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6.25 전쟁 Korean War

한국전 당시 자유의 투사 전함 뉴 저지[Korean War during Freedom Fighter USS Battle ship New Jersey]

슈트름게슈쯔 2013. 6. 18. 13:13

 

 

미국 필라델피아 볼드윈 기관차 공장에서 생산 되는 미 해군 전함 뉴저지에 장착될 16인치 대형 함포 - 1942년 

 

 

 

전함 뉴 저지의 16인치 함포 포탄을 이동시키는 미 해군 수병들

 

 

 

뉴 저지 전함 16인치 포에 포탄을 장착시키기 위하여 함포의 breech block를 조작하는 미 해군 수병 -1944년 11월

 

 

 

 

한국전 6.25 동란 당시 전함 뉴 저지의 북한 원산 포격 - 1951년

 



 

 

전함 뉴 저지의 북한 개성 함포 포격 - 1953년 1월 1일 




베트남 Tuyho 근처의 적 거점에 포격을 가하는 전함 뉴저지- 1969년 3월 말

 

 

 

 

전함 뉴 저지의 16인치 포 포격 - 1982년 12월 28일

 

 

 

지중해 베이루트 앞바다에서 16인치 포의 함포 사격을 가하는 전함 뉴 저지  - 1984년

 

 

 

중남미 구아테말라 앞바다에서 포격을 가하는 전함 뉴 저지 - 1984년 8월

 

 

 

전함 뉴저지의 좌우 16인치(406mm) 포 동시 발사 쇼 - 1986년 12월

 

 

 

 

 

 

태평양 전쟁에서 활약했었던 미 해군의  전함 뉴저지(USS New Jersey -BB-62)

1950년 11월 21일 미국 뉴저지주 바욘에서 데이빗 M 타일리(David M. Tyree) 함장 휘하에 재취역 하였다.

그리고 한국에서 발생한 북조선의 공산주의 군대가 남한을 기습적으로 침략한 공산세력의 침략전쟁이 일어난 

극동아시아의 한반도에 파견될것을  대비하여 카리브해에서 숙련 훈련을 펼치고 1951년 4월 16일에 노포크를 출항했다.

1951년 5월 17일에 한반도 앞바다에 도착하여 제 7함대 지휘관인 해럴드 중장은 이후

6개월간 전함 뉴저지를 그의 기함으로 사용했다.

뉴저지는 한국으로 파견되어 1951년 5월 20일에 북한의 공업 기지가 있는 원산에 포격을 가했다.

전함 뉴저지는 한국전쟁에서 두번의 임무기간 중 3차례에 걸쳐 해상 이동포대의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전함 뉴저지는 지상포가 닿지 않을 정도의 중포격을 신속하게 이동하며

이 목표에서 저 목표로 바꿔가며 적 보급기지나 연락선, 거점을 파괴하여 유엔군의 직접 또는 간접지원을 맡았다.

또한 동시에 요구에 응하여 항모의 호위도 맡았다.

뉴저지가 한국전쟁에서 유일하게 피탄 당한 것은 원산에서 항모호위 임무를 하고 있을 때였다.

 연안에 너무 접근하였기 때문에 해안포대의 공격을 받고 1번포탑에 피탄, 병사 1명이 전사했다.

 이것이 한국전쟁 중 유일한 뉴저지의 승조원 사상자였다.

5월 23일부터 27일 및 31일 뉴저지 강원도 양양및 간성에 포격을 가했고 다리와 큰 탄약고 3곳을 파괴 시켰다.

정찰기는 간성에서 철도시설과 차량의 파괴, 양양이 방치된 것을 확인했다.

5월 24일 불시착한 비행사를 수색하던 뉴저지의 함재 헬리콥터가 연료 고갈로 추락했다.

그러나 조종사는 아군 세력 지역에 도착하여 무사귀환하였다.

태평양함대 최고사령관 아서 램포드 제독과 극동함대 사령관 조이 중장을 태운 뉴저지는 6월 4일에 원산을 포격했다.

 이틀 후 간성에서 적 포병연대 및 트럭부대를 포격하여 제7함대 함재기가 포격의 성과를 확인했다.

7월 28일 원산 앞바다에서 해안포대에 대응사격을 했다.

이상접근으로 몇 차례 반격을 받았지만 뉴저지의 정확한 포격으로 포대를 파괴하고 적을 침묵시켰다.

1953년 5월 23일에 취역 10주년 기념식이 인천에서 열렸으며

이승만 부부, 테일러 중장 기타 고관들이 승선했다.

이틀 후 치남포 서해안의 항만방어시설에 포격을 가하기 위해 임무로 돌아갔다.

5월 27일부터 29일까지 원산에서 공격을 받지만 5인치포의 공격으로 적을 침묵시켰다.

16인치주포에 의해 5개의 포대와 4문의 동굴포를 파괴했다. 거기에 불타는 연료창고 또는 탄약고에 포격을 가했다.

뉴저지는 6월 7일에 고성군 부근의 부대지원이라는 중요임무로 돌아왔다.

최초의 포격으로 2개의 포대, 관측소, 참호를 파괴했고 그 후 더욱 원조를 요청받는다.

6월 24일에는 원산에 대해 하루간 포격을 가하고 3개의 동굴에 8발의 직격탄이 명중되어 

1개를 붕괴시키고 2개를 사용불능으로 만들었다.

 다음 날 고성의 부대지원을 위해 돌아가 7월 10일까지 포격을 가했다.

7월 11일, 12일에 뉴저지는 원산에 대해 한국전쟁에서 가장 격렬한 포격을 가한다.

첫째날은 9시간에 걸쳐 가했고 둘째날은 7시간이었다.

 포격에 의해 호도 반도 및 북한본토의 포대와 연료창고가 파괴되었고

적어도 10문의 연안포와 많은 동굴 및 터널이 파괴되었다.

7월 13일에는 거조의 레이더시설과 다리를 파괴하고 22일부터 24일까지

 동해안을 포격하고 고성부근의 한국군을 지원했다.

이 3일간의 포격은 가장 정확히 이루어졌다.

적 사령부가 있던 커다란 동굴은 파괴되고 1개월에 걸친 UN군의 노력은 종료되었다.

많은 연료창고, 포대, 관측소, 참호가 파괴되었다.

7월 25일 이른 아침에 뉴저지는 흥남의 연안포대, 다리, 석유탱크, 통신시설 및 철도시설에 대해 포격을 가했다.

오후에는 북쪽으로 이동하여 탄촌의 철도노선 및 터널을 향해 포격을 가하고

야간에 연안을 달리는 열차파괴를 시도하였다.

주포는 2개의 터널을 향해 발사되었는데 심야였기에 6문의 사격결과를 알 수는 없었다.

다음 날 다시 원산에 포격을 가하는데 이 포격으로 인해 적의 야포, 연료창고, 동굴 및 참호가 파괴되었다.

그리고 이틀 후에 휴전이 체결되었고 전함 뉴저지의 미 해군 수병들은 홍콩에 7일간 방문하여 이를 축하했다.

 홍콩에는 8월 20일에 정박하였고 그 후 일본 및 대만 근해에서 작전 활동에 종사했다.

이 사이 전함 뉴저지는 부산을 방문하였고 부산에선 9월 16일에

이승만대통령이 제 7함대에 수훈 부대장을 수여하기 위해 승선했다.

 

 

 

 

 

photo from : maritimequest.com

                     navyhistory.tumblr.com

     ww2db.com

           m.pintere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