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스페셜

패튼 장군의 충견 윌리 [WW2 U.S General George Patton,s Faithful dog Willie]

슈트름게슈쯔 2012. 11. 7. 12:36

 

윌리(Willie)라는 이름은 미국인들에게 대단히 흔한 이름중의 하나이다.

윌리라고 하면 대한민국인들 에게 You are Always on my mind 이란 노래로

익히 잘 알려져 있는 미국의 원로가수인 윌리 넬슨(Willie Nelson)을 떠올릴수 있다.

그리고 사람이 아닌 윌리로는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주변 해상에서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발생하는 열대성 저기압인

윌리 윌리(Willy Willy)가 있다.

그리고 윌리 넬슨의 노래 제목인 You are Always on my mind 처럼

죽은 주인을 그리워한 패튼 장군의 충견 윌리가 있었다.

 

 

 

 

 

패튼 장군과 그의 애견 불테리어종 윌리

 

 

 

 

 

 

 

 

 

패튼과 지프에 탄 그의 애견 윌리(Willie)

 

 

 

영화 패튼속에서의 조지 C.스콧(패튼 역)과 윌리역의 불테리어

 

 

 

 

 

 

 

 

패튼과 그의 참모들 - 1944년 9월 프랑스

 

 

맨 오른쪽에 서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을 위해 한국전쟁 6.25 사변 당시

분투했던 윌튼 워커(Walton H. Walker) 장군이다. 

그는 한국전쟁 6.25 사변 당시 대한민국 운명이 풍전등화이던 때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였다.

 6.25 사변이 끝난후 한국인들은 미8군 사령관 워커(Walker) 장군을 추모하여

대한민국 서울에 그의 이름을 따서 지은 건물이 워커힐 호텔이었다.

이 워커 장군 또한 패튼 장군처럼 비운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던 장군이었다.

 

 

 

6.25 사변당시 워커 장군은 대전에서 패퇴하고 대구로 사령부를 옮긴뒤

미 본국으로부터의 증원군이 도착하기를 간절히 기대했다.

본국에서 급히 파견한 해병 여단은 부산을 잃어버릴 수 있는 위기에 빠진 워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얼마 후 맥아더는 해병 여단의 주력인 5연대를 인천상륙작전에 투입하기로 했다.

워커는 “해병 5연대가 없으면 내가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다”고 항의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워커는 낙동강 전선에서 고군분투(孤軍奮鬪)하는 휘하 지휘관에게 더 이상 증원군도 없고

 더 이상 후퇴할 곳도 없다면서 비장한 각오로 전투를 격려했다.

해병 여단은 해병 1사단으로 편성되어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됐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고 드디어 워커가 지휘하는 8군은 낙동강을 건너서 반격을 할 수 있었다.

38선을 돌파하면서 워커가 들은 소식은 청천벽력 같은 것이었다.

 해병 1사단과 육군의 몇 개 연대로 이루어진 10군단을 8군과 분리해서

 원산에 상륙시켜 별도로 북진시킨다는 소식이었다.

워커의 8군은 평양을 수복하고 계속 북진했으나 청천강변에서 중공군에 포위되고 말았다.

 미 육군 2사단은 거의 궤멸되었고, 워커는 또 다시 후퇴하는 치욕을 감수해야 만 했다.

10군단은 장진호에서 중공군에 포위되어 미 육군과 한국군은 전멸했고,

미 해병 1사단만 영웅적 전투를 펼친 끝에 함흥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1950년 12월 23일 워커는 서울의 사령부에서 1군단 사령부가 있는 의정부로 전용 지프를 타고 가던 중이었다.

 워커는 이승만 대통령이 수여한 한국정부의 부대표창을 미 24사단과 영국 27연대에 수여할 예정이었다.

워커는 그가 존경했던 패튼과 마찬가지로 지프 앞쪽에 사이렌과 붉은 플래시 라이트를 장착하고

 사이렌을 울리면서 전장(戰場)을 누볐다.

북쪽으로 향하는 길은 밀려 내려오는 피난민들로 매우 복잡했다.

그런 와중에 한국군 무기 수송 차량이 워커 장군의 지프의 왼쪽 후미를 받아서

지프는 얼음길에서 전복하고 말았다.

패튼과 패튼의 지프를 2차대전 때부터  운전해 온 조지 벨튼 상사는 즉사했다.

워커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맥아더는 워커가 훌륭한 군인이었다는 보도문을 발표하고,

자신이 워커를 4성 장군을 승진하도록 최근에 상신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빈말이었다.

국방부는 이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사고를 보고 받은 이승만 대통령은 사고를 낸 운전자를 총살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미군 지휘관들이 사고를 낸 운전자를 어떻게 총살하느냐고 항의했고,

 미군의 항의 덕분에 사고 운전자는 징역 3년을 선고받는데 그쳤다.

 

 

 

 

 

 

 

 

 

 

아이젠하워 원수와 패튼 대장 - 1945년 2월 벨기에 바스토뉴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미 육군 수뇌부

 

 

 

패튼과 소련군 쥬코프 원수

 

 

 

 

미국으로 돌아온 패튼 장군을 환호하는 로스엔젤레스 시민들 - 1945년 6월 9일

 

 

 

 

 

 

사고를 당한 패튼 장군의 전용차 - 1945년 12월 9일

 

 

 

 당시 신문에 보도된 패튼의 교통사고 소식

 

 

패튼 장군의 운구 행렬

 

 

1945년 12월 9일 미국으로의 귀환을 하루 앞둔 날 패튼은 교통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었다.
이날 패튼은 호바트 게이(Hobart R. 'Hap' Gay) 소장과

만하임(Mannheim) 교외로 꿩 사냥을 나갔다.
호레이스 우드링(1926 - 2003) 일병이 운전하던

1939년식 캐딜락 모델 75(Cadillac Model 75) 뒷좌석

오른편에는 패튼이  왼편에는 호바트  게이가 타고 있었다.
오전 11시 45분경 네크라슈타트(Neckarstadt, Kafertal) 부근에서

정면에 5등급 기술병 로버트 톰슨(Robert L. Thompson)이 운전하던

2.5톤 트럭을 발견한 우드링은 급히 왼손으로 핸들을 꺾어 길가쪽으로 차를 비키게 하고자 하였지만

트럭은 그대로 캐딜락의 오른편을 들이받았다.
 패튼은 뒷좌석에서 앞으로 튀어 날아가며 앞좌석과 뒷좌석 가운데 위치한 금속 부분에 머리를 강타당했다.

우드링과 게이는 다치지 않았지만 패튼은 목뼈가 부러져 의식을 잃고 말았다.
1945년 12월 21일 패튼은 독일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군병원에서

아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으며 사망 원인은 색전증(embolism, 塞栓症)이었다.

 

 

 

 

패튼의 시신은 다른 제 3군 사망자들과 함께 룩셈부르크의 미국인 묘지에 안장되었으며,

이후 그의 병사들이 누운 곳 제일 앞자리로 이장되었다.

패튼이 세례를 받은 샌가브리엘의 교회 근처 윌슨-패튼 가문 묘지에는

그를 기념하는 비석이 놓여있으며 그가 전차에 올라있는 사진이 걸려있다.

 교회 근처 뜰에는 패튼의 석상이 서 있다.

 

 

 

패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전용차 - 2009년 7월 24일

 

 

 

켄터키 포트 녹스에서 이송되어 시카고 오토 쇼에 선보인 패튼 장군의 전용차 - 2012년 2월 12일

 

 

패튼의 차는 수리된 후 몇 명의 장교들의 손을 거쳐 캔터키(Kentucky) 주

포트 녹스(Fort Knox)의 패튼 기병 전차 박물관(Patton Museum of Cavalry and Armor)에 전시되어 있다.

 

 

 

 

독불장군이던 패튼 장군(1885~1945)이 어이없는 교통사고로 사망한후
그의 유품을 처리하던 미군들은 당황했다.
패튼이 가장 귀여워하던 애견 윌리는 죽은 주인의 유품에 드러누워 낑낑거리며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군인들이 유품에 손대려고 하자 으르렁거리면서 주인만이 만질 수 있다는 듯
돌아오지 않은 주인을 기다리며 그렇게 있었던 것이다.
당시 패튼 어느 부하 장교는 윌리를 보며
그러고 보면 패튼의 가장 충성스런 부하는 바로 저 개일지도 모른다고 했다고 한다.

 

 

 

패튼 장군의 유품 앞에 누운 윌리 - 1946년 1월 

 

 

2차 세계대전 당시 주인 패튼 장군을 따라 유럽전선을 누비었던

충견(忠犬) 윌리는 패튼이 죽은 뒤 패튼의 유품 부근에서만 슬퍼하면서 누운채로

주인을 그리워하다가 결국 6년뒤에 주인을 따라 갔다.

 

 

 

패튼장군과 그의 충견 윌리와 패튼 장군의 부하 장성이었자 

한국전 당시 미 8군 사령관이었던 윌튼 워커 장군은 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묘하게도 미군은 2차 세계대전이후 제작되어 베트남전 당시

투입되었던 M-41 전차의 애칭을 용맹했던

워커 장군의 이름을 따서 워커 불독이라고 지었다.

 

 

미국의 패튼 장군과 워커장군이 용맹했던 용장임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그와 같이 패튼의 충견이었던 윌리 또한 용맹한 견종이다.

 윌리는 불테리어종 이다. 

이 불테리어는 불독과 테리어를 교배한 견종이다.

 

워커 장군의 이름을 따서 지은 M-41 워커 불독의 불독 또한 용맹한 견종이다.

역사를 연구해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유명 인사의 업적과 성격등에 따라

후대에 그와 비슷한 용맹한 생명체의 애칭을 붙여

일컬어지는 점을 느낄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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