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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 괴벨스와 빌헬름 후브너[Joseph Goebbels & Wilhelm Hubner]

슈트름게슈쯔 2013. 1. 5. 13:29






 

 나치 정권의 선전상이었던 요제프 괴벨스 (1897~1945)

 

 

요제프 괴벨스는 나치 독일의 국민 계몽 선전부 장관의 자리에 앉아서

나치 정권의 선전과 정책 미화의 책임자겸

아돌프 히틀러의 최 측근에 서서 나치의 나팔수 역할을 했던 인물이었다.

요제프 괴벨스는 1945년 아돌프 히틀러가 그의 애인 에바 브라운과 자살한후

 하루 뒤에 포위된 벙커 안에서 아내와 6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동반 자살을 하였다.

나치당의 두뇌라고 불릴만큼 나치당의 지식인 이였던 그는 나치당의 제복 대신 양복을 주로 입었고

선전 방법뿐만 아니라 유창한 말솜씨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을 선전하다 못해 광신적인 사람들로 만들었다.

특히 그는 라디오와 TV를 통해 정치 선전을 했었는데. 정기적인 TV방송으로 선전을 한 것은 세계 최초였다.

그의 선전 방송을 들은 당시 독일 국민들은 패전의 상황에서도 승리를 확신했다고 한다.

 

 

 

딸들과 함께 나치식 경례를 올리는 요제프 괴벨스

 

 

요제프 괴벨스는 나치 독일의 선전 장관으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선전 장관으로 지칭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히틀러가 하는 일은 항상 옳다는 헌신적 충성심으로 쇼비니즘의 전쟁 교사자 였다고 할 수 있다.

히틀러가 선전의 이론을 마련했다면 이를 실천에 옮긴 사람이 괴벨스였다.

 

 

 

요제프 괴벨스의 딸을 안은 요제프 디트리히

 

 

 

독약을 먹여 자살시킨 요제프 괴벨스 여섯명의 딸 - 1945년 5월 1일

 

 

탁월한 재능과 언어 수사법으로 인간들의 증오심에 불을 붙인 요제프 괴벨스는

열등감과 강인함,호전성과 냉담함을 한꺼번에 갖춘 극단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독일의 언론,연극,영화,문학,음악,미술을 장악했으며 라디오와 우렁찬 행진곡으로 이성을 마비시키는

청각적 능력도 탁월했다. 대중은 시각적 능력이 단순하기 때문에 행사장의 눈부신 빛의 조명, 깃발의 물결, 횃불,

기계적이고 획일적인 힘찬 행진과 음악 등의 영상적 능력을 더 높이 평가해서 나치스의 수많은 행사장을 최대한 활용했다. 

그는 독일군이 소련 전선에서 연패하는 와중에도 승전보를 조작했고

독일의 패망이 닥치자 히틀러가 자살하는 것을 지켜보고 자신도 최후를 준비했다.

괴벨스는 1945년 4월 30일 히틀러가 자살한 다음날인 5월 1일

아내와 딸 6명에게 독약을 먹이고 자신도 미련없이 목숨을 끊었다.

 




독소전쟁 말기 독일 실레지아 지역에서 독일군의 판저 파우스트 공격에 의해 불타는 소련군의 SU-85 구축전차 -1945년 

 


 

 판저 파우스트로 소련군 전차 2대를 격파시킨 전공을 세운

 

16세의 히틀러 유겐트 빌헬름 후브너 소년에게 철십자 2등 훈장을 수여하는 독일군 장교

 

 

 

브레슬라우 전투에서 소련 전차 2대를 격파시킨 공훈으로 

아이젠즈 커츠(Eisernes Kreuz) 철십자 2등 훈장을 

수여 받은 16세의 히틀러 유겐트 빌헬름 후브너(Wilhelm Hubner)와 

악수하는 나치 독일의 선전상 요셉 괴벨스 - 1945년 3월 실레지아

 

 

 

 

 

 

 

 

빌헬름 후브너를 격려하는 요제프 괴벨스 - 1945년 3월

 

 

 

 




 히틀러가 베를린 벙커에서 자살하기 10일전 나치 독일 마지막 필름속의 

16세 소년 빌헬름 후브너(Wilhelm Hubne)와

 뺨을 토닥거리며 격려하는 히틀러 - 1945년 3월 20일




 빌헬름 후브너(Wilhelm Hubner)와 나란히 선 알프레드 체크(Alfred Czech)- 1945년 3월 20일







 

 

 

photo from : Histom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