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 극장

터미네이터 2의 미소년이었던 에드워드 펄롱[Terminator 2 Movies Hanasome Boy Edward Furlong]

슈트름게슈쯔 2014. 1. 21. 14:25

 

 

 

 

 

 

 

 

 

 

 

 

 

 

 

 

 

 

 

 

 

 

 

 

 

 

 

 

 

 

 

1977년 8월 2일생인 에드워드 펄롱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본적도 없는

러시아인 아버지와 멕시코인 어머니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이모와 이모부 아래서 자랐다.
에드워드 펄롱은 생전 두번 태어난격인데 그가 두번째로 태어났다고 할수 있었던때는 

길거리에서 농구를 하다가 수려한 외모 덕택에 캐스팅 디렉터의

눈에 띄어 영화 '터미네이터2' 존 코너역으로 바로 캐스팅되었던 때였다.
에드워드 펄롱은 영화 터미네이터2로 데뷔하자마자

전세계의 팬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모으며 헐리우드의 황태자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터미네이터 2 영화의 개봉과 함께 에드워드 펄롱이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시절,

 일본에서 "Hold on Tight"라는 앨범을 취입한 적이 있다.

이 음반은 당시 한국서에도 삼포니 음반에서  라이센스음반이 출시되었다.

 이후 에드워드 펄롱이 출연한 작품들은 비평가들에게 호평을 들었을 정도로 괜찮은 연기력을 보였지만
흥행 면에서는 참패를 하게 된다.

그리고 에드워드 펄롱의 가정교사였다가 매니저였던 12살 위 연상의 33세 재클린 더맥이라는 여성은

5년간 동거하다가  결별한후 그에게 거액의 위자료 소송을 제기하게 된다.

게다가 나이 어린 그에게 눈독들인 여배우들의 성상납 요구가 끊이질 않자
견디다 못한 펄롱은 결국 마약과 술에 손을 대고
이때부터 그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참담한 시절을 보내던 와중 에드워드 펄롱은 <아메리칸 히스토리X>라는 작품에 출연하게 된다.

당시 <아메리칸 히스토리X>는 미국에서 큰 화제를 불러 모았는데 

 이 영화를 통해 에드워드 노튼의 동생으로 열연하며

배우로서 재기의 발판을 다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 후 이렇다 할만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다시 침체기에 접어든 에드워드 펄롱은

급기야 마약과 문란한 사생활에 빠져들어 점점 망가진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한 작품에서 만나 결혼까지 골인했던 사랑했던 아내 레이첼 벨라와도 이혼을 하게된다.

레이첼 벨라는 에드워드 펄롱이 자신을 폭행, 협박하고 마약에 중독돼

이상행동을 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서

이혼을 청구하게 됐다고 한다.

그후 아내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남겨 급기야는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하게 됐다고 한다.

급기야 로스엔젤레스 법원은

에드워드 펄롱에게 자신의 6세 아들에게 접근 금지 명령을 내렸다. 

그것은 자신의 6세 아들에게 코카인을  노출시켰기 때문이었다. 

2009년 7월 법원은 그의 전처 레이철 벨라가 제기한 소송을 받아들여 펄롱에게

 '엄격한 감독' 없이는 아들을 만날 수 없다는 내용의 판결을 내렸다.
전처 벨라는 아들의 양육권을 둘러싸고 그동안 펄롱과 법정싸움을 벌여왔으나

아들이 코카인에 양성반응을 보임에 따라 단독 양육권을 되찾았다.


 

 

 

photo from : www.theapricit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