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부상당한 팔슈름야거 대원을 격려해주는 쿠르트 슈투덴트[WW2 German Luftwaffe General Kurt Student Care to wounded Fallschirmjäger soldier]

슈트름게슈쯔 2014. 4. 13. 13:43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의 포커 E 3형 전투기와 쿠르트 슈투덴트 





쿠르트 슈투덴트[Kurt Student : 1890 ~1978]






나치 독일 공수부대 팔슈름야거의 헤르만 베른하르트 람케(왼쪽 첫번째)와 쿠르트 슈투덴트(왼쪽  두번째)와 한스 크로흐(오른쪽)




헤르만 베른하르트 람케와 쿠르트 슈투덴트






독일 팔슈름야거 대원들과 쿠르트 슈투덴트 상급 대장




머리와 얼굴에 부상을 당한 부하 대원을 격려해주는 독일 공수부대 팔슈름야거 상급 대장 쿠르트 슈투덴트 





사람은 태어나서 부터 시작하여 운명을 달리할 때까지 수많은 만물을 접하며 평생 배우면서 살아가게 된다.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나 두말할 나위가 없이 자기 자신에게 모르는 것을 알게 만드는 작업이다.

그것은 또한 사람된 도리로 육체적,정신적 몽매함과 무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인 동시에 

 현명한 판단력 쌓기와 착한 심성을 배양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기도 하다.

세계의 여러 민족 풍습중의 하나로써 한국의 유교적 제사 풍습으로 

제삿날에 벼슬을 하지 않은 자의 지방을 쓸때는 지방문의 맨앞에 고인의 이름을 쓰고 

뒤에는 학생부군 신위라고 쓴다.

즉 사람들은 살아 생전 이러한 교육이든 저러한 교육이든  

자기나름대로 사회 곳곳에서 여러가지 형태로 평생 교육을 받았는데도 

한국인들의 대부분은 학벌이 높든 낮든 학교에 다녔든 안다녔든 

국가의 녹을 먹는 관직을 가지지 못했다면 그 누구든 귀신이 되어서도 학생이 되어야 한다.

그만큼 한국인들은 학생 신분과 매우 관련이 깊다.

즉 오늘날 학생이 아닌 사람도 세월이 지나면 학생이 될 소지가 높은것이다.  

영어로 Student는 학생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독일어로 Student 역시 학생을 의미하는 단어로 

그 발음은 영어와는 달리 슈투덴트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에는 이름이 학생인 독일군 장성이 있었는데 

그는 독일 공수부대의 상급대장 쿠르트 슈투덴트였다.

쿠르트 슈투덴트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독일군의 장성으로 그의 계급은 상급 대장이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초기 부터 말기까지  전쟁 내내 공수부대의 신화적인 존재였던 

독일 제7 공수사단, 공수부대를 이끌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주요 독일군 장성들이 그랬듯이, 슈투덴트 역시 독일 제국의 군인이었으며, 전투기 조종사였다.

독일 공군의 재건에 한동안 힘을 기울이던 슈투덴트는 독일이 전쟁 준비를 하면서

 헤르만 괴링이 설립한 '괴링 장군 연대'가 독일 국방군으로 흡수되고 

육군 공수부대가 공군에 통합되면서 조직된 제7공수사단의 지휘를 맡게된다. 

그는 독일군 장성으로는 드물게 나치당과 부하들의 신뢰를 골고루 받았던 인물이라는 점도 독특했다.

당시 독일군 안에서는 공수부대를 대규모로 투입해서 일반 보병작전을 구사해야한다는

 육군의 주장과 이들을 소규모 특공대로 운용해서 후방을 교란시키는 작전을 

구사해야한다는 공군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는데, 슈투덴트는 공군 측 인물이면서도 

육군의 입장에 찬성했기 때문에 육군의 지지를 받았다. 

 그가 이끄는 7공수사단은 2차 세계대전의 전쟁기간 내내 놀라운 활약상을 펼쳤지만 

하지만 크레타 섬의 강하작전에는 6000명이라는 엄청난 사상자를 발생시켜 

히틀러로부터 공수부대의 후방 투입 작전 성과를 인정 받을수 없었다.

그러한 연유로 인해 이후 독일 공수부대는 명목적인 부대로 전락하여 사실상 대규모의 공수작전에는 발이 묶여 버리게 된다.

1941년 크레타섬 점령에는 성공했지만 6000명의 대병력이 전사한 그 작전은 사실상 대실패 작전이었던 것이었다.

히틀러는 그러한 독일 공수부대를 인명 피해를 인식하여 나중에는 소규모의 작전에만 독일 공수부대를 투입시키게된다.

이후 독일 공수부대의 슈투덴트는 1942년 지중해 영국령 말타섬 침공작전인 일명  헤라클레스 작전에 

지휘관으로 확인되었지만 이 작전은 살행되지 못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후 1943년 독일 공수부대의 스코르제니 부대를 이탈리아 북부에 고립되어 있던 무솔리니 구출에 투입시킨다.

슈투덴트는 전후에는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전범으로 복역한 뒤에 출옥하여 1978년에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작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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