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롬멜의 부상[Wounded Rommel]

슈트름게슈쯔 2014. 9. 1. 14:46



연합군 공군기의 기총 소사 공격을 받은 자동차가 대파될 당시 부상을 입은 에르빈 롬멜 - 1944년 7월 17일 











1944년 7월 17일 나치 독일의 에르빈 롬멜 육군 원수는

이미 연합군 공군에게 제공권이 빼앗겨버린 가운데 

간도 크게도 대낮에 노르망디 지역의 도로에서 자동차에 탑승하여  전선 시찰을 나갔다. 

그러나 대낮에 도로에서 주행중인 독일군의 차량을 발견한 

연합군 전폭기는 곧바로 저공 비행으로 그 차량에 접근하여 기총소사를 가한다.

연합군 공군기의 공습을 받은 자동차는 전속력으로 달아나지만 

기총소사의 피해를 입고 자동차는 파괴되었고 롬멜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롬멜의 차량에 공격을 가한 연합군 전폭기는  타이푼 전폭기나  템페스트 전폭기로 보인다.

이후 촬영된 독일의 선전용 사진을 보면 롬멜이 부상을 당해 

왼쪽 눈이 많이 부어올라 있는것을 볼수 있다.

그렇게 롬멜이 부상을 입고 병실에 누워 있는 동안 

독일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 베르크는 히틀러를 폭탄으로 암살시키기 위해   

동프로이센 지역의 라슈텐부르크(오늘날 폴란드 지역)에 위치한 

'볼프샨체(독일어: Wolfschanze, 늑대소굴)'라 불리는 지하벙커에

시한폭탄을 넣어 놓은 서류가방을 들고 들어간다.

그리고 그는 계획대로 볼프샨체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해서 시간을 보낸 뒤 

가지고 간 서류 가방 위장 시한폭탄(정확히 플라스틱 폭탄이다)을 작동시키고

 회의실에서 빠져 나왔다. 그리리고 안전한 거리에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폭탄은 정확히 12시 40분경에 회의실에서 폭발하였다.

하지만 슈타우펜베르크가 회의실 책상 아래 놓아둔 가방을 거추장스럽게 생각한 

히틀러의 전속부관 '하인츠 브란트' 육군대령이 그 가방을 발로 더 옆으로 밀어 놓아버려 

폭탄이 두꺼운 목제 테이블 다리 뒤에서 터졌다

그로 인하여 히틀러는 사망하지 않았고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 베르크의 히틀러 암살 시도는 실패하고 만다.

 히틀러는 가벼운 경상만 입은 채로 살았고, 쿠테타를 일으켰던 장교들 및

 주요 인사들을 체포하여 대규모 숙청을 한다.  

히틀러 암살미수 사건은 실패로 끝나면서 재판과 조사과정에서 

롬멜이 히틀러 암살에 가담한 음모자'들과 접촉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도 역시 히틀러 암살미수 사건에 연루된다. 


1944년 10월 14일 토요일 11시경, 사복 차림으로 입은 12명의 게슈타포 요원들과 

히틀러의 명령을 받은 부르크도르프, 마이젤 두 명의 장군은 검은색 차량의 메르세데스를 타고 

독일 울름에 위치한 롬멜의 집 주위를 둘러쌌다. 

그리고 정각 12시 총통의 위임을 받아 7월 20일 암살 기도 계획에 

공모한 죄를 묻기 위해 그의 집으로 들어간다.

그러고는 롬멜에게 자살할 것을 권유하였다. 

사건 연루의혹을 국민들에게 밝히지 않고, 조용히 자살하는 대신에 

게쉬타포에게 가족들이 희롱당하지 않게끔 안전을 보장하고 국장을 치러준다는 조건에서 였다. 

롬멜은 그들을 따라가 검은색 메르세데스를 타고 그의 집에서 

약 500M 가량 떨어진 곳으로 간 뒤 차량 안에서 시안화칼륨 캡슐을  

입속에 넣고 음독자살로 일생을 마치게 되었다. 

히틀러는 국민적 영웅으로 존경받는 그가 암살미수 사건에 관련되어 처벌당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여겨 가족의 안전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그에게 자살을 권했다고 한다.





시안화칼륨으로 음독 자살한 에르빈 롬멜의 최후 - 1944년 10월  




롬멜은 1944년 10월 14일 집에서 500미터 떨어진 작은 숲의 

 검은색 메르세데스 차 안에서 음독자살로 생을 마쳤다. 

음독자살 직후 차는 곧바로 울름의 군 병원으로 향했다. 

그가 죽었을때 당시 병원에서의 공식발표 사인은 ‘서부 전선에서 근무 중 

입은 부상 악화에 따른 심장마비’라고 발표하였다.

그의 사후 10월 18일 독일 울름 시청에서 공식 추도식을 치루었고 추도식 사회는 룬트슈테트가 맡았다. 

히틀러와 그의 일당들은 롬멜의 장례식에 참가하지 않았으나 

 많은 독일 국민들은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시하였다.

그의 묘는 오늘날 뷔템베르크주에 위치한 '헤를링엔'이라는 작은 마을에 안치되었다.






photo from : www.ww2incolor.com