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코사크 [World War 2 cossacks]

슈트름게슈쯔 2013. 9. 30. 12:48

 

 

 

독소전쟁 당시 소련군 측에 가담한 코사크족 기병 - 1941년

 

 

 

전투에 출격하기전 동방 정교회 사제들을 동원시켜 기도를 올리게 하는 소련군과 코사크족 기병들

 

 

 

 

 

독소전쟁 당시 소련군 기병

 

 

 

 

독소전쟁 당시 독일군 측에 동맹군으로 가담한 코사크족

 

 

 

 

코사크족 복장을 한 독일군 장성 Helmuth Pannwitz

 

 

 

말 안장과 군화를 수리하는 코사크족 병사들

 

 

 

크로아티아 지역에서 순찰 활동을 하는 코사크족 기병

 

 

 

 

 

 

 

 

 

독일 군대 잡지를 보며 웃는  2명의 코사크족 독일 지원병 - 1943년 9월

 

  

 

코사크족 독일 동맹군과  나치의 선전부 장관 요셉 괴벨스 - 1944년

 

 

 

 

 

1941년 6월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독소불가침 조약을 깨뜨리고

소련을 공격하는 바르바로사 작전의 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독일군은 소련의 북부,중부,남부에 300만명의 대군이 세갈래로 나누어 파죽지세로 진격하여

곧 모스크바 근처의 지역까지 진격했다.

이 당시 소비에트 연방내의 코사크 족 다수는 소련군에 입대하여 소련군을 위해 싸웠다.

코사크족 기병대는 군마를 타고 빠른 속도로 진격하며 전선에서 독일군을 살륙하였다.

소련군의 세미욘 부돈늬 원수는 이런 코사크족의 용맹을 찬양하며

그들이 항복하는 독일군의 손까지 베어버린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소련이 코사크족에게 그동안 가했던 탄압의 영향 때문에

나치 독일편에 가담한 코사크족들도 존재했다.

 이들 부대 역시 나름대로 소련군을 상대로 활약을 했으며 독소전 당시 상당히 악명을 떨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 숫자가 많은 편은 아니라 나치 독일이 겨우 코사크족으로 2개 사단정도를 창설했을 때

소련은 코사크 족 출신으로 17개 사단이나 만들었다.  
이후 나치 독일군은 1943년 1월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1943년 7월 쿠르스크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동부전선에서 후퇴하게 된다.

코사크 사단들 역시 독일군과 같이 후퇴하다가 1945년 서방측에 투항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얄타 회담 등을 거친 미국과 영국은 코사크족은

 서방 측이 포로로 잡아도 모조리 소련에 넘겨주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서방 측은 오스트리아의 린츠 등에서 코사크 족 수 만명을 통째로 소련측에 넘겨주었고

미국 거주 코사크족 백여명 가량도 이 때 소련으로 보내졌다.

 당연히 소련은 서방 측이 넘겨준 코사크족들 중 몇몇은 바로 처형해버리고

나머지는 모조리 시베리아 유형소로 보내버렸다가 흐루시초프가 집권하고 나서야 사면해주었다.

 문제는 서방측이 이 과정에서 문제를 많이 일으켰다는 것이다.

 적어도 나치 휘하에서 복무한 코사크족 병사들은 잔학행위를 꽤 많이 저지르기도 했기 때문에

소련이 처벌하려고 하는 것은 이상한 것도 아니었고

이들의 행동을 생각하면 서방측이 그들을 넘기는 것도 그러려니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서방은 여자와 아이들및 심지어 전부는 아니지만

독소전쟁과는 별로 상관 없이 러시아 적백내전 당시 망명해왔던 코사크족들도 넘겨버렸다.

그들은 딱히 나치 독일에 부역하지도 않았고, 특히 적백내전 당시 망명한 사람들은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이들까지 통째로 넘겨준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는 행동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흐루시초프가 이들을 사면해준 뒤에도 한동안 코사크족의 대우는 좋지 못했다.

하지만 소련 붕괴 이후 억압받았던 민족들의 복권에 대한 법이 통과되면서

코사크족에 대한 대우는 좋아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 덕에 코사크족은 세력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고, 

체첸 전쟁 당시 군대를 편성해 러시아군을 돕기도 하였다.

 

 

 

 

photo from : histomil.com

                      ww2incol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