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rman Tank

독일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 원수의 단포신 4호전차 Ausf E형[WW2 German Ewald Von Kleist Panzer 4 Ausf.E Tank]

슈트름게슈쯔 2013. 10. 8. 12:24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 시에서 독일 제 1기갑군 전차대를 열병하는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 원수 - 1941년 11월

 

 

 

동부전선의 독일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 원수의 단포신 4호전차 Ausf E형

 

 

독소전쟁 후반기였던 1943년 소련전선에서 독일 제17군은 로스토프가 점령당함에 따라 쿠반 교두보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그들의 탈출로는 흑해 연안인 쿠반 교두보에서 케르치 반도로 통하는 흑해의 케르치 해협밖에 없었다.

독일기갑군 사령관 폰 클라이스트는 제17군의 해상 탈출 계획을 세우고

독일 공군의 적극적인 엄호 아래 8개 소련 야전군에게 섬멸당할 뻔한

독일 제17군을 무사히 탈출시키는데 성공한다.

폰 클라이스트는  소련군에게 괴멸당한뻔 했던 독일 A 집단군 전체를 지켜내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 A 집단군을 지켜낸 그  공을 치하하며 클라이스트를 원수로 승진시켰다.

 그러나 그것은 독일군의 후퇴 작전으로서는 히틀러가 내린 최초이자 최후의 칭찬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후 제1 기갑군은 A 집단군에서 빠져서 만슈타인의 남부집단군에 배속되었다.

제1 기갑군은 만슈타인이 요긴하게 써먹지만  제1 기갑군은 A 집단군의 핵심 전력이자

폰 클라이스트의 정예부대인지라 클라이스트로서는 뼈 아픈 결정이었다.

만슈타인이 3차 하르코프 공방전에서 승리를 거둔데 따라 A 집단군은 더욱 안정화되었다.

 히틀러는 A 집단군에게 크림 반도 수비와 위수를 맡겼다.

클라이스트의 A 집단군은 남부집단군의 우측방을 엄호하면서

흑해 연안을 통한 소련군의 우크라이나 진격로를 차단하며 만슈타인의 작전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1943년 7월 쿠르스크 전투에서 발터 모델이 패배하고 류먄체프 작전으로 시작된

 소련군의 하계 공세로 만슈타인이 밀려나기 시작하자 A 집단군으로 들어오는 압박 또한 거세지기 시작했다.

결국 1944년 동계공세로 만슈타인의 남부집단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축출당하자 A 집단군은 직접적인 위협에 노출되었다.

1944년 3월에 소련군은 케르치 반도 상륙작전을 전개하며 A 집단군에 대한 대공세를 시작했다.

 폰 클라이스트는 만슈타인과 함께 남부집단군과 A 집단군을 각각 우크라이나와 크림에서 후퇴하면서

전선을 재정비 할 것을 히틀러에게 요청했다.

그러나 후퇴 소리에 이성을 잃어버린 히틀러는 클라이스트와 만슈타인을 동시에 해임해 버리고 만다.

이후 클라이스트는 만슈타인과 함께 졸지에 해임을 당하여 다시는 전장에 나갈 수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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