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병기 : Tiger-1 Tank

동부전선 독일 타이거-1 전차 위의 하인츠 구데리안[WW2 Eastern Front German Gerneral Heinz Guderian on the Tiger-1 Tank]

슈트름게슈쯔 2013. 6. 17. 13:53

 

 

 

 타이거-1 전차위의  독일 SS 제 1 친위대 기갑사단의 라이프 슈탄다르테 대원들과  하인츠 구데리안 - 1943년

 

 

 

 

 

 

하인츠 구데리안은 제 2차 세계대전 초기에 활약한 독일의 군인, 군사이론가이다.

 그는 1차 세계대전을 참전한 후 소모전을 타개할 기갑전술과 전격전(Blitzkrieg) 이론을 창안하여

독일군의 제2차 대전 초반 승리에 큰 기여를 했다.

1940년 7월 프랑스 침공 작전의 전공으로 상급대장(Generaloberst)으로 승진했으나

에르빈 롬멜이나 에리히 폰 만슈타인 과는 달리 원수로 진급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독일의 지휘관 중에서 가장 뛰어났던 지휘관의 한 명으로 꼽힌다.

하인츠 구데리안은 1943년 3월 1일 독일 기갑병 총감에 임명되었다.

그 직책은 부대 지휘권을 갖고 있지 않은 휴직이었으나  

기갑부대의 재건을 위해 구데리안은 열심히 분주하게 일했다.

 1944년 7월 20일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에서 부상당한 쿨트 자인츠러 상급대장의

후임으로 7월 21일 육군 참모총장에 임명되었다.

히틀러의 작전에 대한 간섭을 저지하고 독일 방위의 중책을 맡았으나,

1945년이 시작된 시기에 독일 국경을 압박하던 소련군에 대한 방어 전략을 둘러싸고

히틀러와의 대립이 정점에 달해 3월 28일 히틀러로부터 6주간의 휴가을 명령받았으나 이것은 사실상의 해임이었다.

구데리안은 1945년 5월 10일 미군에 항복해 포로가 되었다.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이 시작되자 소비에트 연방과 폴란드는 전쟁 범죄자로서 구데리안을 기소했으나

결국 기소는 중지되어 재판에서 군사 작전에 대한(특히 폴란드 침공에 대해서) 증언을 남겼다.

그는 1948년 6월 17일 석방된 뒤 미국 육군 기갑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회상록을 집필했다.

이후 하인츠 구데리안은 1954년 5월 14일 서독에서 사망했다

 

 

 

photo from : Histom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