 받아들어 젔으며

당시로는 시속400km넘는 "세계에서 비교적으로 빠른 항공기"로 인정받기도 하였으며

설계당시 1000마력의 다임러-벤츠DB 600엔진을 장착하였다.

 하지만 그때 대독일제국의 항공기 제조산업의 동력 부족으로 인하여

부자연스럽게 600마력의 BMW 글리콜-공랭식 엔진을 사용하였다.

 

1936년 스페인내전이 발발하자 대독일제국은 He111폭격기를 본격적으로

군용기로서 운용하기 시작하였으며 폭격기로서 사용되었으며

주로 콘돌군단에 지원폭격에 동원되었으며 한편으로는 차근차근 개량하여 나갔다.

 그리하여 가을에 B형으로 개량하였으며 이때 기체밑에 포탑을 탑제하였으며

 후각에는 회전식 총좌를 설치하였으며 엔진에 과급기를 설치하고

마력을 높인 다임러-벤츠DB 600C엔진을 장착하였으나

1937년말 융커스 유모 210G엔진을 장착하여 보다 개량을 거듭하였다.

원래는 다임러-벤츠 600Ga 엔진을 장착할예정이였으나

 Bf109전투기와 Bf110전투기생산에 할당하면서 엔진공급에 차질이생겻으며 

융커스 유모 210G엔진의 낮은동력으로 인하여 독일은 He111폭격기를 개량시키기로

결정하였으며 그리하여 개량된것이 E형이였다.

 E형은 방열기와 배기장치 시스템을 갖추었고 폭탄탑제양이 2000kg까지 적재하였으며

 고도로 발달한 융커스 유모 211A엔진을 장착하고 FuG무전기를 부가적으로 장착하였다.

 1939년 9월 폴란드 전에서 폴란드군을 향해 폭격을 감행하기도 하였으며

1940년 4월 9일 노르웨이 전투에서도 투입되었다.

 

이후 8월에는 Ju88폭격기,Do17폭격기와 함깨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도 투입되어

영국본토를 폭격하여 영국에 큰피해를 입히기도 하였으나

영국의 전투기 허리케인,스피트파이어 전투기에 의하여 많은 He111폭격기가 격추되었다.

 1941년 6월 22일 바바롯사작전으로 인한 소련과의 전면전 당시 He111폭격기는 소련에 폭격을 하기도 하였으며

1942년 7월 17일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는 폭격과 보급품을 수송하기도 하였다.

 하인켈 He111폭격기의 개량형인 J형,H형처럼 어뢰와 기뢰를 적재하여

대서양에서 호송선단을 공격과 기뢰부설 임무에 투입되기도 하였다.

 1944년 9월이후에는 He111폭격기는 더이상 생산되지는 않았으나

He111폭격기는 1945년 전쟁이 끝날때까지 사용하였다.

 또한 스페인은 He111폭격기를 자국화하여 CASA2.111폭격기를 생산하여 사용하였다.

 He111폭격기의 파생형은 A형,B형,C형,D형,E형,F형,G형,J형,L형,P형,H형,R형,U형,Z형등이 있다.

 

 

 

 

하인켈 He111폭격기의 제원

 

승무원:4명
길이:16.4m

날개길이:22.6m
높이:4m
날개 공간:87.6m²
무게:비무장시8680kg
         :최대무장시14000kg
엔진:2개 융커스 유모 211F-1 수냉식 V-12 엔진 1300마력
최고속도:440km
항속거리:2300km
상승도:6500m
무장:7.92mm MG 15 기관총7정(혹은 7.92mm MG 81 기관총7정)

         :13mm MG 131 기관총1정(후방에)
         :20mm MG FF 기관포1정
         :2000kg까지 폭탄적재가능

 

 

 

 

 

폭격 명령을 받고 출격에 나선 하인켈 He 111 폭격기

 

 

 

 

하인켈 He 111 폭격기의 앞부분 기관총좌

 

 

 

폭탄을 투하시키는 하인켈 111 폭격기

 

 

 

동체 앞부분의 조종석에 공격을 받은 하인켈(HE-111) 폭격기

 

 

 

 

영국 공군에 격추되어 동체가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은 독일 공군의 하인켈 111 폭격기

 

 

영국 본토 폭격 항공전에서 독일공군이 주로 사용한 폭격기인

쌍발 엔진의 하인켈 HE 111은 원래 민간용 여객기로 등장했으나,

비밀리에 폭격기로서 테스트를 받았다.

1937년 실제로 초기형들은 루프트한자 항공상 표식을 붙이고 사진 정찰기 임무를 띠며

영국, 프랑스, 소련 상공을 비행하였다.

HE 111은 스페인 내전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때는 방어하는 전투기들 보다는 더 빠른 속도로 비행하였다.

그리고 1939년에는 독일공군의 주력 폭격기로서 대량생산이 되었다.

넓고 끝이 둥근 날개 때문에 그 승무원들에 의해서 "스페이드"라고 불리운,

앞머리가 유리창으로 된 HE 111은 폴란드,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와의 전투에도 참가하였다.

 

하인켈 폭격기 HE 111H-3은 도르니에 DO 17 폭격기보다 폭탄을 2배 적재할 수 있었으며

급강하 소형폭격기인 융커스 JU88보다 1,000파운드 이상이 더 많았다.

그러나 메사슈미트 공장이 사용 가능한 다이뮬러 벤츠엔진을 전부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HE 111H-3도 DO 17과 마찬가지로 더 약한 엔진을 사용해야만 하게 되는 속도가 떨어지고 말았다.

느려진 속도를 상쇄하기 위해서, 기관총이 더 추가되고, 방어용 장갑판도 보강되었다.

 영국의 전투에서는 HE 111-3은 호위 전투기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영국의 목표물에게 심한 타격을 입혔으며 박살이 나기전까지는

공중에 떠 있을 수 있는 튼튼한 비행기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전투기가 호위를 해줄수 없을때에는, 느린 "스페이드"들은

훨씬 더 빠른 영국의 전투기들에게 많은 수가 격추되고 말았다.

그러나 전투 이후에도 HE 111들은 독일공군의 주력 폭격기로

 런던 "대공습"에서 사용되어, 도시 곳곳을 폭격하여 심각한 피해를 끼쳤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의 대표적인 하인켈 He111 폭격에 비하여

영국 공군의 애브로 랭카스터 폭격기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운용된 폭격기중에서

가장 많은 10톤의 폭탄 탑재량을 갖춘 영국 공군의 폭격기였다.

 

2차 세계대전 이전에 개발되었던 독일 공군의 대표적인 폭격기였던

하인켈 HE-111 중형 폭격기의 폭탄 적재량은 2톤 정도에 불과한것에 비하면

영국 공군의 랭카스터 폭격기는 독일 폭격기에 비해

폭탄 적재량의 수치가 무려 5배나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말기에 등장하여 주로 태평양 전쟁시

일본 본토 폭격에 투입된 미국의 보잉 B-29 폭격기의 폭탄 탑재량은  

겨우 이에 필적하는 9톤이었다.

 

즉 영군 랭카스터 폭격기와 미공군의 B-29 폭격기  1대는

독일 공군의 중형 폭격기였던 하인켈 He111 폭격기 5대와 

맞먹었던 것이다.

 

전쟁기간 동안 미국과 영국이 지속적으로 대형 폭격기를 개발하여

소속들이 전투에 투입될 시점에

독일이 대형 폭격기 개발을 등한시 한것은 히틀러와 

독일 공군 수뇌부 헤르만 괴링 원수의 멍청한 실책이었자

대형 폭격기 개발에 따른 재원이 부족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독일은 육해공 작전에 하인켈 He111 폭격기를

주력으로 활용할수밖에 없었다.

 

만약 독일이 2차 세계대전초에 대형폭격기 개발을 서둘렀더라면

역사는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히틀러의 야망에 의해 19412년 소련 침공이라는 돌파구를 찾았지만 

결코 히틀러는 소련을 굴복시키지 못했다.

도리어 소련에게 패하고 말았으며

결국 독일의 소련 침공으로 인하여 나치 독일은 패망시기를 앞당겼다.

 

독일의 침공후 소련은 재빨리 독일 공군의 폭격을 피해 우랄 산맥 너머로

소련군의 무기 제작에 필요한 공장 플랜트 시설을 분해하여 온전히 철도로 옮겨 날랐다.

그리고 그곳에서 본격적인 무기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그곳은 독일의 중형 폭격기였던 하인켈 He111 폭격기로서는 항속거리가 

짧아 도저히 접근을 할수 없는 지역이었다.

 

만약 독일에게 영국의 랭카스터 폭격기나 미국의 B-29 폭격기 같이

항속거리가 대단히 길고 폭탄적재량이

독일 폭격기의 5배 정도가 되는 대형 폭격기가 준비되어 있었다면

우랄산맥을 넘어가서 소련의 군수 산업 공장에 폭격을 가하였다면

독소전쟁의 전세와 승패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photo from : Foremsgamesqur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