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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최초의 남녀 우주비행사 [World First Man & Woman Cosmonaut]

슈트름게슈쯔 2014. 2. 24. 14:26

 

 

지구 최초의 우주 비행사

 

보스토크 2호 우주선을 타기 위해 소련 바이코누르 우주선 발사대로 향하는 버스속의

 

유리 A 가가린과 게르만 티토프  -1961년 4월 21일

 

유리 A 가가린 그는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우주에서 지구를 돌며 바라본 소감으로

 

 [지구는 푸른색이다]라는 유명한 한마디를 남겼다.

 

 

 

지구 최초의 여성 우주 비행사 -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 1963년 소련

 

 

 

소련의 첫 유인우주선 발사 계획은 보스토크 프로젝트였다,

 보스토크란 러시아어로  동방(東方)을 의미한다.

도시명뒤에 붙은 보스토크로 유명한 도시가 있다.,

바로 러시아 연해주의 도시 블라디보스톡인데

블라디보스톡은 동방을 지배하라란 뜻이다. 

우주를 지배한다는 그러한 뜻이 담겨진 보스토크 1호를 타고

마침내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가 된 유리 A 가가린 또한 보스토크 계획에 참여한 요원이었다.

1961년 4월 12일의 1호를 시작으로 1963년 6월 16일의 6호까지 총 6번의 발사가 이루어졌다.

 보스토크 1호에 바로 유리 가가린 소령이 타고 있었으며, 발사에서 귀환까지 108 분이라는 짧은 우주 나들이였다.

비행을 마치고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 그 유명한 [지구는 푸른색이다]였다

보스토크 2호는 게르만 티토프를 태우고 25시간동안 머무르면서 촬영 및 무중력 상태에서의 실험 등을 실시했다.

 이듬해에는 3, 4호를 동시에 발사하여 랑데뷰 테스트를 실시하였고, 5km 까지 근접하는데 성공했다.

 5,6 호 발사시에는 4 km 까지 근접하였으며, 보스토크 6호에는

  세계 최초의 여성 우주 비행사인 발렌티나 테레시코바가 탑승하고 있었다.

 발렌티나 테레시코바는 노파가 아니라 아직도 정정한 할머니이며,

2011년에는 푸짜르가 이끄는 집권여당 소속으로

러시아 하원 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정계에도 진출했다.


 

원래 13호까지의 발사계획이 잡혀있었으나 미국이 추진중이던

  2인승 제미니 계획에 대항하기 위해 취소되어 버리고,

  2인승이었지만 억지로 사이즈를 키워 3인승으로 전환한 보스호드계획으로 변경된다.

참고로,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에 충격을 받은 미국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머큐리 계획에 총력을 기울이지만, 결국 유인 우주비행 타이틀도 소련이 약 25 일 앞서서 이룩시켰다.

 그나마도 이 미국인 최초의 우주비행은 고작 16분의 비행에 그쳤을 뿐이었다.

원래는 보스토크 우주선을 발사하기 위해 당시 최신형이던 R-16(서방에는 SS-7 Saddler로 알려짐)켓을 사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무리한 계획추진에 신뢰성이 입증되지 않은 기술 도입등 문제가 많았고

결국에는 60년 10월 24일, 발사 시험을 위해 추진체를 준비하던중 갑자기 대폭발을 일으켜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물론이고빠른 발사를 위해 로켓 근처에 가 있던

전략로켓군 사령관 미트로판 네델린 포병 상원수와 바이코누르 우주기지 사령관까지

 포함해 수백 명이 죽는 대참사를 발생 시키게 된다.


이 사실은 당시 서기장이었던 니키타 흐루시초프에 의해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희생자들은 전원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다고 발표되었다.

이사실은 세월이 한참 지난뒤인 소련이 붕괴된 이후에야 기밀 문서의 효력이 해제되면서 사실로 드러나게 된다.

결국 보스토크 로켓으로 선정된 것은 구식 R-7 로켓(SS-6 Sapwood)이었고

 이는 보스토크 우주계획이 종료된 후에도 우주발사체의 발사용도로

소련이 붕괴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개량되며 널리 이용되었다.

대부분은 성공적이었으나 1980년 발사대에 대기중인 상태에서 그대로 폭발하여

 작업원 등 58명을 죽게 만드는 대참사를 일으키기도 했다.

 

 

소련에서는 블라디미르 일류신이라는 우주비행사가 가가린 이전인

1961년 4월 7일 우주로 올라갔다고 하는 주장이 있다 

 당시에는 비밀스러운 국가였던 소련의 특성상 미션이 성공리에 끝나야

편집후 방송에 알리는 구조였으므로 실패는 묻혔다는 것이다.


이때는 재진입 기술 부족으로(당시 소련에선 최초의 재진입 시도였다.)

 진입각이 깊었던데다 낙하산이 늦게 펴지고 역분사자체도 늦었던 탓에

중국 서부지역의 이상한 곳에 떨어진 후 내장 파열까지 당한후

중국 농부에게 발견되었으나 하필이면 당시는 중국과 소련은 이념 차이 로 국경분쟁 중이던 때였다.


결국 중국 병원에서 1년여간 입원해있다가 간신히 살아서 소련으로 복귀하였다고 하는게 주장의 내용이다.

 일류신은 1999년에 퇴역하였고, 2010년 3월 1일에 사망하였다.

당사자는 그 사실을 부인하였다고 한다.

물론 러시아 당국도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당시 유인비행 시험을 위해

 실제 사람과 같은 크기, 같은 무게의 인형(이반 이바노비치라는 이름도 붙였다고)을 탑승시켰으며

 통신시험을 위해 녹음된 음성 송신을 사람의 음성으로 착각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련붕괴 이후, 웬만한 비밀정보들이 거의 다 해제되어 실패했던

 소련의 로켓 실험들이나 사망자 목록들도 열람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그 중에 어디에서도 블라디미르 일류신의 이름이나 그가 탔었다는 로켓의 발사 기록은 없었다.

 

블라디미르 일류신은 그래도 지구로 귀환할수는 있었지만, 

지구 재진입 자체에 실패해서 우주 궤도를 돌다가 죽어버린 비행사도 있다고 한다. 

그 내용은 1960년대 이탈리아인 의대생이자 아마추어 무선사 주디카-코르디글리아 형제가 

 소비에트 우주선이 자기 사는 동네 위로 날아간다는 것을 알고

 자기 집 뜰에 있는 독일 벙커에 'Torre Bert'라고 이름짓고 감청 안테나를 세워서

세계 각지의 아마추어 무선사들과 같이 감청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후 1960년 11월 28일 우주에서 러시아와 영어로 된

 모스부호로 전세계에 타전하는 S.O.S라는 신호를 잡았다.


1961년 2월 2일(유리 A 가가린 비행 9주전)에 우주에서 '심장 뛰는 소리'와 '숨쉬는 소리가' 들려서

 아는 의사에게 들려줬더니 "이건 산소 부족으로 사람이 죽어갈 때의 심장 뛰는 소리"라는 결과를 받았다.

이 질식사한걸로 보이는 불행한 우주 비행사의 이름은 겐나디 미하일로프(Gennady Mikhailov)이고

스푸트니크 7호로 명명된 우주선을 탄 걸로 알려졌다.

주디카-코르디글리아 형제가 잡은 이 소리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언론에 대서특필될 정도였다.


 진짜 스푸트니크 7호(소련내에서는 베네라 계획의 베네라 1호)는 2월 4일에 금성으로 발사된 탐사선이었으나,

 1960 년에 발사에 실패했던 화성 탐사선 마르스니크 1,2호의 질량이

고작 645 Kg 였던 반면에 이것은 무려 6,843 Kg이나 되었기 때문에

서방 국가들은 이게 유인 우주선이 아닌가 하는 억측이 확산되었다.

결과적으로는 발사 실패로 22일 이후 2월 26일에 대기권에 돌입했다.


1961년 5월 19일 우주에서 여성의 목소리로 "불꽃이 보인다! 너무 뜨겁다!"라는 말하는 신호를 잡았는데,

 이후 5월 23일에 소련의 타스통신에서 런던 버스크기의 인공위성이 대기권으로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형제는 이 목소리의 여성을 루드밀라 라고 이름지으며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인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보다 먼저 우주로 올라갔으며,

대기권에서 불타 죽었다고 보고있다.


하지만 이 형제들의 무선감청 기록은 소련의 표준 통신 프로토콜을 따르지도 않았으며,

 러시아어조차 문법이 틀리고 발음이 엉망진창이라 엘리트중의 엘리트였던

소련의 우주비행사로 보기엔 가능성이 없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오랫동안 감청하기엔 물리적으로 위성의 궤도나 속도가 나기는 불가능했다.

결국 소련이라는 국가가 무너진 후 공개된 문서엔 그들이 여러차례에 걸쳐

 감청했다고 주장한 우주비행사들의 기록은 전무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비밀 문서들을 가지고 있다고 여전히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photo from : Live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