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를 점령한 독일군이 유태인 격리구역 게토에 감시용으로 만든 우쯔 Zgierska 거리의 육교 - 1941년 2월
폴란드 우쯔 즈기에시 게토의 육교 - 1942년 겨울
우쯔 게토 육교를 건너는 폴란드 유태인들
우쯔 게토 육교를 건너는 폴란드 레지스탕스 파르티잔 - 1944년
바르샤바 게토 Twarda 거리의 육교
바르샤바 게토 Chtodna 거리의 육교 - 1942년 6월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 Chtodna 거리의 육교
폴란드 바르샤바 Chtodna 거리의 과거와 근래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를 침략한 독일군은 유태인들은 색출하여
소위 게토라고 지정한 한 지역에 모아 가두었으며 그곳에다 외부와 차단하여 격리를 시킨다.
또한 게토에는 유태인 내부에서 경찰을 차출하여 그들의 동족인 유태인들을 감시하며 통제한다.
이후 서서히 시간이 경과되면서 노동력을 제공할수 있는 젊은세대부터 차출하여
그들을 강제수용소로 호송시킨다.
그리고 유태인들을 격리시킨 지구와 그곳의 외부 경계지점에는 벽돌로 담을 쌓고
경계지역 가까이에 위치한 도로의 이곳 저곳을 제맘대로 왕래하지 못하게끔
교차로 지점에 검문소와 육교를 만들어 유태인들을 감시,통제한다.
즉 게토의 육교는 독일군 차량들이 게토의 감시 통제시 도로 통행에
유태인들의 보행이 방해가 되기 때문에 만들었던 또 다른 격리 수용시설이었다.
1970년대의 격동기 한국에서는 자동차 중심의 교통 정책으로
수도권을 비롯하여 전국의 중소 도시 곳곳에 육교를 제작하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201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보행자가 우선시 되는
인간 중심의 교통 정책으로 바뀌어 과거 곳곳에 설치되어 있던 육교를 철거시키기 시작한다.
이는 그동안 과거보다 국민들의 경제 수준이 발전되고 사회적 의식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정부가 국민들의 편의를 고려하는 교통 정책 또한 그에 따른 한단계적 성숙한 형태로 변모했다고 볼수 있다.
photo from : Histom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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