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파블로프의 집 - 스탈린그라드 전투 격전지 건물[WW2 Stalingrd City Battle Building Pavrov House]

슈트름게슈쯔 2013. 3. 13. 12:08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소련군과 독일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아파트 건물이었던 일명 파블로프의 집

 

독일 공군 하잉켈111 폭격기의 폭격으로 파괴된 이 건물속에서 소련군 야코프 파블로프 하사는

소련군의 반격교두보이자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해 단 25명의 병력으로 이곳을 58일 동안 지키며 분투햇다.

  

 

 

독일군의 포격과 기관총의 무수한 탄흔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린 일명 파블로프의 집

 

 

 

소련군 야코프 파블로프 하사와 그의 이름이 붙여진 아파트 건물이었던  파블로프의 집

 

 

일반적으로 러시아인 이름중에서 파블로프라는 이름이 나오면

개를 이용한 조건반사 실험의 파블로프의 개로 유명한

소련의 생리학자 였던 이반 파블로프(1949~1936)를 떠올릴수 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와 이후에 소련 국민들에게는

 개가 침이 고이게 만드는 조건반사 실험의 이반 파블로프보다

더 유명했던 파블로프는 바로 파블로프의 집으로

유명해진 스탈린그라드 아파트 방어전투의 영웅이었던 야코프 파블로프였다.

1942년 스탈린그라드 시가전 당시 소련군 하사 파블로프는 전사한 소대장의 자리를

자기자신이 메우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소대원 25명과 같이

매일 줄기찬 공격을 가해 오는 독일군들을 상대로

기관총과 박격포, 대전차총등으로 치열하게 방어전투를 벌였다.

독일군이 전차까지 동원시켜 공격을 가해올시에 파블로프의 집 소련군들은 

14,5mm 대전차총의 사격으로 3호 전차를 관통시키며  공격을 저지시켰다.

스탈린그라드 시가의 일부에서 벌어졌던 그 전투에서

파블로프 소대원들은 1942년 9월 23일 부터 11월 25일까지 무려 58일간을 방어했던 것이었다.

당시 파블로프의 집 지하실에 살고 있었던 러시아 주민 몇명도 파괴된 천장을 지하실로

연결된 통로길로 이용하며 이들에게 식수를 공급하며 이 건물에 대한 방어 전투를 도왔다.

1942년 중반까지 독일군은 몇주간이나마 스탈린그라드 전역과 러시아의 서부지역을 장악했었지만

근 두달간의 공격에도 반파된 아파트 건물 하나를 점령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훗날 발견된 독일군의 작전지도에는 스탈린그라드 시내의

자그마한 파블로프의 집이 적의 요새로 기록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소련군의 바실리 추이코프 중장은 독일군들은 1940년 7월 프랑스 파리 함락시 보다

1942년 11월 파블로프의 집앞에서 더 많은 병력을 잃었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한 연유로 파블로프의 집은 독일군의 스탈린그라드 공격에 대한

소련군의 성스러운 방어 전쟁에 대한 상징적 의미의 건물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파블로프 하사는 스탈린그라드 전투후 소련군의 반격작전에 따라 벨로루시와 우크라이나 전투에도 동원되었다.

그리고  독소 전쟁이 끝난후에 소비에트 연방의 영웅 칭호을 얻었고

제 1회 레닌 훈장 포상과 그외 많은 훈장을 받았다.

이후 그는 출세 가도가 보장되어 소비에트 연방회의의 공산당 위원으로 3차례나 당선 되어

정치 활동을 했으며 1981년까지 살다가 노브고로드 지역에서 묻혔다. 

     

 

 

 

 

 

2008년 6월 27일

 

 

 

 

독소전쟁 당시 스탈린그라드 전투 상징적 건물로 일부만 남은 파블로프의 집 - 2009년 볼고그라드

 

 

 

 

photo from : war44.com

                    ww2tal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