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 병기

독일에서 발명된 인류의 혁신적 연료통 제리캔[WW2 Nazi Germany First Invented Jerrycan]

슈트름게슈쯔 2012. 9. 10. 19:49

 

 

새로운 디자인의 Wehrmachtskanisterf를 제작하는 독일 슈벨름(Schwelm) 묄러( Müller) 공장의

수석 엔지니어 Vinzenz Grünvogel (1905-1977)씨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연료통이었던 Wehrmachtskanister을 생산하는 독일 슈벨름의 묄러 공장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혁신적인 발명품이었던 Wehrmachtskanister

 

 

 

 

독일 아프리카 군단의 식수 공급

 

 

 

독일 아프리카 군단의 연료보급 - 1941년

 

 

 

Wehrmachtskanister연료통을 차체 측면에 장착시킨 독일 아프리카 군단의 장갑차 - 1942년

 

 

 

독일 아프리카 군단의 37mm 대전차포 견인 하프트랙 차량에 적재된 Wehrmachtskanister 연료통 - 1941년

 

 

 

 

 

 

독일 아프리카 군단의 롬멜 원수와 그의 전용 장갑차에 장착된 Wehrmachtskanister 연료통 - 1942년 6월

 

 

 

 

 

Wehrmachtskanister 연료통에 연료를 공급하는 독일군 - 1941년 6월

 

 

 

 

 

 

Wehrmachtskanister 연료통을 가득실은 슈트름게슈쯔 돌격포

 

 

 

 

독일 푸마 장륜 장갑차의 차체에 장착된 Wehrmachtskanister 연료통

 

 

 

 

 

독일 3호전차의 차체 뒷부분에 가득 적재시킨 Wehrmachtskanister연료통

 

 

 

 

 

 

 

독일 4호전차의 측면에 적재한 Wehrmachtskanister연료통

 

 

 

4호전차에 Wehrmachtskanister으로 연료를 공급하는 독일군

 

 

 

 

독일 타이거-1 전차앞에서 Wehrmachtskanister연료통에 앉아 식사를 하는 독일군

 

 

 

독일 타이거-1 전차의 포탑위에 가득 적재시킨 Wehrmachtskanister 연료통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사진과 자료들을 보면 독일군의 사각 연료통과

연합군의 사각 연료통 형태가 다를바 없이 거의 똑같음을 알수 있다.

 

독일과 미국과 영국의 각종 비행기와 탱크및 기관총,병기들의 

기능은 같지만 구조나 외형의 디자인은 보눈이로 하여금 확연히 다르다는것을 느끼게 한다.

심지어 숫가락의 생긴 형태가 비슷할지언정 똑 같은 디자인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듯 각국의 무기나 군수품들이 제각기 다른 형태의 모양을 갖추고 있었는데

왜 스페어 캔이라 지칭된 사각 상자모양의 연료통만은 똑 같이 생겼을까?

그러한 의문을 가질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발명품이었던 이 연료탱크인 스페어 캔을

해방 이후 한국에서는 보통 일본식 영어 발음으로

스피깡 내지 5갈롱 스빼아 깡이라 불렀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군 생활시 부사관들이 통상 부르던 보조 연료 용기 명칭이다.

그리고 그 스페어 캔은 보통 짚차 뒤에는 반드시 달고 다니던

거의 차의 일부라 지칭할 만큼 차량의 필수 장비이기도 하였다.        


스페어 캔을 생각하면 현역및 예비역 장병분들은

대한민국 군대 생활에서의 추억을 떠올릴수 있다.
전투나 수송병과에서 군복무를 한 대한민국인들의 다수가
이 스페어 캔에 대한  한 두가지의 추억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스페어 캔은 결코 휘발유나 디젤유만 넣어 사용하는 용기만은 아니었다.

더운 여름철 식수통으로도 할용되었고 

혹독한 강추위가 몰아치는 겨울철에

 내무반이 큰 곳에서는 밤중에 그 스페어 캔 서너 개에 물을 담아 페치카 위에
데워서 중대원들이
식기를 씻거나 세수를 하게 하기도 했다.


심지어 고지의 병력에 물과 함께 국을 담아서 힘들게 부식을

넣어 나르던 추억도 있을 것이다.

 

 이 스페어 캔은 2차 세계대전 발발전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개발을

지시한 군용 장비였고 이 독일제 캔이 미국과 영국으로

전파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한국에서 스페어 캔이라고 알려진 보통 명사보다도

제리캔(Jerrycan)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Can의 앞에 붙은 Jerry라는 이름은 영국군이 독일군을

부르던 경멸하며 부르던 명칭이다.

미군은 독일군을 따로 Kraut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름이 암시하듯이 이 캔은 독일에서 탄생해서 영국과 미국으로 왔고

그 뒤 전 세계 군대는 물론 민간 시장에까지 퍼져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지고 팔리고 있다.

제리캔은 이미 1939년 히틀러의 특명에 의해서 개발이 완료되어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독일군에게 지급된 상황이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일선 보병 사병으로 전선 참호에서 독가스까지
마셔가며 고생을 한 히틀러는 이 연료통겸 식수통으로서의  양용으로

활용할 용기의 필수성을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경험했던 모양이었다.


군용 용기을 뜻하는 제리 캔은 독일어로 Wehrmachtskanister이다.

 

이 캔이 미국과 영국에 전해지기에는 한 눈치 빠른 미국인과

그의 친구이자 여행 동반자였던 순진한 독일인이 있었다.

이 캔의 개발에 참여했던 독일 엔지니어였다.

  

그 독일인은 자신도 모르게 미래 적국에 중요한 군사정보를
넘겨주는 매국적 배신행위를 하고 만 셈이 되고 말았다.




1939년 미국인 폴 프레이스는 독일에 있었다.

그는 루프트바페(독일공군)에 소속된 독일인과 친해져서 같이

인도까지 자동차 여행을 하기로 하였다.


그 여행에 필요한 식수를 담을 물통 대용으로 독일인 친구는 루프트바페

비행장 창고에 쌓아 놓은 보조 연료 용기 세 개를 가지고 왔다.


두 사람은 열 한 개의 국경을 넘는 황량한 지역을 여행하면서

세 개의 독일제 용기를 아주 요긴하게 사용했다


내심 그 견고함과 편리함에 놀란 프레이스는 독일인에게 그 독일의

연료 용기에 관한 모든 정보를 세밀하게 물어 보고 정보를 추출해 냈는데
그것은 이 연료 용기의 제조를 위한 상세한 스펙과 제조 공정이었다.


그 순진했던 독일인은 자신이 미래의 적에게 중요한 정보를 넘겨주는
것도 모른 채 연료통의
제조를 위한 모든 정보를 이 혹심을 품은
미국인 친구에게 모두 넘겨주게 된 것이었다.


독일인 친구는 독일공군 사령관 헤르만 괴링이 급히 호출하는 바람에

독일로 귀환하였고 프레이스는 혼자 인도 캘커타까지 와서 차를

보관시키고 미국으로 귀국했다.


그리고 그 세 개의 독일제 스페어 캔은 차안에 남겨 놓은 채였다.

 

귀국한 프레이스는 미국 육군성의 실무자와 선을 연결하여

만난후 침이 마르도록 독일 군용 연료  용기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미국도 그러한 군수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 때까지 미국은 1차 세계 대전 때 만들어진 10 개갤런 짜리

보조 연료 용기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것을 사용할 때는 렌치로 두 개의 통 입구를 열고 깔때기를 써야만

하는 불편한 형태였다.


사용 하기가 불편해도 여하튼 그런 것이  있는데

굳이 다른 나라의 물건을 모방할 필요가 없다는

관료주의가 팽배해있던 미국 육군성의
고위층들이 프레이스의 말에 귀를 귀울일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프레이스는 말로는 안 되겠다고 싶어 인도에 있었던

자기 차를 미국으로 가져 오게 하여 그 속에 있던

세 개의 스페어 캔 중 중 한 개를 미 육군성에 건네어 주었다.

이러한 독일의 새로운 군수품 장비를 육안으로 

직접 보았던바 미 육군성도 그 제품을 보고 간과 할수만은 없었다.

이 독일제 보조 연료 용기는  메인주 캠프 홀라버드에
있던 기계 담당 부서로 보내졌다.


그 곳에서 독일 것을 검토 해 보고서야 비로소

이 용기가 구조적으로 미국제보다 훨씬 우수 한 형태을 인정했다.


그러나 미국인들의 자존심으로 그냥 활용 하기가

무었해서 디자인 변경을 시도해보았지만

막상 야전에서 실험해보니 미국에서 개량한 것보다 오히려

오리지날제의 독일 제품이 월등히 우수했다.


그래서 결국 독일제를 그대로 모방하기로 하고 정식으로 독일의

복제품을 채택하였고 그러했던 스페어 캔을 생산하고 보급하여

제 2차 세계 대전을 치루며 이후 지금까지도 사용해 오고 있다.




영국 또한 독일군의 연료 용기를 채택했다.

영국군은 이 독일제 용기를 1940년 노르웨이

작전 때 처음 발견했다.

영국군은 당시 직육면체 통을 보조 연료용기로 쓰고 있었다.

그것은 철판으로 제작된 형태라 그 생산단가가 매우 높았었다.

이미 독일군 연료통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미국처럼 독일제를 그대로 사용하기에는 영국인들의 콧대 높은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존심 강한 영국도 독일의 스페어 캔을

피부로 경험하여야 했다.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는 연료뿐만 아니라 연료보다도 엄청나게
많은 식수까지도 운반하고 보급하여야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열악했던 극과 극의 전선이었던

영하 40~30도의 춥디 추운 동토의 전선과 반대로 열사의 사막 전장 환경에서

연료뿐만 아니라 어마어마한 양의 식수를  일선에 보급하는 것은

장병들의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해 가장 우선적인 문제였다.

그리고 일선 부대들이 그렇게 어렵게 보급받은 생명수같은

식수를 보관하고 운반하는 문제 또한 영국군 병사들에게는 지대하게 큰 문제였다.


영국군의 물통은 파괴되기 일쑤였으나 독일군에게 노획한 물통은 

어떤 상황에서도 파괴되는 일이 거의 없이 견고했던 것이었다.


영국군은 독일의 제품이 손잡이만 해도 두 사람이 운반하기 좋게
만들어져있고 납작해서 차의 좁은 어느 구석에도 쉽게 적재할 수 있는데다가

밑면 역시 면적이 좁은 직사각형으로서 차량의 측면에 

눕혀 장착시킬수도 있으며

비교적 최대한 적재할 수 있는 그 정교한 디자인에도 탄복을 했다.




연료통 옆의 X자로 들어간 부분은 물이나 연료를 최대로 주입시킬수 있었고

떨어뜨리거나 충격을 가해도 내부 액체가 용기에 가해 지는

압력을 그대로 흡수하여 용기의 파손을 막아 주는 완충장치 역할을 했다. 


더구나 용기 내부에는 플라스틱이 코팅 되어 있어서

안심하고 식수통으로도 겸용해서 쓸 수가 있었다.

그 무렵의 영국이나 미국의 스페어 캔에는 그런 세심한 배려가 없었다.


영국군들은  연료나 식수통으로 영국제보다도 노획한 독일제를 썼다.


지금은 구미에서 스페어 캔의 명칭이 되어 버린 제리캔이라는

이름도 최초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 영국군이였다.

  

제리캔에 대한 전선의 소식이 영국 국방부까지도 전해 졌다.

그 때 프레이스는 영국에 들러 업무를 보고 있었다.


독일군의 물통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은 프레이스는 즉시 영국군

당국자를 만나서 그가 미국 당국에 했던 대로 모든 것을
이야기 해주고 그가 가지고 있던 독일제 제리캔 샘플 한 개와
제조에 관한 완전한
정보까지도 제공했다.


경험으로서 제리켄의 우수함을 알고 있었던 영국은 즉각

체면을 따지지 않고 그대로 군용 표준품으로 채택하여 생산을 했다.

그리고 생산품들을 아프리카 전선으로 급송했다.


전선의 영국군들은 새로운 스페어 캔을 쌍수를 들고 환영했음은 물론이다. 

전쟁이 끝나고 이 제리캔은 미영뿐만 아니라

세계 전역의 각 군 필수 보급품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각 자동차 용품을 파는 세계 각국의 매장에서도

다양하게 만든 이 제리캔을 어렵지 않게 발견 할 수가 있다. 

나치 독일의 독재지 아돌프 히틀러가 아이디어를 제공하여 개발했던

혁신적인 발명품으로 전세계 인류가 현재까지 사용해오고 있는  

이 제리 캔만큼 군용및 상용으로 히트를 친 상품은 그리 흔하지 않다.

 

 

 

 

 

From : Histom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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