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현장

체코 역사의 상징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 [Czech Historical Place Prague Wenceslas Square ]

슈트름게슈쯔 2014. 6. 16. 17:41

1939





2차 세계대전 발발 6개월전 무력으로 합병시킨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의 


바츨라프 광장 도로를 지나가는 독일 2호 전차 - 1939년 3월 





















2차 세계대전 발발 6개월전  체코슬로바키아를 무력으로 합병시킨 나치 독일의 프라하 퍼레이드 - 1939년 3월 




1945




2차 세계대전 말기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 동상앞의 소련군 - 1945년 5월 




1968

























바츨라프 광장앞 도로에서 체코 프라하를 침공한 소련군에 대항하는 민중들 - 1968년 8월 21일 




1989




벨벳 혁명 당시 체코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 - 1989년 



벨벳 혁명은 1989년 11월 17일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비폭력 혁명으로 공산당 정권이 무너졌다.

 벨벳 혁명은 동유럽 민주화 혁명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1989년 11월 17일 금요일에 폭동 진압 경찰이 프라하에서 일어난 평화적인 학생 시위를 억압하였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11월 19일부터 12월 말까지 대중 시위가 이어지게 된다.

 11월 20일에 프라하에 운집한 평화 시위자의 수는 전날 200,000여 명에서 500,000여 명으로 불어났다.

 11월 27일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가운데 2시간의 총파업을 결행하였다. 

 다른 나라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지고, 거리 시위가 늘어나면서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은 11월 28일에 당이 권력을 포기하고

 일당제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하였다. 

12월 초에 오스트리아, 서독과 체코슬로바키아의 국경에서 철조망과 여타 장애물이 제거되었다. 

12월 10일 구스타프 후사크 대통령이 1948년 이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처음으로 非공산당 정부를 지명하고 사임하였다.

 알렉산드르 두브체크가 1989년 12월 28일에 연방 의회 의장으로 선출되고,

 다음날 바츨라프 하벨이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직에 올랐다. 

 1990년 6월에 체코슬로바키아는 1946년 이래 처음으로 민주적인 선거를 치렀다. 

 "벨벳 혁명"이란 말은 국제 사회에서 이 혁명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체코 내부에서도 이 표현을 쓴다. 

1993년 체코슬로바키아가 해체되면서, 슬로바키아는 슬로바키아 사람들이

 처음부터 쓰던 표현인 "신사 혁명"이란 말을 쓴다. 

체코에서는 계속 이 사건을 "벨벳 혁명"으로 칭한다




2012



















체코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의 야경 - 2011년 5월 14일 






체코 프라하의 바츨라프 광장은 이름 그대로 1295년 체코를 다스리던 

바츨라프(Wenceslas) 2세를 기리기  지어졌다.

바츨라프 2세는 12세기 말~13세기 초의 보헤미아의 왕으로서 

 폴란드 왕과 헝가리 왕의 세 나라 왕위를 겸하였고 크로아티아, 슬라보니아 대왕이 되어

 중앙 유럽과 동유럽 대합동국가의 군주로서 유럽에 군림하였다.

 10세기경 보헤미안 기사들과 함께 적군을 물리치고 체코의 국난을 극복했다는 체코의 영웅이기도하다. 

그는 1300년 화폐 제도를 실시하여, 왕국 전체를 하나의 조폐국 제도로 통일하였으며 

프라하의 시민들에게 맥주 양조 권리를 주면서 맥주 양조가 일반화시켰다. 

바츨라프 2세는 성 비타 성당의 문앞에서 이복 동생들에 의해 저격당해

 비운의 죽음을 맞이하였으며 성당에 그의 묘가 안치되어 있다

체코 역사의 중심지라 불리는 곳이 프라하의 바츨라프 광장이다.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 설립 때도, 1939년 프라하를 함락한 나치군에 저항하던 곳도, 

1968년 러시아에 의해 무참히 끝나버린 민주화 운동 ‘프라하의 봄’ 때도, 

그리고 1989년 공산 정권을 무너뜨린 ‘벨벳혁명’ 때도 모두 바츨라프 광장이 수많은 체코인을 모아준 장소였다.

 체코 국립 박물관에서부터 무스테크 광장까지 총 750m에 달하는 긴 광장은 

오늘날 프라하를 찾는 수많은 관광객으로 북적댄다.

프라하 국립박물관에서 구시청사 광장으로 이어지는 기다란 길을 신시가지라고 하며

 이 신시가지의 바츨라프 기마상이 서 있는 곳을 바츨라프 광장(Vaclavske Namesti)이라 부른다. 

  바츨라프 광장은 광장이라기보다 대로 같은 느낌이 강하며 상점, 은행, 카페, 페스트푸드점이 줄지어 있다. 

중세에는 말을 파는 시장이 서던 곳이며 지금 보이는 건물은 대부분 20세기에 지어진 것이다.  

 이 광장은 체코 현대사에 있어 중요한 성지이기도 하다. 

1963년에 시작된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운동은 1968년 소련을 포함한 바르샤바 동맹군의 침략으로 위기를 맞았다.

 이에 대항해 시민 궐기가 일어났고 1969년 프라하 대학 철학부의 얀 팔라흐(Jan Palach)가 

바츨라프 동상 앞에서 분신 자살하면서 시위는 더욱 격렬해졌다.  

 그 뒤 2명의 학생이 분신 자살해 시위는 최고조에 이르렀지만 

결국 소련의 탄압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이 사건이 바로 '프라하의 봄'이다.

 1989년의 '벨벳 혁명' 때에도 시민들이 모여 민주화를 쟁취하였다. 

이후 바츨라프의 동상 앞에는 기념비가 세워 졌으며 지금까지도 그들을 추모하는 헌화가 끊이질 않고 있다.

 그 앞으로는 무대가 마련되어 있어서 각종 집회나 콘서트 등이 열리고 있다.   

동상 남쪽으로 750m 정도 길게 이어진 길 양쪽으로는 

한국 서울의 명동을 방불케 하는 각종 상점과 레스토랑 등이 화려한 불빛을 뽐내며 늘어서 있다.

 그 때문인지 이곳은 언제나 많은 인파들로 붐비기에 발딛을 틈이 없을 정도이다. 

역사적이면서도 초현대적인 이 광장은 프라하의 이색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미 650여년의 역사를 지닌 이곳은 프라하 여행의 출발지로 

이곳에서 카를다리, 구시청사, 화약탑 등 다른 명소들 또한 도보로 쉽게 찾을 수 있다.








photo from : thejetpack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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