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ese Tank

일본 최초의 탱캣이었던 92식 쥬 소코샤 탱캣[Japanese First made Tankette Type 92 Jyu Sokosha]

슈트름게슈쯔 2014. 3. 31. 20:05




일본 최초의 탱캣이었던  92식 주 소코샤 탱캣





구 일본 제국 의회앞 도로의  92식 쥬 소코샤 탱캣





중국 상하이를 침략한 일본군의 92식 쥬 소코샤 탱캣 - 1937년 



일본 최초의 탱캣이던 92식 쥬 소코샤 탱캣은 영국의 카덴 로이드 탱캣을 벤치 마킹한 차량이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장갑차와 기계화부대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만주지역의 거친 도로의 상황은은 일본 군대에게 가혹한 조건으로 다가가서 

일본군은 조건이 나쁜 도로에서도 주행이 가능한 효율적인 경전차급의 기갑 차량을 옹호하게된다.

일본 기병대대는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형태의 빠르고 경량화된 정찰 전차를 원했다.

1925년 부터 1929년 사이에 일본 육군은 기갑학교의 필요성에 따라 여러가지 외국의 

탱크들을 수입하여 치바에서 실험을 하였다.

그결과 영국의 카덴 로이드 탱캣이 일본군이 원하는 신속한 기동력을 구사하는데 

가장 적합한 차량이라고 선정했다.

이후 이 차량을 기본으로 일본 최초의 탱캣 제작에 들어간다.

처음 개발된 형은 나중에 Type 2 아이고(A-I-Go)형으로 알려진 수륙양용형 탱캣이었다.

이 차량은 이스즈 자동차 회사로 알려진 당시 이시카와이마 회사에서 92대가 제작되었다.

이 차량은 일본 육군 기갑부대에 탱크로 분류시킬수는 없었지만 

일본 육군은 이 차량을 중장갑차 (Kyu-ni-shiki Jyu-sokosha)로 불렀다.

일본이 영국 카덴 로이드 탱캣을 모방하여 개발했던 92식 쥬 소코샤 탱캣은

세명의 승무원을 수용할수 있었다.

그러한 이유는 당시 비좁은 공간을 가졌던 외국의 다른 탱캣과는 달리

일본의 92식 쥬 소코샤 탱캣은 전차와 탱캣의 중간 정도 모델급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평균적으로 키가 작은 일본 남성의 신장 또한 구성에 도움을 주었다. 

엔진은 미쯔비시사에서 라이센스로 제작된 이시카와 IN 6기통 공랭식 가솔린 엔진이 탑재되었다.

현가장치는 벨 크랭크 시스템이었다.

92식 탱캣은 세가지 유형의 파생형으로 제작되었다.

최초에 개방된 92식 아이고형과 나머지 두가지 타입은 수륙양용형이었다.

그리고 차체의 바퀴는 양쪽 보기휠과 더불어 양쪽에 작은 고무 라인이 쳐진 로드휠로 구성되었다.

나중에 생산 단계를 대비하여 양쪽에 3개의 보기휠과 같이 테두리에 세개의 리턴 롤러가 장착되었는데

총 로드 휠의 수는 12개였다.

이 구성은 고속 회전시 캐터필러가 밖으로 떨어져 나가 버릴수 있는 문제점이 드러나게 되어 

이러한 부분을 우려함에 따라 전체 시스템은 수정되었다.

무장은 원래 하나의 차체에 6.5mm 구경의 91식 기관총 2정이나 

또는13.2mm 구경의 92식 중기관총을 탑재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중기관총과 경기관총 각각 1정씩을 장착시키게 된다. 

구경이 큰  13.2mm 의 92식 중기관총은 프랑스 호치키스 기관총의 파생형으로 관통력이 좋았다. 

그런데 중량이 무거운 92식 중기관총은 차체 내부에 장착시키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일부 사격 각도가 제한된 형태로 기관총의 볼 마운트가 채택되어 장착 되어졌다. 

그러나 이 기관총은  선회 접안 렌즈가 장착되어 있는 우수한 광학조준기의 덕분에 나은 대공 기능을 가질수 있었다.

92식 쥬 소코샤 탱캣에 장착된 경기관총의 유형은 프랑스제 호치키스 기관총의 

라이센스 모델이었던 구경 6.6mm 91식 기관총이었다.

그리고 92식 쥬 소코샤 탱캣의 승무원들은 운전수 1명과 포탑 

차체 내부에서 앉아서 중기관총을 다르는 사수1명과  포탑속에 서서 

경기관총을 다루는 지휘관 1명으로 총 3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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