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동부전선 독일군의 낙하산 공수 보급품[WW2 Eastern Front German Army parachute Supplies]

슈트름게슈쯔 2013. 12. 23. 10:29

 

 

히틀러에게 스탈린그라드에서 포위된 독일 제 6군에 대한 독일 공군의  공중 보급을 호언장담하는 헤르만 괴링 - 1942년 6월 28일

 

 

 

 

 

 

독소전쟁 당시 독일 공군이 동부전선에 투하시킨 보급품

 

 

 

스탈린그라드 전투 승리이후 독일 제6군에 투하된 보급품을 정리하는 소련군 병사들 - 1943년 1월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독소전쟁의 중요한 분수령이었다.

 당시 독일 공군 원수이자 독일 제국 의회 의장이었던 헤르만 괴링은 히틀러의 면전에서

총통각하! 스탈린그라드에 있는 6군에 대한 보급품의 공수를 제가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제말을 믿으셔도 됩니다. 라고 호언장담했다.

히틀러가 파울루스 원수 휘하의 독일 제6군 철수를 불허하자 

 그것에 호응하려고 항공기 수송만으로 제6군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다가

 결국 독일 제 6군 30만명이 스탈린그라드에서 철수 시기를 놓치는 데에 일조하게 된다.

 희대의 기인이었던 대단히 멍청한 독일인이었던 헤르만 괴링의 아집으로 인해

 결국 스탈린그라드 포위당하고 전멸을 시키는 원인을 제공했다.

당시 독일군에겐 수송기 숫자는 커녕 스탈린그라드 근방을 통틀어도 사용가능한 활주로가 단 한개 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 활주로도 스탈린그라드로부터 800km 이상 떨어져 있는데다가, 소련군의 기습으로 함락되기도 하는 등

제대로 된 보급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활주로였다.

 즉, 애초에 이 주장 자체가 이미 말이 안되는 허언이었던 셈이었다.

 게다가 막상 보급이라도 하면 소련군의 대공포가 그냥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기엔 스탈린그라드 전투 전에 있었던 데미얀스크 전투에서 분전을 하던

 독일육군에게 공군이 필사적으로 물자를 지원해 줘서

소련군의 공세를 막아낸데 성공한 것도 괴링의 자만심을 부풀린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데미얀스크와 스탈린그라드의 상황이 전혀 다른 것은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상식에 가까웠기 때문에

괴링이 멍청한 자라는 것만 확실하게 만들어주었다.

당장 데미얀스크 전투 당시 고립되었던 육군 병력은 1개 사단이었고,

스탈린그라드에 비해 활주로 등 항공기 수송에 필요한 시설도 그럭저럭 갖춰진 편이었다.

하지만 스탈린그라드에 고립된 병력은 1개 군 25만명이란 대병력이었고,

이 대병력이 필요한 물자를 기후가 나쁜 지역에서 활주로 하나만 갖고

항공 수송으로 보급하겠다는 것은 21세기 현재의 기술력으로도 사실상 불가능이다.

차라리 공중보급대신 대공포와 제공권 확보해서 폭격이라도 해주는게 그나마 독일 제 6군을 도와주는 형태였다

 여담으로 애초에 공군에서 참모나 부하들이 불가능하다고 모두 안된다고 말렸지만

가뜩이나 연합국 폭격때문에 욕을 먹고 망신을 당하던 괴링이 점수를 좀 얻어 보려고 자원을 했다고 한다.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 제 6군이 항복한 날 독일 제국 원수께서는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다고 한다.

 

 

 

 

photo from : Histom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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