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전쟁

영국 공수부대의 브루네발 독일군 뷔르츠부르크 레이더 탈취작전[British Airborne troops German Wirzburg Rador Brunebal Raid- Operation Biting]

슈트름게슈쯔 2013. 12. 7. 13:03

 

 

프랑스 브루네발(Bruneval)의 위치

 

 

 

 영국 스피트파이어 정찰기가 탐지한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  절벽위

 

브루네발의 독일군 뷔르츠부르크 레이더  - 1941년 12월 5일 

 

 

영국 스피트파이어 정찰기가 다른 각도에서 찍은 독일군 뷔르츠부르크 레이더의 항공사진

 

 

 

 

 

 

 

 

 

 2차대전 당시 독일이 개발했던 신형 레이더였던  뷔르츠부르크  

 

 


 뷔르츠부르크 레이더의 2가지 장치 시스템 리즈(Riese)와 프레야(Freya)-오른쪽

 

 

 

뷔르츠부르크 프레야(Freya)  FuMG 80 모델

 

 


뷔르츠부르크 프레야 A/N Lama 모델  레이더


  도버 해협을 향해 설치되어 있는 벨기에 해안에 설치되어 있는 뷔르츠부르크 레이더의 하나인 프레야(Freya) KBK Lw3 - 1941년 9월 

 

 

 브루네발에서 뷔르츠부르크를 탈취후 귀환하는 영국 공수부대 - 1942년 2월 27일 


 


 프랑스 브루네발을 기습하여 독일군 뷔르츠부르크 레이더 탈취에 성공한 영국 컴만도우 특공대 - 1942년 2월 28일

 

 

옥수수밭 옆에 설치된 독일군의 뷔르츠부르크 레이더 - 1944년 7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신형 레이더였던 뷔르츠부르크는  

적 항공기 탐지에 성능이 탁월하여 독일군 대공포 사격 목표물 탐지에 활용되었다.

 

 

 

노르망디 Arromanches Les Bain 해안 근처의 독일군 뷔르츠부르크 리즈(Wirzburg Riese) 레이더 - 1944년 6월 22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노획한  FuMG 65 뷔르츠부르크 리즈 레이더(Wirzburg Riese)를 살펴보는 미군 통신부대

 

 

 

1941년 프랑스 칼바도스에 설치되었던 독알군의 또 다른  뷔르츠부르크 리즈 레이더(Wirzburg Riese)

 

 

뷔르츠부르크 레이더와 이동식 트레일러

 

 


 

  



영국군 특공대는 1942년 2월 27일 프랑스의 브루네발을 급습하여

독일군 신형 레이더 뷔르츠부르크를 탈취하는데 성공했다.
2차 세계대전 개전초 부터 말기까지 하늘과 바다에서 영국과 독일이 벌였던 전쟁은

그야말로 치열한 과학전의 형태를 보여주었는데

독일이 개발한 신형 레이더 뷔르츠부르크의 탈취작전은 독일공군의 영국 본토폭격으로 인한

자국민들의 생명을 지키려는 필사적인 노력의 선제기습 작전이었던 것이다.
독일 공군은 영국 야간 폭격당시 폭격지점에 도달하면 교차되는 주파수 신호인

 X게라트를 이용하여 영국의 공업도시인 코벤트리시에 대량폭격을 가하여

수많은 인명을 살상시켰고 공장시설에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
개발된지 얼마되지 않았던 당시 영국,독일 양국의 레이더의 기술적 측면에서는

상대국 보다 한 포인트 앞선 기술력을 구축해야 전쟁의 승패를 가늠할수 있었다.
1942년 1월 영국의 스피트파이어 정찰용 전투기는 프랑스 노르망디의 브루네발 지방을 정찰하던중

절벽위의 한 저택 마당에 설치된 이상한 물체를 발견 하게 된다.
본국으로 귀환한 스피트파이어가 찍어온 정찰사진들을 현상해보고 내린 결론은

 독일 공군이 도버해협 건너 영국 야간 폭격시 사용하는 신형 레이더임을 알아차린다.
그 신형 레이더의 이름은 독일의 도시 이름을 딴 뷔르츠부르크였다.
그로써 영국은 병력을 브루네발에 급파하여 뷔르츠부르크를 탈취하는

 암호명 (Operation Biting)의 기습작전을 전개한다.
1939년 익명의 한 독일 시민이 노르웨이 오슬로 주재 영국 해군 무관에게

타자기로 작성된 8쪽 분량의 문서를 보내왔다.
 그것은 처음엔 별 대수롭지 않은 내용의 자료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 자료 때문에 독일에 신형 레이다가 개발되어 있음을 짐작했고

또한 영국의 과학자 페러데이의 보이지 않는 파동을 대량 학살에 활용하는 영국 레이더 과학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 보고서는 사실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황당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영국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활동들을 적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료에 따르면 독일군은 발트 해의 한 섬에 연구 시설을 세워 글라이더 모양의

 제트 추진식 비행기를 만들고 있다는데 이는 마치 공상 과학 소설 속의 이야기처럼 보였다.
게다가 영국이 보유한 것 보다 훨씬 더 발전된 형태의 레이더 시스템을 하나가 아니라 둘씩이나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우편물이 번역되어 영국 관가에 배포 되었을때,간수하여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단 한명 뿐이었다.
그 유일한 인물은 레지날드 V 존스(Reginald Jones)로써 나이보다도 어려보이는 28세의 청년이었다.
전공은 천문학과 물리학이었지만 그는 오스포드의 베일리얼 칼리지에서

대학원 공부를 했기 때문에 폭넓은 인문학적 교양을 강조하는 학교의 전통에 따라

모든 의견은 한번쯤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는 교훈을 체득하고 있었다.
나치 관료들은 자기들끼리도  서로 의심한다는 점을 알고있던

그는 독일공군 루프트바페의 중앙관리자들도 모르는 사이

여러 독일 연구진들이 각자 레이더 개발을 진행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로 드러난다.
어쨋든 1941년 그 당시 그가 알고 있던 것은 독일에 실제로 작동하는 레이더가 있다는 사실이었고

 포로들의 대화기록이나 무전기 감청을 통하여 알게 된 바에 의하면

독일 레이더 시스템의 암호명이 프레야(Freya)란 사실이었다.
존스처럼 교양을 갖춘 이에게 이 암호명은 정확한 정보를 발목에 감은 비둘기가 

런던 SW 1구역 화이트홀 거리에 있는 공군첩보국으로 

곧장 날아든 것 마냥 확실하게 독일군의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독일의 고위 사령부는 아리안 민족의 신화에 매우 집착했다.
20세기 중반에 닥친 전기 기술 분야의 이 커다란 위협을 해결하는 방도는

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신화를 탐색하는 것이었다.
젊은 존스는 이 점을 깨달았다.
그래서 존스는 1941년의 어느날, 느지막이 화이트홀의 사무실을 나와

런던의 도서 유통 중심지인 체링 크로스가 가까이 까지 걸어갔다.
해가 지기 전에 그는 원하던 것을 찾았다.
프레야는 고대 북구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이고, 보통 또 다른 신화속 인물인 하임달과 함께 다닌다고 했다.
프레야는 목걸이를 하나 갖고 있는데 하임달의 임무는 그것을 지키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낮이고 밤이고 늘 온 방향으로 저 멀리까지 내다볼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RAF정찰기들은 독일이 점령한 프랑스 영토에서 레이더 기지처럼 보이는 시설물들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독일 레이더에 대하여 영국 공군이 정교한 요격을 가하기에는 너무나 오래되고 덩치가 큰 기기들이었다.
사실 서로 다른 형태의 작용을 구사하는 두 종류의 레이더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었다.
오래된 북구 신화에서 프레야와 하임달이 함께 다닌다는 내용을 확인한 존스는

독일 사령부의 레이더 건설도 이런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라라 생각했다.
존스는 카메라가 장착된 스피트파이어 전투기 한 대를 제일 처음에 발견되었던 대규모 부지 한군데로 보냈다.
그곳은 르아브르에서 수십 킬로미터 가량 떨어져 있는 곳으로서 브루네발 이라는 마을 근처였다.
정찰은 눈 깜짝할 속도로 이루어졌으며, 그러한 몇장의 정찰 사진을 찍기 위하여

지면 몇십 미터 가까이 바짝 붙는 저공 비행을 해야했다.
그것은 경계하고 있을 독일군 20mm 4련장 고사포가 대공 사격을 가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사진 원판이 런던에 도착하자 마자 항공부의 사진 판독가들이 달려들었다.
처음에는 독일군 부대의 기관총진지와 철조망 울타리.징발되어

사용하고 있는 자그마한 성채등,평범한 기지에 응당 있을법한 것들만 보였다.
하지만 확대경을 사용하여 들여다보니 성에서 뻗어나온 소로가 뚝 끊기는 지점에

또 하나의 레이더 기기가 보였는데 폭이 몇 미터에 불과한 좁은 공터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것은 영국군으로서는 예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만한 작은 폭의 공터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레이더 설비라면 영

국 체인 홈 레이더의 거대한 안테나 같은 것은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사진으로 보자면 독일 기술자들은 그대신 1.5 미터 혹은 그 이하의 짧은 파장을 사용하는 레이더를 개발한듯 했다.
소형 트럭의 짐칸에 기기 전체를 싣고 지름 1m 정도의 방향 조정 가능한 안테나를 차위에 올려

 파동을 발생시키거나 수신하는 것도 가능 할것 같았다.
영국의 체인 홈 레이더의 안테나는 아주 높은 철탑만한 크기였기 때문에

 그것을 회전 시키려면 수백 이방 미터의 공간이 필요한데다가 그런 일을 수월하게 해낼만한 엔진도 거의 없었다.
만약 그렇게 들린다면 레이더를 돌리기 위해서 오래된 전함의 엔진을 떼어다 사용해도 모자를듯 했다.
영국인들은 어떻게 독일이 이렇게도 탁월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수가 없었다.
이 기기가 여러벌 있고 비행기에 밀어 넣어 설치될수 있다면

 독일 초계기들은 캄캄한 밤중에 바다 한가운데서라도 영국으로 들어오는 미국 수송선들을 감지할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보를 대기중인 독일 잠수함 U- 보트에 전달될 것이다.
루프트 바페의 전투기들도 마찬가지로 캄캄한 어둠속에서 연합군 비행기를 가려낼수 있을 것이다.
조그맣고도 치명적인 레이더기기와 그 기지를 정탐하기 위해, 

두명의 레지스탕스, 로져 듀몽(Roger Dumon)과 샤를 샤보(Charles Chauveau)가 지원해 나섰다.
그들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백명이 넘는 독일군과 15개가 넘는 기관총 진지가  있었다 한다.
암호명이 뷔르츠부르크(뷔르츠부르크는 독일 한 도시의 이름으로

실제 레이더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이 레이더를 탄생시킨 독일 텔레푼켄사의 연구소장 빌헬름 룽게가 독일 지도에서

마음에 드는 도시 하나를 골라 맘대로 붙인 이름이었다)로 불리는 그 레이더
를 살펴보거나 포획해야 하는데, 영국 해군이 나설수가 없었다.
브루네발의 성은 해안가에 있긴 했으나 해변에는 

백악기층으로 이루어진 기암절벽이 백 미터가 넘는 높이로 솟아 있었다.
이러한 천연의 요새같은 지형으로 인하여 상공에서 급습하는 도리외에 방도가 없었다.
그런데 그러한 작전을 구사할시에 비행기 착륙이 마땅할 공간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 신설된지 얼마되지 않는 낙하산부대의 투입이 결정 되었다.
그리하여 1942년 어느날 아침 일찍, 전쟁 전에는 영사 기사이자

아무츄어 무선통신 기자였으며 지금은 영국 공군 하사인

챨스 W 콕스(Charles W Cox)가 런던의 항공부로 출두 명령을 받게 되었다.
공군 소장 빅터 데이터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코스는 하루종일 실내용 슬리퍼를 신고 지냈다.
그것은 발바닥에 티눈이 있었기 때문 이었다.
게다가 그는 허리띠 대신 전깃줄로 허리춤을 단속하곤 했다.
그러나 그런 그도 오늘만큼은 특별하다는 것을 알고 제대로 차려입고 나타났다.
자네 위험한 임무에 자원했더군 콕스 하사 데이터가 말했다.
그러자 콕스가 받아쳤다. 그렇지 않습니다.소장님.
아무데도 자원한 적이 없습니다. 콕스의 대답이었다.
콕스가 남긴 유산중 하나인 스무 페이지 짜리 미발표 기록을 보면 다음에 무슨일이 벌여 졌는지 알수 있다.
그들은 코스를 경계가 삼엄한 맨체스터 근방 링웨이 기지로 보냈다.
처음에 콕스는 수십명의 강건한 낙하산병들과 함께 행진을 하고 있는 까닭을 알수 없었다.
그는 비행기라고는 한번도 타본적이 없었으며 게다가 고소공포증까지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는 자신이 그들과 함께 급습작전에 나서야 하기 때문에 

함께 훈련을 받는 끔찍한 사실을 깨달았다.
독일의 뷔르츠부르크 레이다를 확보하여 영국으로 가져 오려면 

부속품의 분해를 감독할 사람이 있어야 했는데

사령부가 이렇게 군말없이 그를 지정한 것을 보면 사령부가 차출할 수 있는 제일 나은 인물 이라는 것이

고작 아마츄어 무선 통신사 경험이 있는 코스였던 것이다.
낙하산병들은 새로 생긴 제1공수사단 소속이었으므로

 육군제복을 입었는데, 콕스는 RAF제복을 입었다.
기습작전 팀이 포로가 된다면, 그 혼자만 도드라져 보일것이고 

게슈타포는 그가 낙하산병 사이에 섞여있는 이유를 궁금해 할것이다.
누가봐도 이해할 만한 걱정거리였다.
머지않아 위로차 존스가 링웨이를 방문했다.
그는 그 어떤 위로보다도 다른 부대원들과 같은 복장을 허락해 주십사 부탁했다.
그러나 존스의 건의사항에 대한 대답은, 자신이 런던에 허가를 요청해 보았으나,

 군 제복을 바꿔 입는 것은 나쁜 선례를 남긴다면서
 육군 본부가 완강히 거절하더라는것 이었다.
콕스는 자신도 선례가 중요한것 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게슈타포가 사방에 깔린 마당에

 이번에는 특별한 경우로 고려해 주는게 정당하지 않겠느냐고 설득했다.
존스는 육군 본부가 말도 못하게 완강하니 낸들 어쩌겠느냐고 꽁무늬를 뺄 뿐이었다 한다.
낙하 훈련을 서둘러 마친 콕스는 불행하게도 여전히 RAF 제복을 입은채

 또 다른 기습 기술들을 익히기 위하여 솔즈베리 평원으로 이송 되었다.
콕스는 이제 몇몇 훈련들을 즐기기 까지 했다.
특히 무슨 물건이든지 주문만 하면 즉각 마련해 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쌍안경,나침반,깨끗한 군화,심지어 45구경 최신형 콜트권총(M1911A1)까지 받았다.
반대로 몇몇 훈련들은 상당히 괴로웠다.
가령 함께 훈련을 받던 스코틀랜드 군인들이 철조망 넘기 훈련을 할때가 그랬다.
철사 절단기가 동원되리라는 콕스의 예상과 반대로, 그들은 멀쩡한 철조망에 한사람을 기대게 한 다음

 그 몸을 우지직 밟으며 건너던 것이었다.
얼마나 어려운 작전이 될지 콕스에게 설명해주는 장교는 아무도 없었다.
작전 팀은 비교적 가벼운 무기만 지닐것이며,

 이전의 공수작전들은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다는 정보뿐이었다.
낙하 기습 전은 1942년 2월27일 밤에 거행 되었다.
그들이 훔쳐와야 할 바로 그 뷔르츠부르크 레이더는 빠른 진동의 보이지 않는 파동을

캄캄한 밤하늘로 내보내고 있었고, 32킬로 미터 밖에서 부터 그들의 위치를 탐지하기 시작했다.
날아드는 영국군 비행기는 어쩔수 없이 그 전파를 반사해 돌려 보냈다.
콕스와 낙하산병들이 앉아있는 곳의 몇 cm옆, 비행기의 몸체와 날개로 부터 밤하늘로 반사파가 퍼져 나간 것이다.
역시 보이지 않는 이 화답의 표시 덕택에, 영국 작전팀의 존재는 들통났다.
약 100여명의 군인들이 비행기에서 뛰어 내렸다.
그중 스무명 남짓한 대원들은 강하 목적지에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수 km 멀리 날아갔지만,나머지 인원들은 목표 위치에 안착했다.
착륙후의 의식이나 마찬가지인 예의 관습에 따라, 

그들은 비행기를 타기전에 마셨던 차를 다시 꺼내어 마시며

 감사한 마음으로 안도의 휴식을 가진뒤

곧 집결하여 뷔르츠부르크 레이더를 굽어보고 있는 성 쪽으로 발걸음을 빨리 돌렸다.
콧스도 바퀴가 달린 자그마한 손수레를 달달 밀면서 뒤를 따랐다.
런던의 작전 계획가들이 레이더 부품을 담는데 필요할 거라면서 가져 가라고 한 수레였다.
성에 있던 독일군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독일 레이더 기술자는 레이더 화면에 점멸하는 점들이

수없이 많이 다가오고 있는 이유를 정확히 이해했기 때문에

독일군의 주력부대는 미리 경고를 받고 잠복중 이거나 잠복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총격전이 시작되었다.
콕스는 이순간 재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뷔르츠부르크 레이더에는 만약을 대비한 자폭장치가 숨겨져 있는지도 몰랐다.
정말 폭발이 일어나 버린다면 테스트소장은 분명 콕스를 나쁘게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콕스는 어둠속을 뚫고 날아다니는 총탄을 누비며 레이더를 둘러싼 철조망을 넘어서

폭발물이 있나 살펴본뒤 해체하는 작업을 서둘렀다.
와중에 그는 수상한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하고,도망치던

독일 레이더 기술자를 군인들이 정중히 생포하도록 도왔다.
콕스는 영국군들에게 뷔르츠부르크 전자부품의 느슨한 부분을 쇠 지렛대로 풀도록 지시한 뒤

 침착하게도 교환 부속들의 일련번호 까지 수집하게 했다.
그는 견본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채 영국에 돌아가면 어떤일이 벌어질까 너무나 걱정한 나머지

 접근해온 독일군이 박격포 사격을 시작하여 영국의 낙하산 부대가

예정보다 뷔르츠부르크에서 손떼고 나가게 된 상황에서도

 계속 둥글게 생긴 진동 안테나의 핵심 부품을 열심히 풀고 있었다.
계획에 따르면 이후 바닷가 까지는 쉽게 빠져나갈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 탈출 과정을 엄호하기로 한 부대가 하필이면 착륙당시 어디론가 날려가버린 그 팀이었다.
독일군의 기관총좌가  영국군들을 향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이 또한 콕스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결국 그는 사람들에게 뷔르츠부르크 부품들을 손수레에서 꺼내어 배낭에 집어 넣게 했다.
전자부품들이 손상 되는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또 그는 부상자들을 돌보는 일도 나서서 도왔던 거 같다.
이제 기습작전팀 전체가 당하고야 말겠구나 하는 시점에 갑자기 [카바르 페이드]라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Carbar Faidh)는 스코틀랜드 방언인 게일어로 사슴뿔을 의미한다-
스코틀랜드 백파이프 연주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있는 곡의 제목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 낙하부대의 연대기장도 사슴뿔 모양이다.
그들은 적을 습격할때 종종 이렇게 외쳤다.
스코틀랜드 출신 엄호부대가 드디어 도착한 것이었다.
독일 기관총 사수들은 고함을 질러대는 이 부대와 대결하느니 계곡으로 후퇴하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공습 부대는 마침내 해변 까지는 빠져 나올수는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영국 해군이 와 있질 않았다.
급히 무전기 신호를  타전하고 급기야 조명탄을 쏘아 올려도 아무 기척이 없었다.
등뒤 절벽 꼭대기에서 독일 보충부대 트럭의 불빛이 비추는 찰나, 해군의 상륙 주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여러척 이었다.

 

 

 

프랑스 브루네발의 독일군 뷔르츠부르크 레이더 탈취 작전을 마치고 이튿날 본국 포츠머스항에 도착한

MTBT선상의 C중대 프로스트 소령과 영국 제2 공중강습사단 특공대 대원들- 1942년 2월 28일                    


그들의 든든한 화력이 있으니 이제 저위에 등장한 적의 지원군은 하등의 문제될 바가 없었다.
탈출길에 오른 군인들은 영국으로 돌아가는 귀로 내내 육중한 상륙 주정 속에서 불편하게 몸을 맞대야 했다.
(승선 하자마자 럼주를 받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콕스는 따로 불려가 곧 쾌속정에 옮겨탔다.
쾌속정은 두 척의 해군 구축함이 옆을 호위하고 스피트파이어 전투기편대가 

상공을 엄호하는 가운데 20노트가 넘는 속력으로 포츠머스항을 향해 달렸다.
육지에 내린 그는 전속력으로 달리는 자동차 행렬에 몸을 실어 런던까지 간뒤

간략한 설명과 함께 소중한 뷔르츠부르크 부품들을 넘겨주고 나서, 얼마든지 쉬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자정도 되기 전에 그는 이스트 앵글리아에 있는 위스베치라는 작은마을의 자기 집에 도착했다.
그의 집에는 난로가 딱 하나 있었는데, 그 주위에 그의 아버지, 어머니,조부모,아내

그리고 아장대며 걷기 시작한 아이가 모두 둘러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콕스의 말에 따르면 그는 당당히 걸어 들어가 이렇게 말했다.
다들 잘 계셨어요?
저는 프랑스에 다녀 왔어요.
이제까지 주욱 거기 있었죠.
제가 한일이 오늘밤 런던 신문에 나왔더군요.
자!  어때요? 
콕스는 대번에 영웅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가 가져온 것은 현대 역사상 최고로 끔찍한 

대규모 학살들중 하나의 현장에서 사용되게 된다.

 

 

 

 

 

photo from  : Hisromil.com

                                    gallery.commandoveterans.org 

                       Daum 털보 자료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