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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M1 카빈 소총[U.S Army M1 Carbine Rifle]

슈트름게슈쯔 2013. 10. 1. 20:10

 

 

M1 카빈 소총을 든 태평양 전선의 미 해병대 병사  

 

 

 

카빈 소총을 메고 오키나와 원주민 여성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는 미 해병대 병사

 

 

 

필리핀 마리아나 제도 팔라우 섬의 화염방사기와 카빈 소총을 든 미 해병대 병사들 - 1944년

 

 

 

노르망디 내륙으로 전진하는 미군 카빈 소총 병사의 수색 

 

 

 

손거울을 보며 면도를 하는 미군 병사의 카빈 소총

 

 

 

노르망디 해방 이후의 미군의 휴식 - 1944년 6월

 

카빈 소총을 든 미군 병사와 독일군 훙내를 내는 미군 병사

 

 

 

한국전쟁 당시 서울 수복 작전에 투입되어 북한 공산군의 거점에 M1 카빈 소총을 겨냥하는  미군 해병대 병사 - 1950년 9월

 

 

 

한국전 당시의 화염방사기와 M1 카빈 소총

 

 

 

한국전쟁 당시 미군 보병의 기본 장비

 

 

단축형 총기 라는 뜻을 가진 M1 카빈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주력 소총이던

M1 개런드(Garand) 소총의 구조를 간략화시켜 단축화 시킨 소총이다.

M1 카빈 소총이 개발된 동기는 미군의 주력 소총이었던 개런드 소총이 무게가 4.3㎏, 길이가 1107㎜에 달하여

 공병이나 의무병, 박격포병 등이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카빈소총은 이들에게 지급되기 위해 무게와 크기를 줄이고

반동이 약한 30-06탄을 쓰는 총으로 개발돼 일선에 보급됐다.

이후 카빈소총을 사용해본 일선부대의 반응이 뜨겁자

개런드 소총을 보조하는 역할이었던 애초의 계획을 바꿔 지급범위를 더 확대했다.

덕분에 카빈소총은 개런드 소총과 비슷한 600만 정 이상 생산돼 전 세계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한국에서는 6·25전쟁 전 미군에게 4만 7000여정을 지원받은 것을 시작으로

전쟁을 치루며 21만 9000여정을 추가로 지원받았다.

이후 베트남전을 치루며 M-16A1 소총으로 교체되기 까지

약 20년간 M1 개런드 소총과 함께 국군의 주력을 차지했으며

현재 한국의 M1 카빈 소총은 제조된지 60년이 넘었지만 아직 한국 예비군용으로 사용이 되고 있다.

 

2010년 9월 한국 정부는 국방비 확보 차원에서 6.25전쟁 때 사용되었던

 M1 카빈(Carbine) 소총 77만여정과 M1 개런드(Garand) 소총 8만7천여정을

미국내 총기수집상들에게 매각하기를 원했으나 버락 오마바 행정부의 반대에 부딪쳐 무산되고 말았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2009년 까지만 해도 이 같은 대규모 총기거래를 승인했으나

2010년 3월에는 돌연  입장을 바꿔서 한국의 M1 개런드소총및 M1 카빈 소총 수출에 제동을 걸었다.
일반적으로 제조후 50년이 경과한 M1 소총의 경우 '골동품' 차원에서 수입하는 것은 법적으로 무방하지만,

2010년 처럼 미국이 한국 정부에 넘겨줬던 총기를 다시 사들이는 것은

거래성립 전에 국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특수한 범주에 해당된다고 보도한바 있다.
미 국무부 대변인실은 M1 소총의 수입을 막고 있는 이유는

그처럼 대량의 무기 거래가 있게 될 경우 불법적 목적으로 화기를 찾는 사람들에 의해

 악용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었다.

 

 

 

 

 

 

photo from : Histom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