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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영토 야욕과 러시아 쿠릴 열도 T 54 포탑 해안포[Japanese territory avarice & Russia Kuril Islands Coastal Artillery T 54 Tank Turret]

슈트름게슈쯔 2012. 8. 30. 14:42

 

 

러시아 쿠릴열도 쿠나시리섬의 T54 탱크 해안포대 - 2010년 11월 1일

 




 

 

 

러시아령 쿠릴열도의 남부 4개섬

 

쿠나시리,하보마이,시코탄,에토로후의 위치

 

 

 

러시아 쿠릴열도 남부 쿠나시리섬을 방문한 드미트리 메데베데프 대통령 - 2010년 11월 1일

 

 




  

 

소련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후 당시 전쟁말기에 제작되었던 최신형 전차였던 T54 전차의 포탑을

이용하여 쿠릴열도 남쪽 섬들의 해안포대로 이용하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65년의 세월이 지나서 이젠 녹이 슬어 쓸모없는 고철덩어리로 변해버렸다. 

 

 

 일본은 이 쿠릴열도의 4개섬인 쿠나시리,하보마이,시코탄,에토로후섬을

자기들 영토라고 주장하며 소위 북방 4개섬이라 지칭한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적으로 러시아에 쿠릴 열도 남부의 4개섬을

계속 자기들의 영토라고 내어줄것을 요구해 오고 있다.

 

엄연히 국제법적으로 러시아의 영토인 쿠릴열도 남부 4개섬을 

러시아가 일본의 영토라고 선뜻 내어줄리가 없다.

하지만 일본의 극렬한 국수주의자들은 집요하게도 러시아에 

2차 세계대전 이전에 쿠릴열도 남부의 4개섬이 자기들의 영토였다고

다시 반환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 해오고 있다. 

 

 

일본이 자기나라 영토라고 주장하는 쿠릴열도 남부 4개섬의 영유권 주장 떼쓰기 작전은

 소위 일본이 센카쿠 열도라 부르고 중국이 다오위다오섬(조어도 : 釣魚島)이라 부르는 

동지나해의 섬에 대한 영토 분쟁과 그 형태가 비슷하다.

 

 

1945년부터 쿠릴열도 남부에 4개의 섬이 있는 이 지역은 소련의 영토가 되었다.

 샌프란시스코(1951.9.8) 강화조약 에서 일본은 시코탄 섬과 하보마이 군도는 

쿠릴열도에 포함되지 않으며 홋카이도의 일부'라고 영유권을 주장했다.

당시 일본은 에토로후섬과 쿠나시리섬에 대해서는

회의 석상에서 두 차례에 걸쳐 ‘남지시마(남쿠릴열도)’라고 부르며,

 이들 2개 섬이 포기한 쿠릴열도 안에 포함됨을 인정했다.

 

 

1956년 일,소공동선언 당시 소련은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시코탄섬과 하보마리 군도를 반환 제의를 했지만

 1960년 일본이 미국과 미,일 안보조약을 체결하자 소련은 거세게 반발하면서

 시코탄섬과 하보마이군도를 반환 제의를 취소하고 반환하지 않았다.

 

 

이후 일본은 쿠나시리섬과 에토로후섬 까지도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이 4개 섬이 홋카이도에  부속된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1945년 소련에게 빼앗긴 이 섬들을  러시아가 돌려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1950년대에는 시코탄섬과 하보마이 군도에서 시코탄섬과 대해서만

쿠릴열도에 포함되지 않는 '홋카이도의 일부'라고 영유권을 주장하다가,

 

 

1960년대 이후에는 쿠나시리섬과 에토로후섬에 대해서도

쿠릴열도(일본명: 千島列島, 지시마 열도)란 말 대신

 "북방 영토"라 부르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의  반환 요구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은 명확하다.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서 일본은 쿠릴 열도 전체에 대한 일체의 권리를 이미 포기했고,

에토로후섬과 쿠나시리섬은 일본이 영유권을 포기한 쿠릴 열도에 포함된다.

얄타 회담에서 소련의 참전이나 전후의 쿠릴 열도 할양은 연합국에 의해 사전에 승낙되었다.

도쿄 재판 확정 판결은 “일소 중립 조약은 성의 없이 체결된 조약이며

소련에 대한 일본의 침략 기도를 진행시키려는 수단으로 이용된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러시아 쿠릴열도 쿠나시리섬의 T-54 전차의 초기형 포탑 토치카

 

 

 

일본이 러시아를 상대로 계속된 쿠릴 열도 남부 4개섬을 돌려달라는 떼쓰기는  

 

 

쿠릴 열도 최남단의 2개 섬(에토로후섬과 쿠나시리섬)과

홋카이도 북동쪽의 2개섬(시코탄섬과 하보마이 군도)에 대한

일본과 러시아의 영토 분쟁이다,

 

 

일본은 이 4개 도서군을 일본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고

소위 북방 영토라고 지칭하고 있다.

 

 

이들 4개 섬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비에트 연방의 영토가 되었고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 러시아의 영토가 되었지만 일본은 계속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2007년 6월3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부 장관이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외교장관으로는 처음으로 이 지역을 방문했다.

일부 언론은 이 방문이 러시아 정부의 단호한 지배권 강화의 자세를 상징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세르게이 라브오프는  방문 일정이 끝난 후

일본 정부에 남쿠릴 열도 4개 섬 공동 개발을 제안하였으나,

일본 정부는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이 섬들이 러시아의  영토라고

용인하는 것으로 비춰질까 염려하여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일본과 러시아 양국 정부는 2008년 5월 쿠릴 열도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로

비자 면제 방문 프로그램에 합의하였다.

양국은 일본에 연고를 두고 있는 320명의러시아인과 쿠릴 열도에 가족 묘지나

친지가 있는 517명의 일본인등 총 837명에 대해 29차례에 걸쳐 비자 없이 상호 방문을 허용하기로 했다.

 

 

2008년 11월 22일에 러시아와 일본의 정상들은 영토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교도통신은 영토 협상이 본격화될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했다.

2011년 2월 16일 중화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의 수산업체가

쿠릴열도 쿠나시리섬 에서 러시아와 공동으로 해삼 양식 사업을 할 예정이라고 보도되었다.

일본은 제3국 기업의 남쿠릴 열도 투자가

 러시아의 영유권 인정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러시아는 2010년 11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으로 지역을 방문하는 등

남쿠릴 열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고 있고,

일본 외에 중화인민공화국이나 대한민국 기업에 투자를 요청하고 있다.

 

 

 

 

러시아 쿠릴열도 시코탄섬의 T54 탱크 포탑 해안포대 - 2011년 5월 11일

 

 

 

 

[러시아와 일본의 쿠릴열도 남부 4개섬의 관계사]

 

 

일본은 러시아제국보다  먼저 쿠나시리섬과 에토로후섬을 지배했으며,

러시아는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에토로후섬 이남 지역을 지배했다.

 

 

 

[1855년]

에도막부와 러시아제국은 러일 화친조약을  맺어 당시 각자의 세력권 아래 있던
 에토로후섬과 우루프섬의 사이를 국경선으로 정했다.

 

 

[1875년]

러시아와 일본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에서 사할린섬 전체를 러시아의 영토로 하는 대신,
쿠릴 열도의 섬들은 일본이 지배하기로 하였다.

 

 

[1905년]

러일전쟁이후 러시아는 일본에 패전함에 따라 
포츠머스 조약에 의해 사할린 섬의 남부가 일본에 양도되었다.

 

[1943년]

태평양 전쟁 중 미·영·중이 카이로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1945년 8월]

8월 8일, 소비에트 연방이 대일 참전을 시작했다.
8월 10일, 일본이 포츠담 선전의 수락을 연합국에 전달하고,
 9월 2일, 일본은 연합국에 대한 항복 문서에 조인했다.
포츠담 선언은 카이로 선언을 계승한 선언이어서 일본의 주권은 혼슈, 홋카이도, 규슈 및
시코쿠에만 미친다고 하여, 남사할린·쿠릴 열도는 제외된다고 했다.
소비에트 연방은 8월 28일부터 9월 1일까지
쿠릴열도 최남단의 2개 섬(에토로후섬과 쿠나시리섬)과 
홋카이도 북동쪽의 2개 섬(시코탄섬과 하보마이 군도)을 점령했다.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일본은 시코탄섬과 하보마이 군도는 
쿠릴열도에 포함되지 않으며 홋카이도의 일부'라고 영유권을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에토로후섬과 쿠나시리섬에 대해서는 회의 석상에서
두 차례에 걸쳐 ‘남지시마(남쿠릴열도)’라고 부르며,
이 2개 섬이 포기한 쿠릴열도 안에 포함됨을 인정했다.
 
 
[1956년]
 
일소공동 선언으로 외교 관계가 회복되었다.
공동선언 제9항에서, 소련은 하보마이군도와 시코탄섬을
 평화 조약 체결 후 일본에 반환하는 것에 동의했다.
 
 
[1960년]
 
기시 노부스케 내각이 미일안보조약 개정을 실시하자
소련은 거세게 반발하며 하보마이군도와 시코탄 섬의 반환 동의도 취소하고 반환하지 않았다.
이후 일본은 쿠나시리섬과 에토로후섬도 반환을 요구하는 것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1991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해체되었고, 러시아가 이 지역에 대한 영토 문제를 계승했다.

 

 

[2001년]

2001년 3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온건파인 모리 요시로 일본 총리는
 양측이 만족할 만한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하고 양측간 협상이 진행되었다.
 러시아는 하보마이군도와 시코탄섬을 일본에 반환한다는 입장이었고,
일본은 하보마이 군도와 시코탄섬을 먼저 돌려받고 쿠나시리섬과 에토로후섬의 반환에 관하여는
추후 협상을 계속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극우파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총리가 된 이후 일본이 입장을 바꾸어
4개 섬을 한꺼번에 돌려달라고 요구하면서 협상은 결렬되었다.
협상이 실패한 이후 러시아는 입장을 바꾸어
하보마이군도와 시코탄섬의  반환 계획을 폐기하였고
 어떤 섬도 일본에게 돌려주지 않고 있다.
 
 
 
[2012년]
 
러시아의 니콜라이 마카로프 총참모장은 2012년 2월 14일 모스크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쿠나시리섬과 에토로후섬에 군 주둔지 2곳을 추가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두 섬에는 러시아 군의 5개 주둔지(병력 3,500명)가 있기 때문에
추가 건설이 완료되면 주둔지가 7개로 확대된다.
이에 따라 쿠릴열도에 러시아군이 증강되고
최신 미사일과 공격용 헬기, 탱크, 장갑차 등이 배치될 예정이다.
2012년 3월 22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쿠나시리섬을 방문한 중국 수산물기업 대표단이
 “수산물 가공 공장 건설 등에 5,000만 달러를 투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중국 대표단은 대형 냉장고를 구비한 수산물 가공 공장을 비롯해
가리비·해삼 양식장 건설 등의 구상을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러시아의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쿠릴열도에서
러시아의 관할권을 인정하게 된다며 한국, 중국의 정부와 기업에
신중한 자세를 취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2012년 8월 14일에 러시아 정부는 일본과 영토분쟁중인 쿠나시리 섬과 
에토로후 섬에 전투함 2척을 파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photo from : Alexandr Lys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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