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나치 독일군의 로마 아르데아티네 동굴 대학살[Nazi Germany SS Italy Roma Ardeatine Cave massacre]

슈트름게슈쯔 2014. 7. 6. 16:06



2차 세계대전 말기 이탈리아 빨치산들의 공격에 의한 보복으로 독일군이 학살시키기 위해 잡아온 로마 민간인들 - 1944년 3월 





1944 년 봄에 나치 독일의 군대는 로마 근처  남쪽에 위치한 아르데아티네(Ardeatine) 동굴에서 

이탈리아 민간인 335명을 학살시켰다.

그리고 1여년후 2차 세계 대전은 끝났다.

 그러나 이후 독일 정부는 그 참혹했던 학살의 전쟁 범죄를 자행했던 전범의 추적 수사를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 당시 이탈리아의 로마와 독일의 임시수도 본 두 도시 

모두에서는 전쟁후 정의보다도 전쟁후 정치에 더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전 이탈리아의  아르데아티네(Ardeatine)동굴은 화산지대에 응회암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시멘트의 재료가 되는 광석을 채굴하는 광산으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오래전에 폐광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1944년 3월 24일 오래전에 시멘트 재료 광물 채굴이 중단되었던 그 동굴속 내부에 일시적으로 횃불이 켜지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 해가 지지 않은 그날 오후 동굴의 외부에 죄없는 로마 시민들을 가득 실은 나치의 트럭들이 도착했다.

그 트럭속의 사람들은 모두 이탈리아인으로서 성인 남자 335명과 나이가 어린 청소년 15명이었다.

   로마의 공산주의 게릴라 단체인 비아 라셀라는 독일의 이탈리아 점령에 항거하여 독일군을 공격했다.

이에 따라 독일 비밀경찰들은 그들의 공격에 대한 복수와 보복행위로 민간인들을 처형시킨다.  

이 보복 행위의 희생자로 로마의 무고한 민간인들이 무작위로 선택되었던 것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서 게슈타포에 의해 감옥에 투옥되었고 나치 독일의 군대에 의해 억류되었다. 

그들은 그 누구도 독일군 공격에 관여하지 않았던 양민들이었다. 

 오후 3:30경에 나치 독일군은 이탈리아 양민들을 학살을 시키기 위해 다섯명을 1조의 인원으로  모아서 동굴 속으로 몰아 넣었다.

그리고 나치 SS 장교는 그들 자신의 이름을 소리내어 밝히게 하고 총살후 그 이름이 적힌 목록에 삭제 표시를 했다.

 이탈리아 남성들은 어두운 동굴속에서 SS 나치 독일군에 의해 먼저 학살당한 자들과 

구분이 될수있도록 무릎을 꿇리운채 학살을 당했다.

학살시 점점 더 많은 시체가 동굴속에 쌓여가면서 독일군들은 

양민들을 재빨리 학살시키기 위하여 서둘러 학살을 시켰다. 

 그리고 학살시킨 시체들을  더미로 쌓아 놓은 다음  또 다섯명이 1조로 이루어진 사람들을 동굴 안으로 몰아 넣었다.

 이러했던  학살의 과정은 이른 저녁 때까지 지속되었다.  

양민들을 학살시키는 사형 집행자 대부분은 자신들이 저지르는 피비린내 나는 

끔찍한 살륙 행위로 부터 엄습해 오는 무서운 공포를 잊기위해 작업중 술을  많이 마셨다.  

몇몇 피해자는 총살 당시에 운좋게 살아 남았다. 

그러나 그들중의 일부는 거짓말처럼 그들의 위에서 뒤에 학살시켜 쌓인 

사망자들 시체의 무게에 눌려 질식해 사망하기도 했다.

 이후 나치 SS는 로마의 양민들을 학살시킨 사실을 은폐시키기 위하여 동굴을 폭발물을 폭발시켰다,

이 사건은 전후 제 3 제국 나치 독일이 이탈리아에서 자행한 잔학 행위의 상징이 되었다. 

오늘날 이탈리아에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아르데아티네(Ardeatine)학살에 의해 숨져간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많은 추모 행사가 열린다. 

이탈리아의 수많은 정치인들 또한 매년  아르데아티네 학살(Fosse Ardeatine massacre)

 추모행사에 참석하여 헌화를 한다.   

그 추모 행사는 공개적으로 지속되었지만 한편으로 많은 이탈리아인들은 나치 독일의 

학살 가해자와  관계자들을 밝혀서 정의의 심판대에 세우는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이제껏 학살에 대하여 처벌 할 수 있었던 유일했던 자는 

전쟁당시 나치 독일의  비밀 경찰 임무과 보안 임무를 

맡았던 장교 헤르베르트 케플러였다.

그는 1948년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이탈리아 로마 학살은 

오랜 세월이 지난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도 출시되었는데

1973년에 출시되었던 영화로 1970년대 후반기 6.25 시즌에 

대한민국 TV 주말의 명화에 주로 방영되었던  리차드 버튼 주연의 

로마여 영원하라(Muerte en Roma = Rappresaglia)와 

1983년 미국 TV 영화로써 1980년대 중반기 대한민국 TV 방송에서 

제목이 바티칸의 철십자로 방영되었던 

그레고리팩과 크리스토퍼 플러머 주연의 (The Scarlet And The Black)등이 있다.




헤르베르트 케플러( Herbert Kappler : 1907~1978)














영화 로마여 영원하라(Muerte en Roma = Rappresaglia)속의 동굴 학살 장면 - 1973년 



















영화 적과 흑(The Scarlet And The Black)속의 장면 - 1983년








photo from : www.lasegundaguerra.com

www.imcdb.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