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ese Tank

일본 97식 치하 경전차와 일본군[WW2 Japanese Medium Tank Type 97 Chi Ha & Japanese Soldiers]

슈트름게슈쯔 2012. 11. 28. 12:20

 

 

 

후지산 아래에서 97식 치하 전차로 기동 훈련을 벌이는 일본군

 

 

 

 

만주를 침략한 97식 치하전차앞에선 일본군 제 3 기갑대대 전차장  - 1943년

 

 

 

47mm 신형 전차포를 탑재시켰던 97식 치하 신호토 전차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전차 변천에 대하여 아이러니한 점은 전차포 주포의 구경에 있었다.

1941년 6월 소련을 침공한 독일군은 전선에서 강력한 소련군의 신형전차 T-34/76전차와 KV-1전차를 경험하게 된다.

이후 독일군은 기갑부대의 주력이자 주포 구경이 50mm 밖에 되지 않았던 3호 전차에서

4호및 5호 전차 판터,타이거전차 등의 신형전차에 구경이 큰 대구경의

75mm 및 88mm 포를 장착시킨 장포신 전차포를 장착시키게 된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주력전차였던

97식 치하 전차는 처음에는 57mm 포를 장착시켰다가

나중에는 47mm 포를 장착시킨다.

그것은 파편만 박산되는 유탄포였던 57mm 포가 관통력이 형편없었기에 관통력을 향상시켜

1942년에 새로 개발한 대전차포인 47mm포를 신형 97식치하 신호토 전차에 장착시켰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당시 일본의 비철금속 가공 기술로는 독일과 미국,영국,소련과 같이

금속중에서 마멸 강도가 가장 높은 텅스텐을 이용하여 적 전차의 장갑을 관통시킬수 있는 

제대로된 철갑탄을 가공할수 있었던 야금 기술의 수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것은 마치 전차의 주포 구경이 소형화 되어

전차포의 화력 형태가 거꾸로 돌아 가는 듯한 모습을 나타내었다. 

이러한 형태는 독일이나 다른 연합국 국가들과는 완전히 다른 반대적인 현상이었다.

 

 

 

 

 

 

퍼레이드를 벌이는 구 일본 육군의 95식 Ha Go 경전차와 97식 Chi Ha 경전차

 

 

 

 

 

 

 

 

만주 전선의 야간전투에서 57mm포 포격을 가하는 일본 제 1 기갑연대 제 3기갑대대 소속의 97식 치하 전차 - 1943년

 

 

 

소련군이 할힌골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노획하여 모스크바에 전시한 97식 치하 전차

 

나중에 이 일본군 치하 전차들은 전량 모택동이 창설하는 중국 공산당 군대에 넘겨지게 된다.

 

 

 

일본군으로부터 노획한 97식 치하 전차위에 선 중국 공산군대 병사들

 

 

 

필리핀 루손섬에서 미군의 M4 셔먼전차의 75mm 전차포에 박살이 나버린 

 

일본군의 97식 치하 신호토 전차 - 1945년 1월 17일

 

 

 

정글속으로 전진하는 일본군의 97식 치하 전차

 

 

1931년 만주 사변을 일으켜 중국을 침략해 들어간 일본군의 대표적인 전차는 89식 이고 전차였다.

이후 일본군은 신형 전차로 개발한 97식 치하 전차 또한 중국전에 투입시키게 된다.

일본군의 전차대에 맞서 변변한 대전차 무기가 거의 없었던 중국군들은

전선에 동원되어 대포와 기관총을 겸비한 화력을 가진 

일본군의 전차대를 대단히 두렵게 여겼다.

일본군의 전차대는 그야말로 중국군에게는 무적이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1939년 5월 몽골 국경에서 영토분쟁으로 인하여 일어난 할힌골전투에서

소련군과 격돌한 일본의 전차대는 또다른 적이었던 소련군의 전차대와 중포대를 상대로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적의 강력한 화력을 경험하게 된다.

중국군은 만주사변 초기였던 1930년대 중반기에

독일에서 군복및 철모와 소총및 2호 경전차 몇대를 수입했었다.

하지만 가격이 저렴했던 독일군의 대전차무기였던 팬저파우스트를 수입을 할수는 없었다.

팬저파우스트는 1942년에 개발되어 1944년까지 당시 독일과 동맹국이던 핀란드군에 제공되었다.

그때는 이미 중국은 연합군의 일원이 되어 적성국이 되어버린

추축국 독일로 부터 그러한 대전차 무기를 수입할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팬저 파우스트를 독일군이 일찍 개발하여 1930년대 초반부터

중국군이 각 부대에 대전차무기로 배치되어 있었다면

일본군 전차에 대한 중국군의 인식은 완전히 달라졌을것이다.  

미군전차와의 전차대 전차로의 대전차전을 벌일 경우

구 일본군의 97식 치하전차의 화력은 보잘것 없었다.

 미군 M3스튜어트 경전차에 대하여 일본 97식 치하 전차가 57mm 포를

500m거리에서 발사할 경우 스튜어트 경전차 50mm의

정면장갑에 적중될 경우에 관통을 시킬수는 없었고 

유산탄 57mm포탄만 부서지고 전차에 충격만 줄 정도였다.
반대로 일본 97식 치하 전차가 미군 M3 스튜어트 전차의

37mm 대전차포의 공격을 받을 경우

소구경 대전차포임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의 97식 전차의 전면장갑이

33mm 밖에 되지 않았기에 쉽게 관통되어 파괴되었다.

또한 97식 치하 전차는 차체의 장갑 제작시 리벳 접합식을 채택하여 미군 대전차포의 철갑탄에 

피격시 포탄 파편조각들이 안으로 박산되어 승무원들은 몰살당하기 일쑤였다 

구 일본군의 97식 치하 전차는 전차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소련군의 신형전차 였던 T-34/76 전차와 같이 디젤엔진을 장착하였다

하지만 이 전차의 단점은 전차의 진동으로 인하여 적의 목표물 사격시

반드시 멈춰서 정지된 상태에서 사격을 가해야 했고 

혹한기의 한대 지역에서는 장시간 엔진밑으로 장작불를 때어 엔진을 덥혀놓아야

가동을 시킬수가 있었다.
또한 이 전차는 출력비가 매우 나빠서 15톤짜리

전차임에도 불구하고 최대시속이 38km/h 였다.

 

일본 97식 치하 전차의 미군과 전투시 성과로는

오키나와에서 승무원이 내린뒤 휴식중이던 스튜어트 경전차를 급습하여

 스튜어트 경전차의 열린 해치속으로 유탄을(대인용) 발사하여 스튜어트1대를 파괴시켰다.
그리고 미군  M4 셔먼 전차1대를 70m의 근접 거리에서 측면 사격을 가하여

얇은 엔진룸의 측면 강판을 관통시켜 파괴시켰다.

일본군의 97식 치하 전차에 대하여 미군의 M4 셔먼전차는 그야말로 무적이었다.

미군의 M4 셔먼 전차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전선에서

독일군의  타이거 전차에게 열세였지만  

태평양 전선에서는 일본 탱크 킬러이자 그야말로 일본 전차에 대한 미군의 타이거 전차였다. 

 

 

 

과달카날 제도 솔로몬섬 전투에서 화염방사기로 공격하여 격파시킨 

 

일본 97식 치하 전차 전차병의 뼈와 해골을 차체 앞에 올려 놓는 미 해병대 병사  - 1942년 

 

 

 

과달카날 제도 솔로몬섬 전투에서 미군 해병대의 화염방사기 공격에 파괴된

 

97식 치하 전차 앞에 걸린 화염에 그슬린 일본군의 사체 - 1942년

 

 

 

 

 

사이판섬에서 미군의 공격으로 파괴된 일본군의 치하 97식전차 - 194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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