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tish Air Force

영국 호커 허리케인 전투기의 실탄 공급[WW2 British Royal Air Force Hawker Hurricane Fighter Bullet Supply]

슈트름게슈쯔 2013. 11. 2. 17:49

 

 

영국 호커 허리케인 전투기의 이륙

 

 

 

소련 종군 기자 Yevgeny Khaldei가 촬영한 제 2차 세계대전의 대표적인 사진중의 하나 - 소련 무르만스크의 순록과  영국 허리케인전투기

 

 

소련 무르만스크로 향하는 24대의 영국 허리케인 전투기 편대는 스탈린이 처칠에게서 얻어낸 한줌의 전투기였다.

영국의 처칠 수상은 처음에 허리케인 전투기의 기술적인 메카니즘이 

소련에게 넘어갈것울 우려하여 이 전투기를 지원 해주지 않으려고 했었다.

 

 

 

영국에서 소련 무르만스크로 몰고온 24대의 허리케인 전투기중 한 대를 애중중지 다루는 영국 공군 조종사들 - 1941년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의 대륙간 원조 랜드-리스로 영국에서 소련으로 무상 지원된 호커 허리케인 전투기 - 1941년

 

 

 

영국 402 비행대대의 씨 호커 허리케인 전투기에 폭탄을 장착시키는 정비병들 - 1943년 3월 Warmwell

 

 

 

2차 세계대전 당시 호커 허리케인 전투기에 연료와 실탄을 적재시키는 영국 항공대 정비병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공군의 주력 전투기였던 허리케인 전투기는 호커 시들리사에서 제작되었다.

허리케인 전투기는 독일 공군의 영국 본토에 대한 대규모 항공 침략전이었던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스피트파이어 전투기와 함께 영국을 사지에서 구해 내었던 양대 전투기였다.

허리케인 전투기는 시드니 캠이 제작했었던 전세대의 구형 복엽 전투기였던 퓨리 전투기를

단엽기로 제작했던 형태였다.

허리케인 전투기는 영국 호커사에서 이전에 만들었던 구형 쌍엽기의 구조를 응용하여

 기체의 후방부는 목재로 만든 뼈대에 방수용 캔버스천을 씌운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기체 전방부인 엔진주위와 콕핏, 날개등은 금속으로 제작 되었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전체가 금속제였던 다른  전투기에 비하여 제작 비용 면에서 유리하였고

 전투기 조종사의 생존성 면에서는 오히려 스피트파이어 전투기보다 더 안전했다.

폭약이 들어있는 기관포탄이 동체 후방에 직격했을 때,운이 좋아

목재 뼈대부분에만 부딪히지 않는다면 방수천에 구멍만 내고 그냥 관통하여 지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이 목재와 방수용 캔버스천으로 제작했던 형태는 그동안 사용해왔던

구형 복엽기들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목재와 방수용 캔버스천 기체에 익숙한 항공기 공장의 직공들과

정비사들이 많았던 당시 영국의 상황에서는 스피트파이어 전투기보다 훨씬 생산과 정비및 수리에 유리했다.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 급박했던 전황탓으로 제대로 비행훈련도 받지 못하고 전장으로 내몰려야 했던

  신참 조종사들 입장에서는 허리케인전투기가 더 비행이 수월(특히 이착륙단계)하였다는 증언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했던 전투기 동체 후방의 구식설계로 인한 생존성 덕분에 허리케인 전투기는 신참 조종사들의 친구였다.

이 신참 조종사들은 일단 살아남으면 실전을 통해 금방 높은 수준의 실력을 가진 조종사가 되었으므로

영국이 대규모 공군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 또 하나의 구국기가 되었다.

게다가 어떤 사람들은 스피트파이어 전투기보다 오히려 조종성이 더 우월하다며

허리케인 전투기를 더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영국의 유명한 전투기 에이스인 더글러스 베이더의 경우도

 대다수의 격추 기록을 허리케인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허리케인은 이 단순한 구조 덕분에 수리하기도 아주 쉬워서

 손상을 입은 기체가 전열에 복귀하는 시간이 매우 짧았다.

 한 대의 전투기, 한 명의 조종사가 아쉬운 시점에 이것은 분명한 플러스 요인이었으며,

대전 초기 허리케인은 숫적으로 영국 공군의 주력 기종이었다.

또한 Bf-109에 비해서는 성능이 떨어졌지만 다른 독일 공군기보다는 우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군의 또 다른 주력전투기인 Bf-110 정도만 되어도 허리케인에겐 만만한 상대였으며,

JU-87 수투카 폭격기같은 경우에는 허리케인의 먹잇감에 지나지 않았다.

 이 덕분에 영국 공군은 Bf109 전투기를 스피트파이어가 맡는 사이에

허리케인 전트기가 적의 폭격기를 요격하는 전술을 구사했었다.

이러한 작전으로 결국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격추시킨

독일 공군기의 80%는 허리케인 전투기의 활약에 의한 결과였다.


 

허리케인은 미국의 P-40 워호크 만큼이나 많은 국가에서 사용되었다.

 약 4000기 정도의 허리케인이 다른 국가에 수출되었으며 초창기 유럽전선에선서는

 최신기종이라는 메리트가 있어서 프랑스, 벨기에 공군에 수출되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공군의 주력 전투기였던

 허리케인 전투기의 초기형은 7.7mm 기관총 8정을 탑재하였다.

 당시 허리케인 전투기에 장착되었던  7.7mm 기관총은

이미 금속제 전투기를 상대하기엔 화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하지만 7.7mm 기관총을 무려 8정 장착시킨 결과 일정한 사격망을 구성하듯이

 목표물 부근에 난사할시 그 화력은 결코 무시못할 수준이었다.

이것은 독일 폭격기들에게는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정작 독일 공군의 주력전투기 였던 메서슈미트 Bf109E 전투기가 전선에 출현하자

허리케인은 Bf109에 쫓겨다니다 격추당하거나 지상에서 격파되는 일이 많았다.

영국공군은 이 문제를 스피트파이어가 Bf109 전투기를 견제하는 사이에

허리케인 전투기 편대가 폭격기 편대를 요격시키는 양동작전 식으로 해결하였다.


 

이후 개발이 지연되던 20mm기관포가 완성됨에 따라 허리케인 전투기도

 4문의 20mm 기관포를 탑재하여 무시무시한 화력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기에는 이미 영국공군이 충분한 숫자의 스피트파이어 전투기를 확보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허리케인 전투기는  주로 지상공격 임무를 맡게되었다.

이에 따라 날개에는 폭탄 장착을 위한 랙(rack)이 추가되었으며,

이때문에 허리밤버(Hurribomber)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일부 허리케인 전투기는 분당 발사수가 15발인 40mm 대구경 기관포를 2문과

7.7mm 기관총 2문의 화력을 갖추어 대전차 피격용 용도로 활용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도 영국의 허리케인전투기가 투입되었다.

 북아프리카 전선의 주된 상대는 이탈리아의 복엽 전투기 CR.42와 전투 성능이  허리케인 전투기보다  

한 단계 뒤떨어지는 Bf110 전투기였다.

그래서 독일 공군은 Bf109을 서둘러 Bf-109 전투기를 북아프리카 전선에 투입시키게 된다.

 북아프리카 전선 사막에서 영국의 허리케인 전투기는

 P-40 워호크 전투기와 더불어 주력 전투기로 활용되었다.

 

 

 

 

 

 

photo from : Histom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