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쟁 범죄

일본군의 아시아 여성 집단 강간 성노예 만행[Japanese Military Soldiers atrocities to the Asian Woman Gang-Rape Sex Slave ]

슈트름게슈쯔 2014. 8. 16. 16:51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집단 강간을 하기 위해  성노예로 잡아 끌고간 중국 여성들 





일본군의 버마 랑군 철수후 영국군에 구출된  중국 소녀 - 1945년 8월 8일

 

이 중국 소녀는 일본군들에게 중국에서 강제로 잡혀 일본군의 부대 이동시 


성노예로 집단 강간을 당하며 끌려 다니다  버마까지 끌려오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성노예로 삼기 위하여 강제로 잡아온 여성들을  점령지의 민가를 개조하여 

 

집단 강간을 벌일 위안소로 만들어 차례를 기다리는 일본군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집단 강간을 하기 위해 성노예로 데리고 다니는 보르네오섬의 인도네시아 여성들과 시민들 - 1945년 




일본군의 성노예로 집단 강간에 시달리다 미군의 점령으로 인해 해방된 인도양 안다만 제도에서 발견된 중국여성과 말레이시아 여성 - 1945년 





일본군이 루손섬 언덕에서 성노예로 집단 강간을 하기 위해서 강제로 잡아와 


마닐라 외곽지역 민가의 감금시킨 집에서 마작을 하는 필리핀 여성들 - 1945년 




일본군에게 강제로 잡혀와 성노예로 갖은 집단 강간울 당하며 시달리다 버마에서 발견된 임신한 한국인 여성 - 1944년 9월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갔다 일본군의 항복후 버마 미치나시에서 미군에게 발견된 2명의 한국인 여성 - 1944년 9월 




태평양전쟁 말기 오키나와에서 미군에 의해 발견된 일본군에게 성노예로 집단 강간에 시달리다 해방된 한국인 여성들 - 1945년 



세계의 역사가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일본군대의 성노예로 만들기 위해서 강제로 잡아간

아시아 여성들의 수효를 대략 2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과거에 일본이 아시아 여성들에게 저지른 인종 범죄인 성노예 범죄를 

일본군 위안부라고 지칭하는데 이것은 명백히 크나큰 잘못이자 오류이다.

미국인들을 비롯한 유럽인들은 그것은 위안부라 지칭하지 않는다.

위안부가 아니라 성노예라고 지칭한다.

2014년 7월 17일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위원회는 

'위안부'라고 우회적으로 부르는 대신 '강제 성노예'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게 적절하다고 권고했다.

과연 강제로 연행하여 전쟁터로 끌고다니며 성노예로 여성들의 인권을 유린한 

인종범죄를 당한 여성들이 어떻게 위안부가 될수 있는가 ?

도대체 누가 누구를 위안했었단 말인가.

그것은 성노예를 위안부로 물타기식으로 희석하여 해석하려는 

일본의 비열한 역사적 잣대에 희롱당하는 한국인둘의 또다른 자가당착인것이다.

한국인 여성들중 위안부는 결코 없었다.

그녀들은 위안부가 아니라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그들에게 매일 매일  

성노예로 수백명의 일본군 병사들에게 집당 강간을 당한 인종 범죄의 피해자들이었다.

일본군은 아시아 여성들을 강제로 잡아가서 그들 군대의 

성에 긂주인 병사들의 성노예로 삼아 성욕을 해결시키고자 하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라의 국력이 쇠퇴하여 

그녀들의 자유와 생명을 결코 지켜주지 못했던 국가에서 

 일본이라는 침략 국가의 군대에 강제로 잡혀가서 중국과 동남아 태평양 지역의 전장 

이곳 저곳으로  끌려다니며 뭇 일본군들에게 폭력과 고초를 당하며 

 인류 역사에 결코 있어서는 안될 형태로서 그녀들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인권을 유린 당하며 

개처럼 꿀려다니다 일본군들에게 맞아 죽거나 병들어 죽어갔다. 

그러한 극악무도한 무리로 부터 죽음에 이르는 고통울 당하면서도 종전후 생존한 여성둘 또한 

살아서도 이제까지 그 지옥의 악마들에게 당한 

고통의 기억을 결코 지울수가 없는것이다.






한국 SBS뉴스로 보도된 일본군의 성노예 집단강간 만행 - 2014년 8월 20일


일본군 생존자 "위안부 1명이 하루 300명 상대" 증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끌려간 위안부 1명이 하루에 3백 명 이상의 

일본군을 상대했다는 증언이 일본군 생존자에게서 나왔습니다.   

관영 인민일보 인터넷판은 일본 작가 센다 가고가 써서 중국어로 번역된 

'종군위안부'란 책에 일본군 생존자의 이런 증언이 담겼다고 보도했습니다. 

  책에 등장하는 니시야마 고키치 씨는 태평양 전쟁 당시 4천여 명의 

일본군 부대원 가운데 살아서 귀국한 단 2명 가운데 1명입니다.   

그가 속한 남해지대는 지난 1942년 1월 말 파푸아뉴기니령 

뉴브리튼섬의 주도인 라바울시에 상륙했습니다.   

일본군은 라바울에 상륙하면서 대륙에 있던 위안부들도 상당수 끌고 왔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위안부들이 라바울에서 군인들을 받기 시작한 첫날 병사들이 늘어선 줄이 

3㎞나 됐다"며 "3㎞라는 것은 3천 명 이상의 병사가 줄을 섰다는 의미"라고 말했습니다. 

  니시야마씨는 "여자들이라고는 고작 10여 명에 불과해 

그들은 온종일 군인들을 상대해야 했다"고 밝혔습니다.   

니시야마는 자신이 속한 부대의 대대장 1명이 라바울 시장의 딸을 성폭행한 사실을 털어놓으며

 그녀는 결국 밤중에 목을 매어 목숨을 끊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작가는 책에서 "위안부 1명이 하루에 평균 370~380명의 사병을 상대했다고 하니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습니다.   

작가는 책에서 위안부 가운데는 중국 여성이 20여만 명으로 가장 많았고 

상하이에 위안소가 가장 먼저 세워진 뒤 가장 오랫동안 운영됐다고 밝혔습니다.   

인민일보 인터넷판이 이 책 내용을 자세히 소개한 것은 

일본의 '과거사 역주행'에 맞서 펼치는 중국의 대일 공세의 일환으로 보입니다.   

중국 국가당안국은 지난달부터 제2차대전 당시 저지른 일본의 전쟁범죄를 폭로한 데 이어

 지난 15일부터 일본에 맞선 중국의 '위대한 승리'의 기록을 매일 1편씩 공개하고 있습니다. 


  [안서현 기자 ash@sbs.co.kr]




photo from : hellfire-pass.commemoration.gov.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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